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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루토 Oct 24. 2020

[포틀랜드 일기] 아이의 첫 펌킨 패치

2020년의 할로윈

자본주의의 극강인 미국은 모든 것이 명절(holiday)을 기준으로 돌아가는 듯하다. 명절에 따라 미국인들이 주로 하는 활동들이 정해져 있고 그에 맞춰 소비를 할 수 있게 되어 있다. 가령, 7월 4일 독립기념일은 모여서 바베큐를 해먹는 날이니 모두가 바베큐 그릴을 사게 되고 11월 땡스기빙은 모두가 터키를 사서 구워먹는 날이니 모두가 터키를 미리 주문하게 되는 것이 그러하다. 특히 가을이 되면서부터 명절 시즌은 가속화된다. 사과를 따거나 펌킨을 주으러 농장에 가는 것이 대표적인 가을 활동이다. 10월 말에는 할로윈이 있고 11월에 땡스기빙을 지나면 12월엔 하누카와 크리스마스가 있다. 급격하게 일 년의 끄트머리가 그렇게 지나간다. 마트에 가면 명절 위주의 장식품들이 쭈욱 깔리는 것을 보며 시간을 체감한다.


펌킨 패치(pumpkin patch)는 말 그대로 농장에 가서 펌킨을 주워오는 것이다. 미국 생활 십 년 이상을 하면서도 유학생으로 살며 도시에 살고 아이도 없었기에 한번도 간 적이 없었다. 이번엔 달랐다. 아이도 세 살이 되었고, 미국에서 다들 가을이면 하는 거니까, 우리도 한 번 해보자 마음 먹었다. 야외 활동이고 코비드가 터진 후로 대부분의 농장들이 입장 수를 제한하고 마스크 착용을 필수로 하고 있으니 믿고 가보기로 했다. 농장마다 조금씩 다르지만 한 시간 거리에 있는 농장에 가면 기차가 있다는 소식까지 들었다!


기차라면 자다가도 벌떡 일어날 세 살 남아를 키우고 있기에 당장 가는게 맞았다. 목요일 오전 수업을 마치고 오후에 바로 길을 나섰다. 아들은 기차를 탄다는 생각에 그저 신이 나 있었다. 널찍한 농장에 도착하고 보니 직원들이 수시로 소독을 하며 인원을 관리하며 손님들을 맞고 있었다. 마스크 안끼기로 유명한 미국이지만 내가 사는 서북부는 어느 정도 마스크를 잘 끼는 축에 속하고, 다행히 어린 아이들까지 다 낀 모습을 보니 어느 정도 안심이 되었다. 꾸스 역시 처음엔 마스크를 거부했다. 슬프게도 코비드가 길어지면서 바깥에 나가려면 마스크를 껴야한단걸 알고는 "나 마스크 낄테니까 우리 어디 어디 가자"라는 말을 부쩍 하게 되었다. 그렇게 조금씩 면마스크부터 껴보다가 이제는 kf94도 척척 쓰고 길을 나선다. 이 날은 kf94를 가장 오래 끼고 있었던 날이다. 나만 해도 귀 뒤가 아프기 시작했는데, 아들은 신이 나서 괜찮았는지 몰라도, 별다른 불평은 없었다.


오랜만에 한꺼번에 너무 많은 사람들을 본 아들은 얼어붙었다. 처음엔 긴장한 듯 했다. 지난 몇 개월을 한적한 공원 외에는 거의 다녀본 적이 없었다. 다행히 같은 교회 다니는 친구들을 몇몇 마주치면서 아이는 조금씩 표정이 풀렸다. 일인당 오불씩 주고 기차 티켓을 샀다. 원래 주말에는 빨간색 스팀 기차가 다닌다고 하는데 주중이라서 그보다는 다소 볼품이 없는 초록색 기차였다. 그래도 아이는 좋다고 연신 신나했다. 기차에 타서 농장을 한바퀴 주욱 도는 동안 모든 것을 흡수하고 있는 듯했다. 남편과 나에겐 시시한 라이드였지만 ("이 농장은 기차값으로 돈 다 버네") 아들에겐 유년기의 추억이 쌓이는 순간이었으리라.


농장하면 먹거리를 또 빼놓을 수가 없다. 마침 꾸스의 베프가 우리를 보러 농장으로 한달음에 달려왔다. 몇 달만에 본 "베프"와 마주앉아 꾸스는 이 농장에서 직접 갓 구워낸 애플 사이다 도넛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갓 구워낸 도넛은 너무나도 부드럽게 입 안에 녹아서 그 맛이 끝내줬다. 꾸스는 한 봉지를 거의 혼자 해치운 뒤 고사리같은 손으로 조용히 두 번째 봉지를 집어들었다. 미니 도넛이라지만 혼자서 7-8개 정도를 먹었다.


남은 오후는 햇빛을 쬐며 보냈다. 농장 트랙터에 올라가 운전하는 시늉도 하고 놀았다. 긴장이 한껏 풀린 꾸스는 드디어 밝은 표정으로 뛰어 다녔다. 갑자기, 손을 뻗더니, 베프의 옷자락을 만져보더니 친구의 손도 한 번 스윽 만져보는 게 아닌가. 그러곤, 이모 (베프의 엄마)의 옷자락 역시 한 번 스윽 만져본다. 나중에 물어보니, 좋아서 그랬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과 가까이 교류도 못했던 지난 몇 개월. 누군가에게 손을 뻗는 꾸스의 모습을 처음 봤다. 영상 통화만 하던 이모와 베프를 가까이에서 보고 함께 도넛도 먹고 트랙터에도 앉아보는게 신기했던 모양이었다. 그 내민 손이 오래도록 내 맘에 남았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꾸스는 연신 흥분된 목소리였다. 아빠야, 엄마야, 오늘 재밌었다. 오늘 베이비 펌킨도 가져 오고 기차도 타고 트랙터도 운전했다! 우리 꾸스는 어쩜 그리 펌킨도 동그랗고 예쁜 걸 줏었니. 그러자 꾸스는 연신 콧노래다. 조금이라도 아이에게도 기분 전환이 된 것 같아 다행이다. 이 힘으로 주말 육아를 또 버텨보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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