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투가 뭐가 어때서
팔에 자신이 키우던 강아지의 얼굴과 하늘로 간 날짜를 새긴 동생에게,
누군가는 ‘이미 죽은 강아지를 쓸데없이 왜 몸에 새기냐, 나중에 분명 후회한다.’라고 얘기했고, 또 누군가는 강아지 이름을 물어본 뒤, ‘니가 봄이를 정말 많이 아꼈구나. 봄이는 너라는 아빠와 함께 했다는 추억만으로 하늘에서도 정말 행복할 거야.’라고 했습니다.
그 친구에게 타투에 어떤 의미가 있냐고 물어보니, 세상에서 제일 사랑한 동생을 잃은 날, 정말 슬펐고 힘들었는데 하늘에 있는 봄이를 생각해서라도 열심히 사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라는 마음으로 했답니다.
누구보다 예의바르고 열심히 살며, 또 착한 친구였지만 주변에서 타투를 했다는 이유만으로 가볍게 바라보는 그 시선을 견디기가 제일 힘들다고 했습니다.
저는 그 동생에게 니가 옳다고 믿는 걸 했으니 그 선택은 옳은 거고, 사람들의 시선에 신경 쓰지 않는 게 힘들겠지만, 힘들 때마다 타투를 보며 그 때의 다짐을 되새기며 이겨냈으면 좋겠다고 얘기했습니다.
‘튀지 말고 평범하게 행동해.’ ‘쓸데 없는 짓 하지 말고 중간만 가.’
진리는 아니지만, 마치 진리인양 많은 사람들이 신봉하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진리의 기준에 벗어나는 사람을 ‘무리에서 이탈한 낙오자’나, ‘패배자’로 규정짓는 경우도 있는 거 같아요.
하지만, 삶을 살아가는데 있어 ‘이렇게 살아야 한다.’라는 정답이 적힌 가이드북은 없습니다. 우리 스스로가 가이드북을 적어나가는 연필이 되어야 하는 거죠.
그 친구는 타투를 한 선택을 함으로써 사람들의 시선 말고도 다른 불이익들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이름 있는 회사에 입사하고 싶다면, 반팔을 입기는 힘들 거예요. 하지만, 그것도 오롯이 그 친구가 감내해야 될 문제지, 입사하는데 도움 줄 것도 아니면서 차가운 멸시의 시선을 보내거나 먼저 가시 돋친 말을 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 친구가 나에게 무례한 행동을 한 것도 아니니까요.
즉, 선택에 대한 책임은 오롯이 본인이 지는 겁니다. 우리는 그저, 그 사람의 선택을 응원해주고 앞길에 대한 축복을 빌어주면 되는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