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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린 다시 만날 테니까

미르의 1주기

by 우슬초



오늘이 바로 그날이다. 1년 전 바로 오늘, 미르는 2024년 2월 16일 밤 10시경에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때로부터 1년이 지났다. 싸늘하게 식어가는 미르를 안고 비통하게 울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1년 전의 이야기가 되어버렸다.


떠나기 한 달 전, 미르의 식욕이 급격히 떨어졌다. 어떤 음식을 줘도 한두 입을 먹고 더 이상은 먹지 않았다. 노견이 음식을 거부하면 갈 때가 되었다고 봐야 한다는 말을 종종 듣곤 했다. 미르에게도 그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미르를 오래 진료해오신 병원 원장님께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씀하셨다. 5년 동안 앓아온 심장병이 노화로 인해 악화되어 장기들이 제 기능을 잃었고, 신부전이 합병증으로 왔다고도 덧붙이셨다. 아침저녁으로 수액을 주사하고 약을 먹이면 조금은 호전이 되겠지만 그 기간이 그리 길지는 않을 거라는 말씀도 덧붙이셨다. 보통 심장병을 앓으면 2, 3년을 넘기기 힘든데 5년이나 버텨주었으면 천수를 다 누린 거라면서 집에서 편안하게 지내다가 가게 해주는 것도 미르를 위한 방법이라는 말씀도 조심스럽게 건네셨다.


미르는 심장약을 먹는 내내 참 힘들어했다. 약이 먹기 싫어 이리저리 달아나거나 구석으로 숨어 나오지 않기도 했다. 5년 동안 같은 일이 매일 반복되었다. 그런 미르를 어르고 달래며 약을 먹였다. 숨을 편하게 쉬게 하려면 어쩔 수 없이 미르를 괴롭혀야 했다.


미르에게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았다. 나는 평생을 병마와 싸워야 했던 미르가 마지막 가는 길까지 주사와 약에 시달리게 하고 싶지 않았다. 원장님의 말씀처럼 싫어하는 거 하지 않고 먹고 싶은 거 먹게 해주며 집에서 편안하게 있다가 가게 해주고 싶었다.


병원에서 마음의 준비를 하라는 말을 듣고 나서 한 달 만에 미르는 내 곁을 떠나갔다. 미르의 장기가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점점 말라갔고, 숨 쉬는 것을 어려워했지만 한 달 동안 크게 고통스러워하지는 않았다. 떠나기 전까지 직접 걸어서 산책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나마 다행이고 미르에게 고맙게 여기는 부분이다. 그러나 떠나기 3일 전부터 병세가 급격히 악화되었다. 마지막 날에는 안아줄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하게 아파했고 괴로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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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르와 헤어졌던 날이 떠오른다. 미르는 나와의 작별을 앞두고 자신이 떠날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예감하고 있었다. 마치 다시는 이곳에 오지 못할 것을 알고 있다는 듯, 그전에 마지막으로 집안을 둘러보아야겠다는 듯, 아픈 몸을 이끌고 비척비척 집 안을 돌아다니며 마지막으로 두 눈에 새겨두었다. 힘찬이가 생전에 붕가를 열심히 했던 곰돌이 방석은 미르가 산책한 뒤 목욕하고 털을 말리기도 했던 방석이었다. 내가 외출할 때면 그 방석에 누워 나를 기다리기도 했었다. 미르는 그곳에 한동안 가만히 앉아있었다. 마치 힘찬이와의 추억과 그 방석에서의 시간을 되새기는 것처럼 처연한 표정으로...


