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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플루토 Oct 31. 2020

[포틀랜드 일기] 산불 스트레스받는 세 살 아이

2020년은 고난의 해

2020년. 코비드로 충분히 괴로웠다. 아직도 더 괴로워질 수 있다니. 캘리포니아의 산불을 시작으로 오레곤 및 워싱턴 주에도 산불이 났다. 내 인생 이렇게 괴로워했던 적이 있었나.


내가 한국을 마지막으로 방문했던 건 2014년이다. 미세 먼지가 심각해지기 전이다. 공기가 기본 삶의 질에 얼마나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지 이제서야 알게 되었다. 내가 사는 미국 북서부에 큰 산불이 들이닥치고 나서야 말이다.




첫 산불은 캘리포니아로부터 시작되었다. 벌써 몇주째 샌프란시스코 주변이 산불 연기로 인해 매캐하다는 기사를 읽었다. 걱정되면서도 남일 같았다. 내가 사는 곳 오레곤 및 워싱턴 지역에 산불이 시작되기 전까진. 우리 집에서 한시간 거리 후드산에서 불이 났다고 한다. 산불의 원인은 여러 가지다. 인간 재해인 경우도 있지만 요즘 같은 경우 기후 변화로 인한 것도 많다. 온도가 오르고 건조한 기후일 때, 겉잡을 수 없이 산불이 커지고 늘어난다. 후드산은 포틀랜드 어디서나 보이는 만년설이 보이는 산인데, 그 타격은 엄청났다.


산불 지도를 켜보니 미국 서부를 중심으로 작고 큰 산불들이 가득했다. 한숨이 나왔다. 이건 비전문가가 봐도 도무지 소방 인력으론 끌 수 없는 양이다. 그저, 비가 와야 한다. 늘 음침하게 비가 내리기로 유명한 북서부에서, 비를 이토록 간절히 기다리게 된 건 처음이었다.


포틀랜드의 공기 지수는 순식간에 500을 넘어섰다. 하룻밤 사이에 전 세계에서 가장 대기 오염이 심각한 도시가 되었다. 모든 상점에서 공기 청정기는 동이 났다. 아마존을 살펴 보니 가장 빠른 배달도 일주일이나 걸린다. 어린 아이가 있는 우리 집은, 한시가 급한데. 주변 미국 엄마들을 보니 난리가 났다. 기관지가 약한 아이가 있는 집은 중고 청정기라도 사겠다며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다. 여차저차 박스팬이라도 사서 앞에 필터를 달고 공기를 정화시키라는 팁까지 나왔다. 내가 가르치는 수업은 또 진행되어야 했다. 기숙사에 갇힌 것이나 다름없는 아이들은 하나같이 표정이 어둡고 힘들어 보였다. 앞으로 공기와 비를 단 한순간도 당연하게 여기지 않으리라.


밖을 내다 보니 가슴이 갑갑하다. 한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 공기는 누렇다. 집안 곳곳 탄내가 스며들어오며 목을 죄인다. 두통과 가슴뻐근함. 나도 이런데, 아이는 아프면 어떻게 표현하지? 거라지안에도 연기가 들어와서 나가기가 망설여 졌다. 모든 창문과 문 틈새에 젖은 수건을 올려놓고 미국 엄마들의 추천대로 로즈마리와 타임 등등 허브를 넣은 물을 종일 끓이며 수증기를 냈다. 일산화탄소가 무거워서 일층에 주로 쌓여있단 소식을 듣고, 다른 가족들처럼 이층에서만 주로 생활했다. 음식도 이층에서. 꾸스 방에 모여 꾸스의 크래프트용 의자에 앉아, 무슨 전시 상황마냥 옹기종기 우리 셋은 모였다. 하루 종일, 아이는 집 안에만 그렇게 갇혀 있었다. 처음에는, 재미있어 했다. 갑자기 엄마와 아빠와 함께 꽁꽁 붙어 보내는 하루 종일이라니! 그것도 잠시. 곧 아이는 스쿠터를 타러 가고 싶다고 했다. 조금 공기가 나아졌을 때, 거라지를 비우고 거라지 안에서 스쿠터를 타게 했다. 그 모습이 애처로웠다. 조금 더 수치가 좋아졌을 때, 아이는 텅 빈 회색 거리로 나가 마스크를 끼고 30여분 우리와 뛰며 스쿠터를 탔다. 공기도 무서웠지만 아이의 정신 건강을 유지하는게 더 중요했다. 코로나도 힘들었는데, 삶의 기본인 공기가 질이 떨어지자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공포와 극심한 스트레스가 몰려왔다. 꾸스는 불을 멈추게 해달라는 기도를 끼니때마다 했다. 마치 불이 아주 가까이 와서 너무 뜨겁게 될까봐 두려워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차분하게 상황을 간결하게 전달했지만, 공포심은 주려고 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는 본능적으로 부모의 염려를 감지해냈다. "불 끝나고 바이러스 끝나면 엄마 아빠랑 애니멀 (동물원) 보러 갈래"라는 말을 하기도 했다.



바람이 이렇게 무서웠던 적은 처음이다. 공기 탄 내, 아이를 재우면서 듣는, 바람이 창문을 때리는 소리. 3월부터 계속 격리 아닌 격리 생활 중인 세살배기가 스쿠터 타러 가자고 하는 소리. 꾹 닫은 창문. 황금빛이 아니라 누렇게 변해가는 공기. 다시는 태양을 당연하게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이 모든 산불과 기후 변화. 우리는 우리 자식들로부터 지구를 빌리지 않았나. 우리 자식들은, 우리처럼, 또 자식들에게 이 지구를 빌릴 수 없다면 어떡하지? 우리 앞에 뭐가 있을까.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싶다. 아들에게 말하고 싶다. 나에겐 너의 세계를 책임질 의무가 있어. 하지만 나의 "사과"는 아무것도 바꾸지 않겠지, 우리 모두가 행동하지 않는다면. 오늘밤, 바람 소리는 내 귀에 더 이상 노랫소리가 아니다. 2020년. 마음의 약함과 끈질김을 동시에 깨닫게 된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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