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운을 믿거나 믿지 않는 우리들을 위하여
금요일입니다.
장마가 시작되었는지
어제부터 후텁지근한 날이 계속이네요.
요맘때쯤 되면 '여름휴가 어디로 갈까?'
계획들 많이 세우시죠?
오늘 소개할 책은 무언가를 찾아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는 두 사람의 이야기입니다.
글과 그림 모두 스페인의 작가들이 썼습니다.
파란 제목의 행운 씨든 짙은 붉은 제목의 불운 씨든 어디서부터 보셔도 아무 상관없답니다.
저는 행운 씨 이야기부터 읽어볼게요.
가끔 순한 바람이 불곤 합니다.
바람이 부는 대로 따라가야 할 때이지요.
휴가를 즐길 자격이 있다고 생각한 행운 씨.
지구본을 바라보다 "섬에 가 보자!" 라며
집 근처 여행사를 불쑥 찾아갑니다.
그는 느꼈거든요.
이 문을 열고 나가면,
찾고자 하는 게 있을 거라고 말입니다.
그는 세레레 섬을 추천받았고 예약을 하고 가는 법을 귀 기울여 들었습니다.
아침 일찍 맞춰놓은 자명종이 울렸지만
그는 아주 느긋한 사람이었기에
차분히 서두르지 않고
모든 일을 그대로 즐겼습니다.
공항에 도착했을 때는
비행기 출발 시간이 무척 늦춰졌지만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요.
느긋하게 시간을 보내다 모자와 복권도 샀습니다.
비행기가 연착되는 바람에
세레레 섬으로 떠나는 배가 있는
항구까지 가는 기차를 놓쳤죠.
하지만 안내소에서는
버스를 타면 된다고 알려주었어요.
출발 전 두 시간 정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그는 도시를 걸으며 구경을 했고
차 시간이 다 되었을 때는
렌터카를 빌리기로 마음을 먹습니다.
그때 곤경에 처한 아주머니 한 분을 도와준 덕분에
그는 저녁식사에 초대받습니다.
배 대신 아주머니의 아들인 크리스토발의 도움으로
세레레 섬에 도착해 호텔 지배인과
그의 딸 마리나를 소개받습니다.
그는 섬에서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냅니다.
두고 온 고양이가 잘 있는지
확인하는 전화까지 깜빡 잊었죠.
그가 잊은 것은 그것만은 아닙니다만
즐거웠던 것은 분명합니다.
책의 중간 지점을 기준으로 뒤집혀 있는 불운 씨의 이야기로 가 봅니다.
가끔 반대로 바람이 불곤 합니다.
그럴 때면 지나치게 억지를 부려서는 안 되지요.
불운 씨에게는 그리 멋진 일 년이 아니었어요.
언제나 마음이 무거워 고개를 숙이고 다녔어요.
그는 누가 흘린 세레레 섬에 대한 광고지를 보고
불쑥 여행이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가방을 싸서 두 손에 꽉 진채 잠이 들었습니다.
늦잠을 잔 그는 급히 서둘러 공항으로 떠났습니다.
하지만 이미 비행기에는 자리가 없었습니다.
그는 복권을 한 장 샀어요.
그리고 렌터카를 빌려서 종일 운전을 했습니다.
지치고 피곤해서 쉬고 싶었어요.
그는 세레레 섬으로 가기 위해
항구로 가는 버스를 타려고
달리기 선수처럼 달렸습니다.
하마터면 나이 지긋한 아주머니 때문에
버스를 놓칠 뻔했죠.
겨우 버스에 오른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지만 깜빡 잠이 들었고
내려야 할 정류장을 한참 지나고 말았어요.
버스 종점에는 묵을 숙소도 없었고
날씨마저 나빠집니다.
그에게는 하루가 너무 길었어요.
그는 우여곡절 끝에 항에 다다라 배를 탔고
섬에 도착했지만 하나뿐인 호텔에는
방이 없었습니다.
이미 오는 길에 너무 많은 힘을 써
불평을 할 기운조차 남아 있지 않았죠.
그는 행복해 보이는 사람들로 가득한 길을
천천히 걸었습니다.
뭘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도대체 누가 여행을 떠나라고 부추긴 걸까요?
그는 떠나온 곳에서처럼 고개를 숙인 채
땅만 보며 걷다가
종이 조각을 발견하고 주워요.
그때서야 자기가 복권을 샀다는 걸 떠올렸죠.
