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 모르시는 거 같은데 여기는 무조건 밀어야 돼요.

제가 마음에 들면 되죠. 제가 특별히 부탁드렸잖아요.

by 권민창

최근에 우울한 일도 있어 기분 전환 겸 미용실에 갔습니다.
한 번도 가본 적은 없었지만 사진 상으로 머리가 굉장히 마음에 들었고, 예약을 잡고 머리를 하러 갔습니다.
그런데 저는 머리를 할 때 딱 한 가지만 부탁을 드리는데요,
제가 두상이 좀 긴 편이라 구렛나루를 너무 끝까지 밀면 얼굴이 더 길어보여서
밑에 라인은 남겨달라고 부탁을 드리는 편입니다. 그거 말고는 전적으로 미용사님께 맡겨요.

그렇게 부탁드리니, 연세가 지긋한 미용사분이 알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런데 그래 놓고 바로 구렛나루를 밀어버리시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아, 죄송한데 제가 여기는 좀 살려달라고 말씀을 드렸는데..’라고 했어요.
당연히 ‘아, 죄송합니다. 소통에 오해가 있었나봐요.’라는 말씀을 하실 줄 알았는데 눈을 똥그랗게 뜨시고 ‘아니, 잘 모르시는 거 같은데 여기는 무조건 밀어야 돼요.’ 라고 하셨어요.
좀 어이가 없었지만 다시 정중하게 말씀 드렸습니다. 최대한 말끝을 흐리며 미용사분이 기분 안 나쁠 수 있게 말이죠. 혹여나 그렇게 돼서 제 머리에 해코지라도 하면 큰일 나니까요.
‘아니, 제가 그래도 여기는 살리고 싶다고 말씀을 드렸는데..’
그러자 다시 강하게 말씀하십니다. ‘제가 19살부터 40년 가까이 미용을 했는데, 여기 남기는 사람은 없어요.’
저도 슬슬 화가 치밀기 시작했습니다.
‘아니 제 눈에 안경이라고 제가 마음에 들면 되죠. 제가 특별히 부탁드렸잖아요.’
그러자 갑자기 한숨을 쉬시더니 ‘알겠어요. 야! 니가 머리 해드려.’ 하며 다른 직원에게 제 머리를 맡기더라고요.

보통 머리를 할 때 커트해주시는 미용사분과 가벼운 농담과 일상 얘기를 주고 받는 편이지만,
그 날은 머리하는 2시간 내내 미용실에 침묵이 흘렀습니다.
결과적으로 구렛나루쪽 빼고는 굉장히 마음에 드는 디자인의 머리가 나왔지만, 다시는 그 미용실에 가지 않을 생각입니다. 한 사람의 인간으로서 존중 받는다는 느낌을 전혀 받지 못했거든요.

미용실에서 나오니 세상이 참 아름다워 보이더라고요. 오랜만에 굉장히 숨 막히는 경험을 했던 거 같습니다.

이 날 미용실 아주머니는 ‘전문성’과 ‘경력’으로 저를 짓눌렀습니다.
저의 ‘취향’과 ‘선호’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요.

아주머니의 마음가짐은 이런 거겠죠.
‘내가 너보다 나이가 훨씬 많고, 이 쪽에서 훨씬 더 전문가니 넌 내 말을 들어야 해!’
그 불편한 경험을 하고 나면서, 제 인생을 돌아보게 됐습니다.
‘나는 누군가보다 좀 더 경험을 했다는 이유로, 좀 더 오래 살았다는 이유로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조언이나 훈수를 하고 있진 않을까?’

저도 돌아보니 그런 경우가 많더라고요.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며 많은 사람들과 다양한 대화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안에서 서로의 공통점을 찾고, 비슷하지 않은 사람들을 배척할 때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향이 다르다는 이유나, 종교적 성향이 다르다는 이유로 그 사람의 인생과 경험은 존중하지도 않고 무시해버리는 거죠.
흔히 우리에게 ‘꼰대’라고 불리는 사람들은 자신이 경험하고 느낀 게 전부인 세상에 삽니다.
그리고 그 세상의 기준으로 사람들을 판단하구요.
하지만 이런 경우에 본인 스스로가 발전하고 나아지기는 힘든 거 같아요.
누군가에게 원치 않는 상처를 주거나, 소통이 되지 않는다고 느껴질 때 본인의 의견을 고수하기보다 상대방이 어떤 걸 원하고 어떤 걸 말하고 싶은지 먼저 들어주고 공감해주면 어떨까요?
그럴 때 상대방의 꽁꽁 언 마음이 눈 녹듯 풀리는 경우를 많이 본 거 같아요.
말의 끝이 날카로워 상처를 주기보다는, 둥글게 상대방을 안아줄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시길 바래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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