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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루토 Aug 17. 2020

[포틀랜드 일기] 아기와 우아한 브런치를

꾸스를 낳고 난 후 달라진 우리 부부의 생활 습관이 있다. 그것은 바로 브런치를 즐기게 된 것이다!


아기가 생겼는데 오히려 브런치를 즐기게 되었다고? 의문을 가질 일일지도 모른다. 하지만 정말 그렇다. 본래 우리 부부는 외식을 무척 좋아한다. 신혼 시절 우리의 외식은 주로 저녁 시간대에 이루어졌다. 아기가 생긴 후로는 저녁 외식이 힘들어졌다. 당연한 일이다. 7-8시면 잠들어야 하는 아들의 수면 시간 때문에 저녁 외출은 상상도 하기 힘들었다. 아기를 낳기 전엔 얼마나 무지했던가! 이 모든 생활 습관이 송두리째 바뀌어야만 한다는 것을.


대신 꾸스는 늘 아침 7시면 일어나서 활동을 개시했다. 느지막이 예능 프로그램이나 넷플릭스를 보고 새벽에 잠들던 야행성 생활 습관을 가진 우리 부부에겐 모든 것이 송두리째 바뀔만한 변화였다. 아침 7시에 함께 눈을 떠야 하는 생활이 이어지면서 우리는 좋아하는 외식을 아침에 해버리기로 결심했다. 7시에 눈을 뜨자마자 대충 세수만 하고 달려갈 수 있는 음식점들을 파악했다. 엄밀히는 "브런치"라기보다 "아침식사"에 가깝다. 포틀랜드에서 아침 7시에 문을 여는 레스토랑을 찾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처음 포틀랜드에 와서 기이하게 여겼던 점 한 가지는 레스토랑 운영 시간이 이상하단 것이었다. 모든 레스토랑이 그렇진 않지만 수많은 곳들이 서너 시면 문을 닫았다. 특히나 우리 부부가 좋아하는 앨버타 예술 지구 (Alberta Arts District)의 식당들이 그러했다. "바짝 아침 점심 장사만 하고 나면 저녁은 집에서 먹는 것으로"가 그들의 기치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동시에, 수많은 커피집들이 아침 7시는 물론 6시에 여는 경우도 많았다. "힙스터" 문화라고 하면 뭔가 늘어지는 것이 상상되었는데 이 도시는 부지런한 아침의 도시였다. 커피는 꼭두새벽 같은 시간에야말로 필요한 음료임을 알고 있고, 저녁은 집에 가서 내 손으로 해 먹는 것이 최고라고 말하는 킨포크 정신마냥, 기이한 시간으로 흘러가는 도시였다. 예전에 포틀랜드 도심에서 우버를 탔을 때 우버 기사가 했던 말이 잊히지 않는다. "보통 금요일 밤에 클럽이 많은 쪽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으면 콜이 끊임없단 말이지. 제일 돈을 많이 벌 수 있는 밤이라구. 그런데 이 도시는 참 이상해. 글쎄 자정께였나 새벽이었나? 조용한 거야. 클럽들이 두시면 문을 닫아! 이런 게 어딨지?" 뉴욕이 잠들지 않는 도시라면 포틀랜드는 일찍 일어나는 도시임에 틀림없다. 그도 그럴 것이 포틀랜드를 대표하는 모든 야외 활동들, 하이킹과 카야킹 등등은 아침 일찍 일어난 자들이나 즐길 수 있는 것이다. 일찍 일어난 자들이나 특혜를 즐길 수 있는 앨버타 예술 지구의 맛집 몇 군데를 소개하고자 한다.



앨버타 예술 지구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본래 예술가들이 모여들던 동네였다. 포틀랜드 도심에서 차로 20분 정도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에 있다. 예술가들이 찾아 떠난 동네들이 금세 땅값이 오르고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되듯이 앨버타 지구 역시 앨버타 스트릿을 중심으로 수많은 레스토랑들이 들어섰다. 원래 조용한 주거지였던 곳이기에 여전히 오래된 집들이 많이 있다. 낡고 오래된 집들은 아마 포틀랜드가 포틀랜드가 되기 전부터 있었던 집들일 것이다. 이 지역은 주차가 대부분 어렵기 때문에 이렇게 주택가에 들어가서 평행 주차를 해야 하는 경우가 많다. 간혹 아주 오래된 집들 사이로 새로 지은 모던한 양식의 집들이 있기도 하다. 이런 집들은 이미 가격이 오를 대로 올랐다. 여전히 갤러리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음식점으로 상권이 변했다. 한국어가 크게 적힌 문 닫은 갤러리 하나가 있다. 예상치도 못한 곳에서 만나는 모국어. 수많은 음식점 건물들의 외벽에 벽화가 그려져 있어서 여전히 예술 마을의 향기가 난다.



포틀랜드의 진보적인 성향이 이 곳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대부분의 음식점들이 어떠한 인종도, 국적도, 성별도, 성적 정체성도, 종교도 차별하지 않겠다는 문구를 붙여놓았다.  



