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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아들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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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내이름은빨강 Aug 24. 2020

갖고 싶은 것이 많아 슬픈 짐승

아이의 장난감 타령을 통해 돌아본 나의 소비욕구와 불안감

호기심이 많은 아이는 늘 갖고 싶은 것이 있다. 얼마 전에는 다있소에서 파는 스티로폼으로 된 비행기였고, 그 전에는 좋아하는 캐릭터인 캡틴 아메리카의 방패모양으로 디자인된 스피너였다. 얼마 전 그네 타러 갔던 놀이터에서 어떤 형아가 조종기 있는 장난감 스포츠카를 모는 걸 보고 가지고 싶어 애가 닳는다.


반달 모양 눈꼬리로 눈웃음을 치며 기승전 '스포츠카'를 노래하고 있다. 그 모습이 귀여워 흔들리다가도 이내 마음을 다잡는다. 이미 장난감에 엄격한 평소와 달리 휴가 못 간 대신이라며 이런저런 물건을 기분 내 사 주기도 했고.


남편이 한국에 들어오거나 우리가 나갈 때, 아이에게 점수도 따고 무언가를 해 주고픈 자기 만족도 채우는 아빠 덕분에 장난감을 한 두 개 얻긴 하지만, 그리 알뜰하지도 않으면서 장난감에는 유독 인색한 엄마 덕분에 아이의 욕구는 늘 제대로 채워질 줄 모른다.


아이에게 쉽사리 물건을 사 안기지 않는 데는 오랜 트라우마가 작용했다. 삶의 상당 시간, 넉넉해 본 적이 없었다. 늘 갖고 싶은 것, 하고 싶은 일은 많았다. 하지만 집에서 유일하게 그것을 할 수 있는 존재는 아빠였다. 아빠는 돈을 벌었다. 그 돈으로 서예에 들어가는 각종 물품들과 종이, 책들. 그리고 등산, 테니스, 골프, 지금은 암벽등반, 그 사이사이 각종 아웃도어 용품과 캠핑에 쓰이는 장비들 같은 것을 샀다. 그것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조금 더 여유롭고 넉넉하게 살았을지도 모른다. 경제적으로도 공간적으로도.


엄마는 비슷비슷해 보이는 물건들이 끊임없이 집으로 도착하는 모습에 아빠와 자주 다투었다. 당장 아이들의 학원비와 먹고 살 생활비도 쪼들리는 마당에 아빠는 배낭이며 텐트의 가짓수가 지나치게 많았다. 아무 거나 사지도 않았다. 최고급 제품을 사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이었다. 어딜 가서 장비를 펼치면 늘 사람들이 찾아와 구경을 할 정도였다. 아마 그것이 아빠의 소비욕구를 부추기는데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엄마가 꼭 필요한데 써야 할 돈이 궁해 전전긍긍해 부업까지 할 때, 그런 환상에 사로잡혀 지나친 소비에 빠진 아빠는 어떤 면에서는 이기적이고 무책임한 사람이었다.  


문제는 나 또한 아빠만큼이나 물욕이 강한 사람인 것이다. 하고 싶은 일은 늘 끊임이 없었고 이런저런 물건이 갖고 싶었다. 이 세상에 소유하고 싶을 만큼 멋진 물건은 얼마나 많으며 또 끊임없이 생기는가?

 싸우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면서 하고 싶은 일을 마음껏 하면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희생시키지 않으려면  모든 것을 아우를  있는 능력을 갖춰야 한다는 강한 신념을 갖게 되었던  같다. 안정적인 직장을 고집했던 것도 경제적 능력이 있어야  안의 수많은 욕구를 정당하게 실현할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Photo by Egor Myznik@unsplash


취업을 하고 수입이 생긴 뒤, 하고 싶은 것들을 했다. 늘 부족한 월급에 불만도 가졌지만 오랜 결핍으로 인한 강한 욕구와 대비된 소비에 대한 죄책감이 오히려 투자라는 것에 원동력이 되었으니 다행인지도 모르겠다. 내게 투자란 이기적이지 않으면서 타고난 호기심을 채워 나를 실현할 수 있는 욕구 충족의 한 방편이었다. 남편이

"이 정도면 됐지. 뭘 자꾸 무리를 하냐."

