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이 사랑으로 잊혀지네

헤어짐과 만남

by 권민창

연인 사이에서 헤어짐이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누구에게나 아프고 힘든 일입니다.

몇 년 전이었을까요, 오랜만에 모임에서 본 친구가
반송장이 되어 나타났습니다.
볼살은 푹 패여있고, 수염은 듬성듬성 나서 누가 봐도 무슨 일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모두가 놀라 그 친구에게 물어봤죠.
그러나 다들 속으로는 예상하고 있었을 겁니다.
짐작대로 그 친구는 오래 사귄 연인에게 이별을 통보받았고, 파도처럼 밀려오는 아픔에 상처받고 고통 받고 있었습니다.
모임엔 술을 마시러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혼자 마시면 자살생각까지 한다고.
심지어 이틀 전엔 옥상 난간에까지 올라갔었다고 합니다.
평소에 술을 잘 마시지 않는 친구였음에도 불구하고,
술을 들이붓더라고요.
그래야 좀 덜 힘들답니다.
'괜찮아, 더 좋은 사람 만날거야, 여자가 걔 뿐이냐, 니가 아까웠어.'

친구들은 으레 하는 위로를 건넸지만 그 친구는 더 힘들어했던 것 같습니다.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저는 이렇게 얘기했던 것 같아요.
‘잘 헤어졌어, 걔 별로였어 이딴 개소리는 안할게.
너 만났던 사람 정말 괜찮은 사람이었어.’
‘응,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모두가 이별하고 모두가 사랑하고, 낯선 사람은 내 사람이 되었다가 다시 낯선 사람이 되는거야. 하지만 언젠가는 그 낯선 사람이 평생 내 사람으로 머물겠지.
깊었던 만큼 충분히 아파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그 아픔의 깊이보다 더 깊게 사랑하고 행복했으면 하고.
아, 그리고 혹시나 다시 만난다고 웃으면서 연락하면 존나 욕하면서 축하해줄게.’

미 비포 유라는 영화 보셨나요?
엄친아의 표본인 윌이라는 남자주인공은 불의의 사고로 전신마비로 살아가게 됩니다.
만능스포츠맨이었던 그가 전동휠체어하나에 의지해 왼손 엄지, 검지 손가락만 까딱거릴 수 있게 된 거죠.
오랜만에 찾아온 사랑했던 연인은, 가장 친한 남자인 친구와 교제사실을 말하지만 그는 의자를 던져버리거나 친구의 얼굴에 주먹을 날릴 수도 없습니다.
그저, 속으로 분노를 삭힐 수 밖에 없어요.

그런 그에게 루라는 여자가 다가옵니다.
도우미역할로 고용됐지만,
윌은 루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해요.
밀어내고 또 밀어내도 오뚜기처럼 굳게 서서,
분노와 절망으로 가득 차 있던 그의 마음에
사랑과 희망이라는 연고를 발라주죠.
그리고 영화 중반에 윌은 루에게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거 알아요 클라크?
아침에 눈을 뜨고 싶은 유일한 이유가
당신이라는 걸.'

사실, 이 글에서 영화전체를 다루고 싶지 않습니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눈물이 나려 하거든요.
그냥 가슴 아프도록 행복하고 따뜻했던 사랑이었고,
서로에게 진실로 다가왔던 그런 사랑이어서 좋았어요.

사랑이라는 건 단순히 같이 잠자리를 하고 다음날 서로의 향기를 나눌 때 깊어지는 게 아니라, 그 사람이 갖고 있던 아픔과 절망을 함께 덜어줄 때 깊어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 친구는 어떻게 됐을까요?
사랑이 사랑으로 잊혀진다고, 루같이 매력적인 새로운 인연을 만나 세상 행복하게 살고 있습니다.
아무쪼록 그 친구가 따뜻한 연애를 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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