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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묘호랑 Jan 10. 2019

[우열]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들

우열의 지도: 모든 츠네오는 조제를 버린다


츠네오


츠네오(츠마부키 사토시)는 조제(이케와키 치즈루)를 저버린다. 조제는 앉은뱅이다. 사지 멀쩡한 츠네오는 장애인과 어울리지 않는다. 인간은, 자기 세계를 보다 크게 확장시킬 수 있는 것을 선택해야 한다. 누구나 조제보다는 카나에(우에노 주리)가 그의 세계 확장에 유리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츠네오가 조제를 버리고 길을 나섰을 때 흐느낀 것은, 그가 아직 순수했기 때문이다. 사실 순수하다는 것은, 자기 세계 확장에 적합한 연합 세력을 잘 구별하지 못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은 나이가 들어서 세상에 찌들고 때가 묻는 것이 아니라, 세월이 지남에 따라 세계 확장의 요령을 깨우쳐 가는 것 뿐이다. 이런 현상은 옳고 그름을 따지기 이전에 이미 우리 마음속에서 일어나 버린다. 이런 행동의 정당화가 바람직하지 못할 뿐이다.


우리는 우열의 지도에서 높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또한 보다 확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지 않으면 들이닥칠 시간의 고문이 두려워서, 그래서, 조제를 버린다. 그런데, 동시에 우리는 도덕적인 면에서도 우월한 자리를 차지하려 한다. 우리가 조제를 버린 것은 이 각박한 세상에서 순조로운 결혼 생활을 유지해 나가기 어렵기 때문이라고 주변 사람들에게, 그리고 자기 자신에게 설파한다. 하지만, 우리는 스스로 누구보다도 더 잘 알고 있다. 앉은뱅이와는, 남들보다 우월한 곳으로 나아가기 어렵기 때문에, 조제를 버렸다는 사실을.  


우리는 사물 뿐만 아니라 사람도 선택한다. 우리 마음이 선택을 하는 데에는 무수히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최소한, 우월함에 대한 열망이 선택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 영화에서 드러나듯이 분명해 보인다.


우리는 츠네오와 마찬가지로 조제가 아니라 카나에를 선택할 것이다. 조제를 선택한 사람은, 일상을 떠받쳐 온 본성, 삶의 근본적 동력을 억눌러야 한다.


조제와의 동거를 선택한다면, 퇴근 후에도 몸이 불편한 조제를 대신해서 이런저런 여러가지 일들을 처리하는 데에 많은 시간을 보내야 할 것이다. (조제는 생전 처음으로 자동차를 타고 츠네오와 함께 먼 곳으로 여행을 한다. 평생의 소원이었던 수족관 관람이, 하필이면 찾아간 날이 휴관일이라서 좌절되고 말았을 때, 츠네오에게 업혀 있던 조제는 마치 과자를 빼앗긴 아기처럼 그의 뒷통수를 마구 때리면서 짜증을 낸다. 츠네오가 조제와 결혼한다면, 이런 일을 종종 겪을 것이다.)

자연히 자신의 일에도 상대적으로 소홀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학창 시절에는 나보다 훨씬 못났다고 생각하던 놈이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고, 겸손을 떨며 수상 소감을 지껄이는 꼬락서니를 참아 내야만 한다.


우리는 조제를 사랑하지 않아서가 아니라, 시간의 고문이 너무나 두려운 나머지 끊임없이 자기 세계 확장에 매진해야 하는 미래의 노예이기 때문에, 조제를 버린다. 그래서, 우리도 여덟시 반 드라마에서 언제나 결혼을 반대하는 집안 어른들과, 스타일은 다를지 몰라도, 본질적으로는 다르지 않다.

츠네오가 결정적으로 조제와 함께 할 수 없다는 현실을 자각한 것은 시골에 계신 부모님 댁을 방문하려고 길을 떠난 후였다.

시골 출신인 그는 도시에 있는 대학에 다니고 있다. 집에서 동생 편으로 보내오는 반찬을 받아 먹고 있다. 명절 기간이었는지, 그의 전화를 받는 부모님의 집에는 친척들이 꽤 많이 모여 있다. 아마도 전통적인 가치관을 지닌 집안일 것으로 짐작된다. (영화 초반, 대학생인 츠네오는 자유분방하고 즉흥적인 성격의 인물로 묘사된다. 그렇지만 그런 성격의 그도 조제를 부모님에게 데려가는 것은 두려워 한다. 졸업을 하고 취직하여 양복 차림으로 출근하는 그의 모습은 착실한 회사원처럼 보인다. 우리가 가족이라는 연합에서 벗어나 기득권을 포기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보여주기 위한 설정으로 보인다.)