1. 와플 윈도우

아침 7시 반의 갓 구운 와플도 그러하다! 일찍 일어난 자들이나 즐기는 것이다. 여러 지점이 있다. 우리 가족은 항상 앨버타 예술 지구에 있는 지점에 간다. 가게 자체는 허름하다. 외부에 벤치와 식탁이 몇 개 놓여 있고, 날이 좋으면 주문은 들어가기 전에 정문 옆에 붙은 창문에서 한다. 이 집의 특징은 항상 그 날 그 날 만든 신선한 도우로 와플을 굽는다는 것이고, 대부분 로컬 재료를 쓴다는 것이다. 치킨 소세지에 그래비 소스를 와플 위에 얹은 Rise and Shine (단짠의 정석이자 와플에 치킨 튀김을 넣어먹는 미국식 문화의 연장), 브리치즈에 직접 만든 오렌지 마말레이드를 얹고 바질향으로 마무리한 Three B's를 특히 추천한다. 다른 일반적인 조합들도 제철 과일을 쓰기에 무척 신선하고 갓 만든 생크림의 맛을 즐길 수 있다. 무엇보다 여기서 일하는 직원들은 “포틀랜드 힙스터”라고 하면 전형적으로 떠오를 느낌의 유쾌한 젊은이들이다. 친절하고, 서두르지 않으며, 주로 동네에서 아침 일찍 와플을 먹으러 오는 손님들과 즐겁게 대화를 나눈다.


2. 프라우드 메리

호주에 본점이 있는 브런치 가게이다. 특히 주말에는 아침 9시-10시에 가면 이미 줄이 길게 서있는 곳이다. 모든 음식들이 맛있다! 특히나 제철 재료를 사용해서 메뉴가 늘 바뀌는 것이 특징이다. 호주가 본점인지라 호주 요리를 선보인다는 특징도 있다. 호주식 미트 파이는 가격도 저렴하고 (9불) 맛은 말할 것도 없고! 풍성한 샐러드와 함께 제공된다. 이 집에서 반드시 시켜야 할 음료는 바로 플랫 화이트이다. 본래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만 팔던 커피 음료이다. 뉴질랜드에서 교환 학생으로 일 년간 살았던 적이 있기에 플랫 화이트의 맛을 잊지 못한다. 서서히 플랫 화이트를 갖춘 커피집들이 한국에도 미국에도 생겨나고 있지만 도무지 뉴질랜드에서 마시던 맛을 (최소한) 재현조차 하는 곳도 없다. 마침내 이 집에서 플랫 화이트를 마시고는 유레카를 외쳤다. 나중에 찾아보고서야 호주가 본점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인지 직원들도 모두 호주 악센트가 있다?



이 집의 단점은 바로 긴 줄과 생각보다 시끄러운 음악 소리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굉장히 베이비 프렌들리한 곳이기도 하다. 레스토랑의 안쪽으로 들어가면 큰 공간이 있고 대형 테이블이 놓여 있다. 빈 공간에 테이블 하나를 더 두는 대신 아이들 장난감을 두었다. 바로 옆 큰 테이블은 유모차를 몰고 온 부모들이 브런치를 즐기기 편한 공간이다. 유모차를 끌고 들어가도 눈치 보지 않고 테이블 옆에 세워둘 공간이 충분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어린아이를 키우는 부모들이야말로 우아한 브런치가 가장 시급한 존재들임을 아는 양 미리 준비해둔 현명하고 고마운 공간이다. 우리는 이 곳에서 단 한 번도 유모차 때문에 따가운 눈총을 받은 적이 없다. 오히려, 유모차가 가진 특색 때문에 긴 줄 속에서도 이 대형 테이블에 자리가 나면 가장 먼저 앉을 수 있었다. 대형 테이블 위로는 James Turrell의 작품처럼 천장에 네모난 구멍이 뚫려 있어 하늘이 보인다. 안인 듯 안이 아닌 듯한 그 공간에서 아기를 데리고도 초조해하지 않으며 식사할 수 있다. 보통 키즈 프렌들리 식당이라고 하면 맛은 없고 그저 어린애들 데리고 가기 좋은 패밀리 레스토랑을 생각하기 마련인데 이 곳은 모든 음식이 맛도 좋고 심지어 예쁘다. 딸려 나오는 케첩에 핫소스까지 모두 직접 만드는 곳이다. 내 생애 그리 맛있는 핫소스는 처음이었다! 자그마한 한 병에 8불이란 비싼 값을 주고 사 와서 계란 프라이에도 얹고 고기에도 얹어 먹는다. 공간에서부터 소스까지 단 하나도 허투르지 않다. 테이크 아웃으로는 그 분위기를 다 느낄 수 없기에 팬데믹이 끝나기 전까지는 아쉽게도 가지 못하고 있다. 모든 것이 안정되었을 때, 훌쩍 자란 아들과 축하하러 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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