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과 삶 : 어디서 무엇을 하든 나를 사랑하는 힘
금요일입니다.
요즘 새벽에 일어나 사부작 거리다 보면
오른쪽으로 나 있는 커다란 창으로
하늘의 파노라마를 마음껏 감상할 수 있는데요.
어느 계절이든 새벽이 물러가며
아침에 자리를 내어주는 장면은 아름답지만
요즘처럼 미세먼지 없는 맑은 가을날,
샛별과 구름, 어둠과 빛이 만들어 내는 장면이
변화무쌍하면서 감동스럽기까지 하네요.
오늘 함께 읽고 싶은 그림책은
낸시 칼슨의 <난 내가 좋아!>입니다.
어제는 아침에 일어나 예상했던 것보다
마음 편안하고 여유로운 날이었어요.
2년 전 가을, 사놓고 한 번도 못 입었던
와인빛 원피스가 생각나
모처럼 5센티 핑크 베이지빛 구두를 꺼내
멋을 부려 보았고요.
업무 시간 동안 할 일들을 차근차근 해 내고
최근에 몰두하는 다른 일로 깜빡하고
미처 챙기지 못했던 일들도
챙길 여유도 있었습니다.
최근 갱신된 계약 건에 대해
다음 달 초까지 신고를 해야 할 일이 생겨하려고 인터넷 사이트에 접속했더니
그 건도 경미한 문제가 있었지만
작년에 처리 완료한 것으로 기억하는
다른 계약 건이
신고 '작성 중'으로 되어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 후 지옥에 있는 기분이 되었습니다.
큰 액수의 과태료가 발생하는데
그 돈도 너무 아까웠고
과태료라는 것이 무서웠어요.
퇴근길 갑자기 단톡 방에는
경미하지만 업무지시가 떨어지고
다른 일로 지인들의 톡이 폭발하고
복잡한 마음에 가슴이 터질 것만 같더군요.
지하철에서 손이 덜덜 떨려서
문득 떠오르는 절친에게
다짜고짜 전화를 해서
하소연을 했지요.
바쁜 와중에도 차분하게
제 말을 들어주고 위로를 해주었어요.
남편에게도 전화를 걸었는데
그도 많이 놀랐는지
'괜찮다'는 말을 못 하더라고요.
내년 육휴를 하고
아이와 계획하는 일이 있는데
그 비용을 고스란히 날리게 된 셈이라
무엇보다 자신이 너무 싫었네요.
왜 이렇게 어처구니없는 실수를 했을까?
왜 한번 더 꼼꼼하게 챙기지 못했을까?
좀 전에 친구는
'다른 일도 같이 하느라고 바빠서 그렇지.'라고 마음 깊은 위로를 해주었는데도
스스로 너무 못났고 한심스럽기만 했습니다.
다른 일 하느라
이런 기본적인 것도 못 챙기고 놓치고
내가 뭘 하고 사는 걸까...
자괴감은 커져만 갔어요.
괜스레 더 답답해져서
타박타박 걷다가
저 앞에 우뚝 솟은 집 입구를 쳐다봤습니다.
이대로 집으로 가면 아이와 엄마에게
불안한 감정을 고스란히 드러낼 것 같았지요.
집 앞 길모퉁이에 있는 꽃집에 들러
하얀 리시안셔스 몇 송이와
유칼립투스 잎을 샀습니다.
퇴근길 유리창 너머로
예쁜 꽃들에 눈길이 가면서도
'곧 시들 텐데 잘 가꾸지도 못하는데.' 싶어
늘 지나치곤 하던 일이었어요.
꽃을 받아 들고
영화 작은 아씨들의 서두에 나오는
루이자 메이 올콧의
'고난이 많았기에 즐거운 이야기를 쓴다.'는 문장이 떠올라서
인스타에 사진도 올렸어요.
발걸음을 되돌려 마트로 가서
초코맛 빵빠레와
아이가 좋아하는 딸기 수퍼콘도 샀습니다.
친정엄마랑 아이랑 셋이 나눠먹으려고요.
꿀꿀할 땐 달달한 게 최고죠.
집에 와 보니 엄마가 오므라이스를 해 두셨네요.
아이스크림까지 후식으로
든든히 배를 채우고 나서
진정되지 않는 감정을 달래며
상황을 정리해 보았네요.
'내가 정말 그렇게 했을까?'
의문이 떠올라 사이트에 재접속해서
예전 신고 기록을 샅샅이 뒤졌어요.
이유는 모르겠지만
아까 제가 봤을 땐
미처리 사항에 대한 목록만 딸려 올라왔고
완료 처리된 내용은 보이지 않았어요.
여기저기 조회를 해보니
미신고되었다고 보였던
그 건이 신고 완료도 되었고
증명서 발급 버튼이 나와 있는 게 아니겠어요...
그 순간 기쁨과 안도 별별 감정이 다 스치면서
깨달은 게 하나 있어요.
'아, 나는 나를 참 못 믿는구나.'
<난 내가 좋아!>의
귀여운 돼지는
자신의 모습 하나하나를 사랑해요.
누가 어떻게 보던지
내가 무엇을 했던지
상관없이요.
속상한 날도 넘어진 날도
자신을 어떻게 챙겨야 할지
잘 아는 친구예요.
내가 언제 무엇을 하면 즐거울지
또 힘겨울 땐 어떻게 하면 좋을지
그 방법을 잘 아는 것만큼이나
내가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나는 나라고 믿어주는 마음,
제겐 정말 필요한 것이었요.
어린 시절부터 무수히
못하고 실수하는 모습에만
걱정과 관심을 받아온 저는
아직도 저를 그렇게 보고 있었어요.
작은 것으로 나를 위로하며
넘어지고 실수해도
나를 일으키고 또 노력하며
조금씩 나를 사랑해 가려합니다.
여러분은 어떠신가요?
귀엽고 발랄하지만
단단한 무게를 가진
이 한 권의 그림책으로
나의 가장 좋은 친구
바로 '자신'과 대화를 나눠보시기를 바라요.
가을, 금요일,
'나'와 '내가 좋아하는 일들'과 함께
즐거운 주말 보내세요.
내 이름은 빨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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