고 다그칠 때도 욕심을 낸 것은 너무 어린아이, 불투명한 나와 남편의 직장 때문에 미래를 대비하는 이유도 있지만 자꾸만 솟아나는 내 안의 욕구가 더 큰 원동력이었다.




주부생활 8년 차지만 아직 가계부를 꼼꼼하게   모른다. 생활이 단순하니 큰돈  일이 없다가도 1년에 몇 번 남편을 만나러 오가느라 비행기 값이 들거나 계절이 바뀌며 지름신이 와서 충동구매를 하거나 하면 무계획 지출을 일삼는 일들이 아직도 있다. 투자를 한다지만 수입과 지출도 철저히 통제하지 못하는 어설픈 수준이다. 투자도 조금이나마 수익이 나긴 했지만 아직 사이버 머니 형태라 실질적은 소득은 근로소득뿐이다. 언제 끊길지 모르는 불안을 내재하고 있다. 그래서  내게는 나의 수입을 넘어서는 소비욕구를 통제해야 한다는 강한 강박이 있고 그것은  자신은 물론 나를 너무도 닮은 아이에게도 이어진다.


Photo by Karine Germain@unsplash


아직 어리기도 하고, 아이와의 시간을 희생하며 나가 돈을 벌고 있으니 갖고 싶은 것은 좀 사줘도 되지 않을까 싶어 사준 적도 있었다. 그러나 돌아서면 또 다른 것이 아이의 관심을 사로잡았고 결국 욕구는 또 생겨났다. 지난번 비행기를 사주면서 묻지도 않았는데 '이젠 더 이상 장난감을 사달라고 하지 않겠다.'라고 했다. 그런 아이가 요즘 말끝마다 '스포츠카'를 노래 부르고 있다. 녀석보다 훨씬 오래 많이 물건에 홀리고 사들이고 무감각해지고 후회한 나는 잘 안다. 그 욕구가 채워지는 순간, 또 다른 욕구가 빈자리를 메꿀 것을.


아직은 절약과 저축보다 소비에 더 자신 있는 나는 아이에게 내 경험에 의한 소비의 면면을 알려준다. 아직 일곱 살인 아이는 우리 가정에 돈이 어떻게 들어와 나가는지 막연하고 모호한 채로 알고 있을 뿐이고 결국

"그래도 딱 이번 한 번만 사주면~"

으로 끝난다. 나도 '딱 이번 한 번만' 해 주고 싶은 마음도 굴뚝같고 사는 게 뭐라고 그냥 좋은 게 좋은 거다로 정리해 버리고 싶기도 하다. 하지만 내가 겪었던 생생한 소비의 실패와 허무감을 조금씩 알려주고 싶다. 비관론으로 일관하지 않도록 선을 지키면서.


아이는 다행히 아직은 경제적인 문제로 엄마, 아빠가 매일같이 부부싸움을 하는 경험을 하지 않았고, 소비에 대해 나와는 다른 정서를 갖게 되겠지만 소유가 삶을 행복하게 해 주지 않는다는 것만큼은 꼭 알았으면 좋겠다.


아직 내 삶은 무언가 충족되지 않은 불안감이 크다. 오랜 강박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마음대로 살기에는 아직 부족한 것 같아 누군가의 희생을 강요하게 될까 봐 늘 불안하다. 이것은 내가 잘 다루고 극복해야 할 문제다. 충분히 가진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봐야겠지만 이와 더불어 아이는 나의 실패와 트라우마를 조금은 현명하게 이해하고 성장했으면 좋겠다. 우리는 이미 갖고 싶은 게 너무 많아 슬픈 짐승이고 이토록 풍요로운 현대에서 맨 정신으로 현명하게 슬기 위해서는 나와 내 소중한 누군가를 희생시키지 않도록 정신을 온전히 지켜야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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