언젠가 츠네오는 재산을 상속받을 것이다. 상속받지 않겠다고 하는 것이 오히려 불효가 될 것이다. 그래서, 츠네오는 의도와 무관하게 부모님이 자기 세계를 확장한 방식과 그렇게 확장한 세계 자체를 물려받게 된다.

부모님이 그 세계를 어떤 방식으로 확장했든지, 물려받은 재산은 너무나 당연한 과거가 되며, 그의 기득권이 된다. 부모님이 재산을 획득하는 과정에서 피해를 입었다고 주장하는 사람이 찾아 온다면, 일단은 그 진위 여부를 따져야 할 것이다. 처음 보는 사람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고, 부모님이 오랜 세월 동안 힘들게 모은 재산을 순순히 내어 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어쩌면 변호사를 사고, 재판을 하게 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사실 여부 이전에, 츠네오는 일단 자신의 기득권을 지키는 자가 된다.


부모님의 세계를, 확장된 세계를, 재산을 물려받을 츠네오는, 그래서 부모님께 조제를 데려갈 수 없다. 이는 연합 세력의 기대에 대한 배신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공동의 세계 확장에 방해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충분히 확장할 수 있는 가능성(카나에와 같은 여성)을 저버렸다는 사실은 부모님으로부터 큰 반발을 살 것이다. 점잖고 상냥하고 예의 바른 부모님일지라도 미래의 가능성을 포기할 수는 없다. 아마도 점잖고 상냥하고 예의 바른 태도로 조제를 거절할 것이다.



조제


츠네오에게 그럴 의도는 전혀 없었을 것이다. 다만, 우리도 늘상 그러하듯이, 아마 그도 웃음이 있는 대화를 위해서, 웃음까지는 아니더라도 심각하고 진지한 분위기로 이야기할 것까지는 아니기에, 조제에 대해 편하고 즐겁게 이야기했을 것이다.


처음에는, 그녀가 휠체어도 없어서 앉은 채로 집안을 돌아다녀야 한다고 딱한 사정을 전했을 것이다. 카나에는 아니 어떻게? 묻고, 츠네오는 있잖아 왜 손으로 바닥을 짚고 움직여야 하니까... 어 그렇지, 바닥을 쓸고 다닐 수밖에 없는거야, 라고 표현한다. 그러자 카나에는 그 표현이 재밌어서 바닥을 쓸고 다닌다고? 호호 웃게 된다. 그리고, 다음에 그 얘기가 문득 생각난 카나에는 바닥을 쓸고 다니는 여자는 어떻게 됐어? 라고 묻는다. 그래서 조제는 두 사람 사이에서 바닥을 쓸고 다니는 여자로 불린다.


츠네오와 친숙해지면서, 조제는 그와 연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한다. 하지만 그녀는 이미 알고 있었을 것이다. 자신은 우열의 지도에서, 츠네오나 카나에와 같이 아무런 신체적 장애도 없는 대학생보다 훨씬 낮은 곳에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제는 츠네오가 좋았고, 친구가 되고 싶었다. 동등한 입장에서 연합할 수 있는 상대가 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했다.


츠네오는 조제와 할머니를 설득해서 복지과에 주택 수리를 요청하도록 한다. 사회복지에 관심이 있는 카나에는 참관을 위해 수리 중인 조제의 집을 방문한다. 카나에는 조제가 들으란 듯이 츠네오에게 ‘바닥을 쓸고 다니는 여자’에 대해 묻고 조제는 그 대화를 듣게 된다. 이로써 대등한 연합에 대한 기대는 부서진다.


우열의 지도는 보다 선명하게 그려진다. 우리는 모두 대략적으로 동일한 우열의 지도를 그리지만, 그 지도는 우리 품속에만 있다. 머릿속에만 기억되어 있다. 우리는 그 지도를 대놓고 드러내지는 않는다. 우리는 우열의 격차로 인한 상처를 가슴에 새기는 것을 마다치 않지만, 그것이 다른 사람의 눈에 띠기를 바라지 않는다.


