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가로 갈만한 걷기여행(1)
까미노 순례를 포함해 유럽, 남미를 1년 3개월 여행하고 돌아와서, 다시 직장인이 되었다. 여행 중에 한가지 다짐한 것이 있는데, 서울로 돌아가면 휴가로 미처 여행하지 못한 아시아 지역을 마음껏 여행해야지! 하는 것이었다. 여행지로 따져보면 아시아만한 곳이 없다. 특히 동남아시아의 경우 이국적인 풍경과 풍부한 역사문화, 안전한 치안, 맛있는 음식, 저렴한 물가 등, 여행자들이 생각하는 좋은 덕목을 갖춘 곳들이 제법 많다.(일단 내 취향!!) 우리가 유럽이나 북미, 남미가 좋아 보이는 이유는 단지 멀어서인 이유도 크다고 생각한다. 서구 여행자들은 오히려 아시아가 멀어서 더 매력적으로 느끼는 듯 했다.
4년 전 휴가로 낙찰된 아시아 여행지는 미얀마였다. 태국의 서북쪽에 자리한 미얀마는 사회주의 국가인데다, 비자가 필요하고, 관광 인프라가 다른 동남아 나라에 비해 열악해서 여행이 수월치 않은 나라라고들 한다. 당시 나는 남들이 잘 안가는 미지의 나라를 가야할 것 같은 강박 혹은 허세가 있었던 것 같다. 혼자 가는 여행을 고집했던 것도 같은 이유였을 것이다. 그런 허세나 자만 때문이었는지, 여행 중에 스마트폰이 깨지고 시계도 잃어버리고 뜨거운 태양에 피부가 홀랑 타는 등 유독 탈이 많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미얀마는 때묻지 않은 자연풍광이 무척 좋았고, 파고다라고 하는 화려한 불교 탑은 입이 딱 벌어질 정도였으며, 무엇보다 맥주가 소문만큼 맛있었다.(동남아 맥주 중 1등이라는 소문이었다. 역시나였다.) 그리고 소수민족 마을들이 이어진 시골길을 걷는 ‘껄로 트레킹’에서 순박한 미얀마 사람들을 만났던 것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수천개의 파고다가 장관인 옛도시 ‘바간’에 며칠을 머무른 후, 아침버스를 타고 7시간 떨어져있는 ‘껄로’로 출발했다. 오후 늦게 도착한 껄로는 트레킹의 출발점일 뿐인 소도시였다. 가볍게 동네구경을 하고 다음날 출발할 트레킹 예약을 했다. 2박 3일 투어가 가장 수요가 많았는데, 나는 1박 2일밖에 시간이 없는데다 비수기인 우기였어서 동행을 찾지 못했다. 결국 나 혼자 가이드 둘을 대동하는 호화(?) 트레킹을 하게 되었다.(짐을 들어주지는 않는다. 큰 짐은 여행사에서 도착지의 호텔로 보내준다.)
가이드는 21살 난보라는 이름의 여자아이였고, 가이드 공부중인 야나우라는 16세 남자 수련생(?)도 함께 동행했다. 살갑진 않아도 부끄럼 많고 순수한 두 아이가 여행 내내 무척 귀여웠다. 난보는 정식 가이드답게, 표지판이 전무한 껄로의 산길과 마을길에 빠삭했고, 영어는 물론이요 소수민족 언어도 자유롭게 구사했다. 산길을 가면서 생강, 감자꽃, 칠리 등 처음보는 풀 이름에, 지나가는 소의 종류도 척척 알려줬고, 심지어 저녁 요리도 직접 했다. 야나우도 눈치껏 선배님을 보면서 열심히 돕고 따라했는데 오후가 되어 자주 졸려하곤 했다. 다소 무뚝뚝한 난보와 달리 야나우는 이야기하길 좋아했다. 영화관에서 공포영화를 보는 것을 좋아하는 천상 열여섯 소년이었다.
택시를 타고 한참을 이동하여 어느 마을 입구에서 내려 트레킹을 시작했다. 트레킹이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오르막도 많지 않은 둘레길 수준이다. 진흙길이라 약간 불편한 것을 제외하면 누구나 설렁설렁 걸을 수 있는 길이다.
이곳의 풍경을 표현하자면, 의외로 이탈리아 토스카나나 남부프랑스를 연상케 하는 정갈한 논밭이 펼쳐진다. 그런 논밭을 지나면 안개가 드리우고 신비롭게 젖은 숲이 나오고, 아이들이 뛰어노는 소박한 마을, 물찬 논에서 부지런히 일하는 사람들을 지나친다. 비수기라서 그런것인지, 난보가 특별한 길로 인도한 탓인지, 다른 여행객은 거의 보지 못했다. 이 낯선 관광객에게 뛰어드는 아이들도 없었고(오히려 부끄러워 피한다), 어른들은 일하느라 바빠서 우리가 있는 줄도 모르거나, 소달구지를 끌고 가다가 환하게 인사를 하는 것이 다였다. 미얀마 보통 사람들의 생활 속에 투명인간이 되어 들어와 있는 듯 하다. 관광객(혹은 호구ㅎ)으로 늘 주목받는 것이 익숙한 나에겐 자주 있지 않은 경험이었다.
