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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OSIL Jul 01. 2018

prologue.
어쩌다 트레커가 되었습니다

저질체력 언니의 트레킹 입문기

산꼭대기는 케이블카가
데려다 주는 곳 아니야?

30년 훌쩍 넘은 인생을 살면서, 나란 사람은 산이나 트레킹을 전혀 좋아하지 않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 확신했었다. 약간의 오르막에서도 헉헉거리는 초라한 폐활량 보유자인데다, 자고로 시험은 벼락치기, 청소나 설거지도 묵혔다가 해야 한다는 효율지상주의자라, 어차피 내려와야 할 걸 힘들게 올라가는 등산이란 세상 가장 이유를 알 수 없는 행위 중 하나였다.
 
7년전, 서른하나에 여행못간 한을 풀러 떠난 (세계 일주가 될뻔했던) 세계여행 중에도 나는 내가 트레킹은 할 수 없는 사람임을 확인했다. 콜롬비아 살렌토에서 하루 트레킹코스를 갔다가 첨본 일행들의 속도를 대폭 늦춘 적이 한번, 페루 와라즈에서 겁도 없이 해발 4,600m의 69호수 트레킹을 갔다가 고산 및 다리풀림 증세로 요단강을 건널 뻔한 적이 한번. 그 69호수의 오열 트레킹은 트라우마로 남았고, 산에서는 까불면 절대 안된다는 것을 몸소 배웠다. 이후 남미여행의 하이라이트라고 할 수 있는 파타고니아 지역 토레스델파이네 3박4일 트레킹을 심각하게 고민을 했다.(여기까지 온 여행자들은 보통 이걸 하러 온다.) 때마침 몰지각한 이스라엘 여행자의 담배불로 트레일 일대가 불에 홀랑 타버리는 사건이 발생했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지만 -69호수의 기억이 생생했던 당시의 나는- 솔직히 고민거릴 없애줘서 내심 다행이라는 몹쓸 생각을 하기도 했다. 대신 비교적 널럴한 피츠로이 트레일에 만족했다. 아, 내 마지막 트레킹- 유난히 아름답구만!
 
그런 내가! -어째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 정확히 기억이 안나는데- 남미에서 스페인으로 가서 까미노데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한 것이다. 아마 아르헨티나에서 만난 한 언니와 맥주를 얼큰히 먹고 “그래 가는거야!! 콜!!!” 하고는 신나게 비행기 티켓팅을 해버렸던 것 같다. (취소도 안되는 티켓...)
800km를 걷는 일을 내가 내발로 하는 날이 올 줄이야!

그런데 이게 왠일.
내 생에 가장 큰 반전이 일어났다.

까미노 순례길을 걸은 후부터, 제주도 올레길, 스리랑카의 아담스픽, 베트남 사파 트레킹, 울릉도 둘레길 등 아무리 짧은 여행에도 트레킹 코스를 꼭 넣었고, 심지어 트레킹이 좋다는 곳을 찾아 다니게 되었다. 작년에는 벼르고 벼른 네팔 안나푸르나 ABC를 다녀왔고, 올해 휴가엔 일치감치 알프스의 뚜르드몽블랑 트레킹으로 목적지를 정했다. 난 여전히 운동을 멀리하는 저질체력 소유자에, 산에 대한 트라우마가 있다. 그런데 난 왜 트레킹을 하지 않으면 여행을 간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드는 걸까?!!
 

여행이라는 행위를 가장 단순화해보면
결국엔 걷기가 아닐까?

낯선 곳을 걷는 행위. 여행이란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다. 걷기를 하는 동안은 어떤 원초적인 행위를 하는 듯한 느낌이 들곤 한다.
걷는 것은 어떤 장소와 시간을 가장 느리게 대면하는 방법이다. 걷는 여행을 하면 내 몸과 마음의 속도에 따를 수 밖에 없다. 느려 터졌지만 이 속도의 자유로움은 그 어떤 걸로도 대체불가하다.
이 걷기 속도의 자유로움을 철저히 느끼려면, 자연 속 일때 그 효과가 가장 큰 것 같다. 영원의 시간 속에 있는 것 같다고 해야하나? 그럴 때 비로소 나는 그냥 관광객이 아닌 진짜 여행자가 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어렴풋이 그런 이유로, 나는 트레킹을 좋아하게 된 것 같다.
 
이는 (내 맘대로 정한) 세계 3대 트레일 -스페인 까미노데산티아고, 네팔 안나푸르나, 뚜르드몽블랑- 을 체력골골한, 지극히 일반인 여자가 직접 걸은 이야기가 될 것이다. 그 외 소소하지만 정말 좋았던 트레킹 코스들도 소개하려고 한다. 까미노데산티아고의 경우 풀코스로 40일이나 걸렸지만, 일부코스만 며칠 걸어도 무방하다. 안나푸르나는 추석에 휴가를 붙여 다녀왔고, 뚜르드몽블랑도 그렇게 갈 예정이다. 직장인도 휴가로 충분히 갈 수 있는 코스들이다. 즉, 누구나 도전할 수 있고, 누구나 즐길 수 있다는 얘기다. 관심은 있는데 엄두가 안나는 사람들은 조금만 용기를 내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나도 다녀왔다구요!

우스개 소리를 하나 붙이자면... 그렇게 트레킹을 좋아한다고 하면서 평소엔 지독히도 등산을 하지 않는데...이렇게 둘러대곤 한다.

“난 이름있는 산만 오르는 여자야.”

....좀 재수없나요....? 하하핳.




*2012 까미노데산티아고 순례 여행기 1편

*휴가로 갈만한 걷기여행 1편 

*2017 히말라야트레킹 여행기 1편

*2018 뚜르드몽블랑 일주 여행기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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