미르가 나를 보며 눈물을 흘린 건 집안을 한 바퀴 돌아본 뒤 책상 밑으로 돌아와 앉았을 때였다. 내가 글을 쓰는 동안 늘 미르가 누워있던 곳. 손바닥 만하던 아기 때부터 16년이라는 세월이 흐르는 동안 한결같이 미르가 지켜왔던 그 자리, 책상 밑에 놓아둔 쿠션에 힘겹게 자리를 잡고 앉은 미르가 나를 보며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나는 미르가 눈물을 흘리는 걸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다. 16년 동안 나와 살면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보여준 미르의 눈물이었다. 슬픈 눈동자에 그렁그렁 맺혀있던 눈물이 흘려내려 미르의 눈가 털을 적셨다. 그 눈물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아, 미르가 오늘 떠나려나 보구나....


여동생에게 빨리 오라고 전화를 할 수 있었던 것도 미르가 보여준 눈물 덕분이었다. 미르는 그렇게 우리와의 이별을 슬퍼하고 있었고, 이모가 도착하고 나서야, 보고 싶었던 이모 얼굴을 보고 난 뒤에야 숨을 거뒀다. 기다렸던 이모와 마지막으로 눈을 맞추고 그녀가 건네는 작별인사를 모두 받고서.


동생과 나는 미르에게 많이 사랑한다고, 우리 꼭 다시 만나자고 울면서 작별인사를 나눴다. 나는 숨이 잦아드는 미르를 품에 안고 엄마 꿈에 꼭 나와달라고, 어떻게 지내는지 엄마에게 꼭 알려달라고 부탁했다. 지난 1년 동안 미르 꿈을 자주 꾸었으니 미르가 내 부탁을 들어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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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만 타면 짖고 까칠한 편이어서 핀잔도 많이 받았지만 누구보다 다정하고 애교 많고 귀여웠던 미르였다. 가끔 보는 사람들은 절대 알 수 없는 미르의 진짜 모습을 여동생과 공유할 수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떠난 반려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사람이 없어서 생전에 반려견이 다녔던 동물병원을 1년 가까이 찾아가는 여자분이 있었다. 미르가 다니던 동물병원의 견주분이었는데, 떠나보낸 아이의 이름을 기억하고 불러주는 사람이 동물병원의 선생님들 밖에 없어서 그만 와야지 하면서도 발길을 끊지 못한다고 했다. 그분이 어떤 심정으로 병원을 찾는지 충분히 이해가 되어 가슴이 먹먹했던 기억이 난다. 나는 여동생이 있어서 미르에 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니 감사할 따름이다.


미르는 엄마를 혼자 두고 떠나는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린다는 듯, 차마 발길이 떨어지지 않는다는 듯, 쉽게 숨을 놓지 못했다. 내 품에서 마지막 숨을 쉰 줄 알았던 미르는 침대에 조심스레 눕혀놓자 멈춘 줄 알았던 숨을 다시 쉬었다. 동생과 나는 이게 어찌 된 일인가 놀라고 당황했지만 미르의 숨이 금방 꺼질 거라는 예상을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잠시 가쁘게 이어졌던 미르의 숨은 역시나 다시 멈췄다. 이제는 정말 미르가 갔구나. 여동생과 내가 통곡하고 있을 때 미르는 멈췄던 숨을 세 번째로 다시 내쉬었다. 엄마를 혼자 두고 가는 것이 너무 걱정되어서 차마 떠나지 못하겠다는 듯...


나를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보았고, 누구에게도 보여준 적 없는 날것의 내 모습을 보고 겪었으며, 그렇기에 세상 누구보다 나를 잘 알고 있던 미르였다. 그렇기에 떠나기가 더 쉽지 않았을 것이다. 자신이 떠나고 나면 엄마가 얼마나 힘들어할지 훤히 보였을 테니까.


눈물겨운 세 번의 사투 끝에 미르는 숨을 놓았다. 힘찬이는 마지막 순간에 발작이 있었고, 비명을 많이 질렀다고 했다. 생전에 참 많이도 짖어서 마지막도 시끄러울 줄 알았던 미르는 어떤 짖음도 없이 너무도 조용하고 고요하게 눈을 감았다. 점점 차가워지고 굳어가는 미르를 안고 그 밤을 뜬눈으로 보냈다. 함께 밤을 보내줬던 여동생이 새벽녘에 잠깐 잠이 들었는데 꿈을 꾸었다고 했다. 흰 눈이 펄펄 내리는 꿈을.