이렇듯 우열의 지도는 우리 가슴에 상처를 주곤 하지만, 미래에 대한 기대감, 희망을 가져야만 하는 인간이 어떤 방향으로 생명력을 발산해야 하는지를 알려 준다. 이렇게 생명력을 발산함으로써 자기 세계를 확장하려면 다른 인간과의 연합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우정은 그중 한 가지다. 친구라는 연합은 자기 세계, 우리 세계를 보다 수월하게 확장하도록 한다. 그래서 우리는 우정을 열망한다.


조제에게, 츠네오는 그녀를 웃음을 위한 소재로 사용한 것처럼 들렸을 것이다. 이미 자신이 그들과 대등한 상대가 아님을, 우정으로써 연합하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던 그녀에게, 츠네오와 카나에의 웃음은 연합이 불가능하다는 분명한 암시처럼 들렸을 것이다. 그래서 조제는 절망한다. 잠시 가졌던 기대가 꺾이면서 더 큰 절망을 느낀 조제는, 미안한 마음으로 다시 찾아와 창문을 두드리는 츠네오에게 손에 집히는 대로 물건을 집어 던지며 눈물을 흘린다.   



카나에


카나에는 합리적인 우열의 지도를 그려 놓고 있었다. 그 지도에서, 조제는 그녀보다 한참이나 아래에 있었다. 그런데, 츠네오를 조제에게 빼앗기고 만다. 상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난 것이다.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우열의 지도는 소용이 없게 된다. 카나에는 길을 잃는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다시 자기 세계 확장을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게 된다. 그래서, 취업을 준비해야 할 대학생인 카나에는 난데없이 길거리에서 하얀 가발을 쓰고 춤을 추면서 제품을 홍보하는 일을 한다. 그리고, 우연히 마주친 츠네오에게, 이런 모습을 제일 보여주기 싫은 사람을 만났다고 이야기한다.


삶의 방향은 우열의 지도에 기반한다. 살아가는 것은 시간을 견디는 것이고, 시간을 견디려면 자기 세계를 끊임없이 확장해야 한다. 자기 세계 확장은 보다 우월한 것을 선택함으로써 가능하며, 효율적인 선택을 하려면 우열의 지도가 있어야 한다.

지도상에서, 카나에는 조제, 조제와 함께 살던 할머니, 조제와 함께 고아원을 도망쳐 나온 코지 유우 등과 같은 사람들보다 훨씬 위에 있다.


카나에는 조제를 찾아가 뺨을 때린다. 츠네오가 다시 카나에에게로 돌아갔을 때, 조제는 카나에를 찾아가 뺨을 때리지 않는다. 슬픈 이야기지만, 조제도 같은 우열의 지도를 그리고 있다. 누구나, 똑같지는 않지만, 대체로 일치하는 지도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츠네오가 떠났을 때, 조제는 카나에처럼 울분을 느끼는 것이 아니라, 그저 시간을 묵묵히 견디기 시작한다.


조제는 버림받았지만, 일상을 견뎌야 한다. 왜, 누구는 카나에로 태어나는데, 누구는 조제로 태어나 걷지도 못할까. (세상의 불공평한 섭리는 의도한 자를 찾을 수 없기에 더욱 답답한 문제다.) 조제는 어떤 희망을, 희미하게 빛나는 별처럼 바라보며 시간을 견뎌야 한다.


하지만, 카나에도 이런 면에서는 똑같은 삶을 살아갈 것이다. 그녀도 어떤 희망을 바라보며 시간을 견뎌야 한다. 이루어진 희망은, 물려받은 기득권은, 타고난 신체는 과거처럼 당연하다. 오로지 문제는, 관심사는, 미래다. 만일 카나에가 어두운 미래를 맞이해야 하는 상황에 처한다면, 희미한 희망이나마 간직한 앉은뱅이 조제보다 견디기 어려운 삶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모든 츠네오는 눈물을 흘린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한다. 수긍할 만한 상황을 제시하기에 우리는 공감한다. 현실 세계에서도 츠네오는 조제를 버릴 것이다. 백 퍼센트는 아니겠지만, 대개는 그럴 것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영화에서든, 현실에서든, 조제를 버린 츠네오는 눈물을 흘릴 것이라는 사실이다. 나는 이 글을 쓰면서 마음의 골격만을 본 것 같다. 어쩌면, 모든 츠네오가 눈물을 흘릴 것이라는 사실이, 그러한 마음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 더 중요한 것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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