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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imba Nov 02. 2016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

아침 6시가 되기 전 눈이 떠졌다.

좀더 구체적이고 사실적으로 이야기하자면,

다섯시간 전쯤 작은 용변을 보고 혹시나 싶은 마음으로 카톡을 확인한 후 역시나하고 눈을 감았고 몇번의 자다깨다 뒤척임속에 다섯시간이 지난 후 다시 용변이 마려워 눈을 뜬 것이다.


용변이 마려워 잠을 깼음에도 혹여나 싶어 카톡부터 확인하고 기다리는 답이 없음을 알고는 약간의 걱정을 안고 볼 일을 본다.


볼 일을 본 후 어정쩡한 시간에 '어쩌지?더 잘까?'라고 생각하는 그 순간!

기다리던 카톡이 그제서야 도착했다.


신이 난 나머지 조금 전 고민은 온데간데 없이 시덥잖은 이야기를 마구 쏟아낸다.

그러다 대화가 끝이나고 누운채로 비몽사몽한상태에 접어든다.


잠이 오는 것도 안오는 것도 아닌 알 수 없는 상태가 십여분간 계속되다 불현듯 오늘이 이 곳에서의 마지막이라는 생각에 뭔가 혼자만의 특별하고 거창한 하루를 보낼까? 싶어 벌떡 일어난다.


하나 남은 '3분 짜장'과 함께 평소와 달리 이른 아침밥을 후다닥 차려먹고 공용세탁기가 빈 것을 확인하고 세탁을 돌린 후 아침부터 요란한 뉴스를 튼 채 마지막 하루를 어떻게 보낼까 고민에 빠진다.


'미술관? 박물관? 영화관? 영화? 뭘 보지? 럭키? 그래 이걸보자. 그럼 미리 예매를 할까? 아냐 평일인데 굳이...'그렇게 고민하다보니 잠을 설친 탓일까? 식곤증일까? 잠이 쏟아졌다.


빨래도 끝나려면 한시간 정도 남았는데 잠깐만 더 잘까? 라고 생각하고는 이내 스르륵...잠이 들었다.

피곤했나보다. 결국 오전 시간은 와장창 잠으로 깨져버렸다.


오전을 숙면으로 보내고 일어난 후, 알듯 모를듯한 쓴 웃음이 지어졌다. 뭔가 특별한 하루를 보낼려는 것 자체가 억지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서울에서의 마지막 날은 올해 초에도 겪지 않았던가. 그때는 6년 6개월간의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세계일주를 앞두었던 시기라 좀 더 특별했지만, 이번은 지난번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고 느낌이었다.


그리고는 오히려 특별하게 지극히 평범하고 반복적인 하루를 보내는것이 더 나을 것 같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평소처럼 찾던 카페를 가고,

미드를 보고,

책을 읽고,

인터넷을 하고,

글씨연습을 한다.

앞으로의 삶에 대한 고민도 살짝 한다.


그렇게 하루가, 마지막 날이 저물어간다.


아니다.

쓸데없이 감상적인 내가 이렇게 마지막을 보낼 수 없었다.


숙소에서 와인을 마시며 혼자만의 분위기에 푹 빠졌던 유럽여행의 마지막 날이자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이 떠올랐다.

그때의 느낌을 다시 느끼고 싶었다.


어둠이 내린 후, 카페를 떠나 숙소로 가는길에  작은 와인숍에 들러 파리에서 마셨던것처럼 '론(RHÔNE)'지역의 와인 한 병과 브리치즈를 사들고 들어왔다.

<명가 엠샤푸티에(M.CHAPOUTIER)의 시냐르그(signargues)>

점심 식사를 걸렀다는 핑계로 숙소에 있는 라면을 끓여 와인과의 어색한 자리를 마련한다.


'어라?'

혼자지만 고상하게 와인 한 모금을 하고 이내 털털하게 라면 한 젓가락을 입에 구겨 넣었는데 이게 묘하게 어울린다.

전혀 의도치도 예상치도 못한 마리아주가 드리웠다.


소주도 아닌데 이번엔 와인 한 모금 후 라면 국물을 마셔본다.

투박한 입맛 탓일까? 이 또한 싫지않은 조합이다.


그 와중에 케이블 티비에선 보고싶었지만 아직 보지 못 한 '뷰티인사이드'가 시작한다.


무겁지않은 바디감에 거북하지 않은 산미 그리고 론 지방 특유의 풀냄새라고 해야할까? 아무튼 좋아하는 향이 코끝을 감돌며 나를 잔뜩 감상적으로 만든다.

그 덕분에 더더욱 영화에 감정이입을 한다.


자고 일어나면 바뀌는 남자주인공(여자로 바뀌기도 한다)을 보다가 나도 모르게 거울을 쳐다보기도 한다.


영화에 취한건지 와인에 취한건지

서울에서의 마지막 밤은 다행이도 서글픔을 느끼지 못한 대신 무언가에 취한채 저물어간다.

#에세이 #소설인듯소설아닌 #수필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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