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LACK LIVES MATTER
운전대를 잡고 좌회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때, 좌측 코너에서 내 눈에 띈 것은 큰 피켓을 들고 서 있는 두 남자였다. 한 남자는 백인이었고 한 남자는 흑인이었다. 신호가 초록색으로 바뀌었다. 핸들을 돌리면서 짧은 순간이지만 피켓에 적힌 글씨를 읽을 수 있었다. Black Lives Matter. 흑인의 생명(도) 소중하다. 둘 다 마스크를 쓰고 팻말을 든 채로 모퉁이에 그렇게 서 있었다. 이 한적한 동네에서. 지나가는 차들을 향해. 피켓을 높게 들고서. 재빠르게, 나는 그들을 향해 왼손 엄지를 척 들어 올렸다. 힘내시라. 같이 옆에 서 있진 못하지만. 응원합니다.
내가 사는 곳은 포틀랜드 도심에서 차로 30분 정도 떨어진 외곽 지역이다. 대체로 한가하고 평화롭다. 30분 거리 도심에선 지금 역사에 남을 시간들이 새겨지고 있다. 우리는 지금 격동의 시간을 지나고 있다. 5월 말, 조지 플로이드의 죽음 이후 시작된 BLM (Black Lives Matter) 시위가 8주째 이어지고 있다. 트럼프가 연방 정부군을 투입하면서 폭력이 가중되고 있다. BLM은 더 이상 단순 인종 차별 반대 시위가 아니다. 트럼프가 상징하는 미국 우파와 포틀랜드가 상징하는 미국 좌파의 갈등이 11월 대통령 선거를 앞둔 이 시점에서 증폭되고 있다. 그렇게, 포틀랜드는 현재 미국에서 가장 떠들썩하게 주목받고 있는 도시이다.
페이스북의 포틀랜드 지역 엄마들 모임에 가입해 있다. 같은 지역에 사는 엄마들끼리 육아에 관한 온갖 정보를 주고받는 장이다. 요즘은 시위에 관한 글이 잦다. 2020년의 엄마들은 시위 참석 시 착용할 수 있는 가스 마스크를 찾고 있다는 거다. 실제로 이 시위의 순간이 역사적 현장이라고 믿고 아이들까지 데리고 참가하는 엄마들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그렇게는 못하겠다만, 포틀랜드 bail fund에 기부를 하고 내 돈이 어디에 쓰이고 있는지 업데이트되는 내용을 지켜보고 있다.
오늘 아침 로컬 뉴스를 찾아보다 포틀랜드 시위대 사진 한 장을 봤다.
(구글에서 퍼온 이미지)
"헬멧을 쓴 엄마들 (Mothers in Helmet)" 시위대의 모습이다. 지금은 "엄마들이 만든 벽 (Wall of Moms)"이라고 불린다. "엄마"들이 나서서 시위하는 사람들과 정부 진압군 사이에 인간 벽 (human wall)을 만들어 시위대를 보호하고 있는 모습이다. 모두가 마스크를 썼고, 심지어 임산부의 모습도 보인다. 페이스북 그룹 페이지에 가보니, 엄마들이 가장 잘하는 것을 하기 위해 모였다고 적혀 있다. "남을 보호하는 것."
글을 쓰는 지금 이 순간, Wall of Moms 그룹 역시 진통을 겪고 있다. 이 그룹을 이끄는 리더들이 정말 흑인 인권을 위해 나섰다기보다 다른 목적을 가지고 그룹을 이끌고 있다는 비판이 일고 있다. 지도부를 전부 흑인들로 바꿔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그래도, 외곽 지역에서 안전하고 편안한 삶을 이끌던 백인 엄마들을 시위장으로 이끌어냈다는 긍정적 평가도 있다. 중요한 것은, 이 시위가 미국 내 고질적인 인종 문제에 대해 본격적인 토론과 고민의 장을 열었다는 것이다. 흑인 차별 문제는 흑인의 문제가 아니요 백인의 문제이기도 하며 인권의 문제이기에 우리 모두의 문제라는 것이다. 흑인 하나가 억울한 죽음을 당할 때, 흑인이 아닌 나의 인권 역시 어딘가 조금쯤 손상되었다는 것이 기본 문제의식이다. 결국 이 그룹의 리더가 탈퇴하면서 그룹은 Moms United for Black Lives로 재탄생했다.
로즈 시티라고 불리는 포틀랜드. 크래프트 비어와 로컬 로스팅 까페들의 도시. 지금 미국 전역에선 “봉쇄된 도시 (city under siege)”의 이미지로 그려지고 있다. 트럼프의 연방 정부군이 갑자기 등장하면서부터다. 일반 시민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최루탄을 발사하며 문제가 심각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이 순간도 포틀랜드 엄마 그룹에선 서로의 안위를 걱정하며 매일매일 시위에 나서는 이들이 연대를 다지고 있다. 한 시위자는, 더 이상 이것은 시위가 아니며 내전 (civil war)이라고 표현하기까지 했다.
2020년이 격동처럼 지나고 있다.
그런 날이 올 것이다.
요즘 나는 미래를 길게 보는 법을 잊었다. 미래에 대한 긴장감과 불확실성으로부터 스스로를 지키려는 듯, 나의 뇌는 근시안이 되길 선택했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2020년이라는 한 해가 얼마나 기막힌 해로 남을 것인가. 언젠가 아들은 내게 물을 것이다. 가만히 상상해 보라.
이 시기를 보낸 어린아이들은 자라나서 2020년에 대해 책으로 미디어로 접하게 될 것이다. 그때, 아들이 나에게 묻는 날이 올 것이다. 엄마, 그때는 어땠어. 우리 가족은 어떻게 그 시기를 버텨냈어. 엄마, 엄마는 그 땔 뭘 했어요? 내가 사는 이 세상이 더 나아지도록, 인종 차별이 사라지도록, 엄마는 무얼 했나요?
내가, 우리가, 행동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다. 오바마 전대통령의 말대로, "우리는 더 잘할 수 있고 그래야만 한다." 부모로서, 우리 아이들이 반인종차별주의자로 클 수 있도록 키워야만 한다. 단순히 인종 차별을 하지 말라고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적극적 반인종차별주의자 (anti-racist)가 되도록 키워야만 한다. 그게 바로 "이 모든 시위가 끝난 후" 일어나야 할 일이다. 수십년 후, 우리 아이들이 사는 세상은 우리의 그것과 달라야만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우리의 눈을 바라보며, 언젠가 물을 것이다. 엄마, 무엇을 했나요?
그런 날이 올 것이다.
부당한 일이 일어났을 때 내 일이 아니라고 관심을 끄고 살아가는 어른이 되고 싶지 않다. 참여의 방식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함께 분노하기에서부터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기, 기부하기, 시위에 참여하기, 공부하기, 계속해서 토론하기 등등. 분노하기를 멈추어서는 안 된다. 언젠가 나의 아들에게 혹시라도 부당한 일이 일어났을 때, 모두가 함께 분노해주기를 원한다면 특히나.
* 이 글을 발행하는 8월 24일 오늘로 88일째 포틀랜드 시위는 현재 진행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