"미르가 편안해졌나 봐."


그 말이 큰 위로가 되어주었다. 장례를 치르러 가는 동안에도 한 가지 생각만 했다. 미르가 이제는 안 아프잖아. 그거면 됐어. 그거면 충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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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례업체로 가기 위해 집을 나섰는데 겨울 날씨가 맞나 싶을 정도로 맑고 밝고 화창했다. 그리고 토요일이었다. 평일이었다면 동생이 장례식장까지 가주기 위해 일정을 변경해야 했을 것이다. 마치 이모의 스케줄을 고려한 것처럼 미르는 금요일 밤에 떠났다. 그건 나를 위한 미르의 배려이기도 했다. 동생이 곁에 있어주며 장례절차를 밟아준 덕분에 나는 미르만 생각할 수 있었다.


화장을 하기 전, 미르가 좋아하던 사료와, 간식과, 우리의 인생샷이 담긴 사진과 함께, 내 머리카락을 잘라 미르 옆에 놓아주었다. 미르가 엄마 냄새를 잊지 않길 바라며, 잘 기억하고 있다가 다시 만날 때 나를 꼭 알아봐주기를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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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은 유한하고 세월은 흐르기 마련이다. 하루하루 견디며 살아내다 보면 나에게도 마지막 숨을 내쉴 순간이 오고야 말리라. 그때면 우리 미르를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흰 털을 날리며 나를 향해 반갑게 웃으며 달려오는 미르를 향해 나도 온 힘을 다해 뛰어가겠지.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벅찬 미소를 지으며 미르에게 달려가 내 품으로 폴짝 뛰어오르는 미르를 힘껏 안아줄 수 있을 것이다.


"엄마! 정말정말 보고 싶었어요!"


미르는 내 품에 안겨 생전에 그랬던 것처럼 촉촉한 혀를 날름거리며 정신없이 뽀뽀를 해주겠지. 그러면 나는 사무치도록 만지고 싶었던 미르의 작고 말캉하고 따뜻한 몸을 마음껏 쓰다듬으면서 미르의 목덜미에 내 코를 묻고 실컷 미르의 냄새를 맡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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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간에 못 나눴던 이야기를 쫑알쫑알 다정하게 나누며, 다시는 헤어지지 않을 그곳으로 나란히 걸어가는 우리의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행복하다. 우리보다 먼저 와 기다리고 있던 힘찬이가 반가운 얼굴로 웃으며 긴 다리로 껑충껑충 뛰어오는 모습도 그려진다. 코를 찡긋거리며 활짝 웃는 힘찬이의 듬직한 어깨 뒤로 하루와 별이가 콩콩콩콩 달려오고, 청거북과 토끼가 그 뒤를 따르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무 조건 없이 인간을 사랑했고, 지금도 사랑하고 있을 그 아이들과 그렇게 언젠가 다시 만나 영원히 헤어지지 않고 살 수 있게 되기를 빌고 또 빌어본다.






덧붙임_지금까지 기록한 글들은 사랑하는 아들 미르를 추모하는 글이자, 제가 그다지 좋은 반려인은 아니었다는 고백이기도 합니다. 그런 이유로 글을 쓰는 동안 마음이 꽤나 괴롭기도 했습니다. 잘해준 것보다 못해준 것이 더 많았음을 확인하는 시간이었으니까요.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르 이야기를 기록한 건 잘한 일이라고, 아픔과 슬픔을 참아가며 글을 쓰기를 잘했다고 스스로에게 칭찬을 건네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글을 읽어주신 분들이 계서서, 제 이야기의 여정에 동행해 주신 덕분에 글을 마칠 수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감사드립니다. 새로운 이야기로 다시 뵐 때까지 건강하시길 빕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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