하도 지친 데다 맥도 풀려, 주운 복권을 손에 든 채
거리 끝까지 터덜터덜 걸었고
마침 거기서 복권 가게를 발견했지요.
행운이 있을 것 같지 않은 날이었지만,
숫자를 맞춰 보고 싶다는 생각에
가게로 들어갔습니다.
아직 세레레 섬을 즐길 시간은
많이 남아 있었답니다.
휴가에서 돌아온 그들에게는 어떤 일이 생길까요?
그림책에서 직접 꼭 확인해 주시고요.
이 두 이야기의 시작에는
재미난 소제목이 달려 있답니다.
행운 씨의 이야기에는
'행운을 믿지 않는 사람들을 위하여'
불운 씨의 이야기에는
'행운을 믿는 사람들을 위하여'
읽기 전, 이 문구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
한참 들여다보았어요.
그리고 책을 다 읽고 나서 '과연!' 하고 감탄했습니다.
이 책은 상반된 삶의 방식을 가진 이들이
여행을 떠나는 이야기로 전개됩니다.
서로의 여행 과정 속에 상대편의 이야기가
곳곳에서 설명되는 재미난 구조로 이뤄져 있고
그것을 찾아보는 것만으로도 즐거움이 있어요.
(면지에도 이들의 개성과 과정이 잘 드러나 있습니다)
사실적인 그림이 글을 잘 표현하고 있어서
그림을 보면서 이야기에 이입하는 즐거움도
매우 큰 그림책입니다.
제 아이는 그 수수께끼를 찾아내는 재미로
요즘 매일 이 책을 들여다봅니다.
저도 아이 덕분에 알아차린 요소들이 꽤 많네요.
행운 씨는 행운을 믿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는 매 순간 자신에게 주어진 것에 집중하고
충만감을 느끼려는 사람이죠.
비행기 시간을 앞두고 이웃에 고양이를 맡기면서도
커피 한잔의 여유를 천천히 즐길 줄 압니다.
갑작스러운 상황에는 불평보다는 그 상황에서
자신이 가장 즐거울 수 있는 감각이 있는 사람이죠.
행운 씨 같은 사람에게는
행운이란 갑작스레 찾아오는 것이 아니라
주어진 매 순간 곳곳에서 발견하고
느끼는 일일 겁니다.
반면 불운 씨는 행운을 믿어요.
지금은 힘들지만 이 고비가 넘어가면
행운이 찾아올 거라고 생각하고
늘 바쁘게 뛰고 힘들게 애를 씁니다.
그의 순간은 피로하고 고되어
보는 우리는 안쓰럽다 못해 답답하기도 하지만
행운을 믿는 그는 결국 행운을 만납니다.
두 사람이 교차하며 잃고 얻은 것에 대한 판단은
모두 읽는 우리에게 맡겨져 있답니다.
아마 이 책을 보며 처음에는 행운 씨와 불운 씨를 비교하며
'그래, 행운 씨처럼 순간의 행복을 누려야 해.
행복은 도처에 보석처럼 뿌려져 있고
그것을 찾고 느끼는 것은 우리의 몫이야.'
라고 생각하게 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삶이라는 것, 추구하는 가치라는 것이
누구에게나 절대적으로
하나의 명제로 다가오지는 않죠.
살아가야 하는 이유와 각자의 방식을
추구할 자유가 있고요.
제가 이 책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구성 자체가 반으로 나뉘어 서로 대조적인 인물이
여행을 마주하는 과정을 보여주다 보니
언뜻 보기에 한쪽의 행운이
다른 쪽의 불운을 강조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림과 글을 서로 바꿔 여러 번 읽다 보면
우리에게 더 깊고 중요한 질문을 던진다는 점이지요.
매순간 행복과는 거리가 멀어 보이는 불운 씨도
행복할 것입니다.
그는 행운을 믿었고 행운은
그를 배신하지 않았거든요.
그가 세상을 대하는 관점에서는요.
마찬가지로
사람들의 눈에 행운이라 여겨질 것을
잃어버린지도 모른 채
순간에 집중했던 행운 씨는 그만의 방식으로
행운을 찾죠.
결국은 행운이란 객관적 지표로 규정할 수 없이
각자 생각하고 살아가는 데 따라
다 다른 것이 아닐까요?
당신은
'행운을 믿지 않는 사람'이신가요?
아니면
'행운을 믿는 사람'이신가요?
어느 쪽이든 오늘
당신만의 행운과 함께 하시기를 바라며
주말 잘 보내세요.
내 이름은 빨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