이런 미얀마에서도 어느 정도 각오했던(?) 기념품 파는 마을에 들렀다. 그러나 그 역시 미얀마스러웠다. 정자같은 곳에서 전통복장을 한 할머니가 베틀을 짜고 있고 그 옆에서 차를 마셨는데, 강요는 커녕 오히려 쑥스러워 하는 것이 느껴졌다. 알록달록 패턴이 마음에 드는 머플러 하나를 흥정없이 사서 나왔다. 후에 시장에서 알아봤는데 그렇게 바가지를 쓴 것은 아니었다.
한 마을에 도착해서 한 가정집에서 점심 대접을 받았다. 미얀마 사람들은 식사량이 많은 모양인지, 항상 접시 가득 음식이 나왔다. 프라이드누들 한 대접을 먹고 쉬고 있는데, 두 가이드 아이들도 피곤한지 레드불을 나눠 마시고 있다.
점심 후 완만한 오르막 산길을 2~3시간을 걸어 좀 큰 마을에 도착했는데, 오늘은 여기서 묵을 거란다. 우롱이라는 이름의 아저씨네 집인데 작은 가게를 겸하고 있는 동네 사랑방 같은 곳이었다. 딸이 셋인데 그중 셋째딸이 가게 일을 돕고 있다. 동네를 좀 구경하고 집에 왔더니 동네아이들이 가게에 모여서 작은 화면으로 이연걸 영화를 보고 있다?! 넋 놓고 거친 작은 화면의 영화를 보는 아이들 옆에 자릴 잡고 영화와 아이들을 번갈아 관찰했다. 해바라기 씨를 먹는데 한 아이가 씨를 마구 버려서 주인 딸에게 혼났다. 나는 그게 귀여워서 혼났다. 어느새 이연걸 영화에서 성룡 영화로 넘어갔다. 저녁 준비가 되었다는 말에 인사를 하고 나왔다.
딸들과 엄마는 어디 가고 우롱아저씨와 가이드 둘과 함께 저녁을 먹었다. 토마토소스요리, 감자볶음, 프라이드누들, 콩요리 등 역시 엄청나게 푸짐하다. 방안에 연기를 피워 요릴 했는데 언제 이만큼 만들었는지 놀랍다. 우롱아저씨와 (아재답게) 왜 결혼을 안하냐 등의 이런저런 대화를 하면서 식사를 끝내고, 그 거실같은 큰 방을 비워주더니 나 혼자 자라고 한다. 그 많은 식구들과 가이드 두 명은 다 어디서 자는 건지 물어보지 못했다. 밤에는 요란하게 비가 쏟아졌다.
다음날, 부끄러워 하는 이 소박한 우롱씨 가족을 모아다 사진을 찍고(셋째딸은 도망갔다!) 인사를 하고 집을 나섰다.
둘째날은 오전 정도면 일정이 끝난다고 했다. 산길을 거쳐 큰 보리수나무들을 지나니 저멀리 호수가 보인다. 오늘의 목적지이자 트레킹의 종착지 인레호수다. 손에 잡힐 듯 했지만 가도가도 가까워지지 않았다. 1~2시간이 지나서야 작은 선착장이 있는 인떼인이라는 곳에 도착했고, 얄쌍한 보트에 올랐다. 미얀마에서 가장 큰 호수라더니, 좁은 물길을 한참을 지나서야 바다만큼 넓은 호수가 등장했다.
저멀리 인레호수의 명물인 한쪽 다리로 노를 젓는 어부도 보이고, 사람들을 잔뜩 태운 보트도 지나간다. 수상가옥 마을 옆엔 작물을 키우는 밭이 있고, 배가 지나는 길에 육지의 도로처럼 표지판과 광고판이 있다. 이 곳 사람들은 아주 오래전부터 이 바다같은 호수를 터전으로 오늘과 같은 모습으로 살아왔을 것이다.
그렇게 또 한참을 지나 호수의 가장 큰 마을, 낭쉐에 도착했다. 1박 2일 붙어지낸 두 가이드 아이들과도 헤어질때가 왔다. 워낙 다들 숫기도 없는데다 노곤했던 모양인지 인사를 하기 무섭게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렇게 1박 2일의 1인 트레킹팀은 해산했다. 나는 하룻밤 인레호수에서 여독을 푼 후 양곤을 거쳐 서울로 왔다. 오랜 군부독재로 주민들을 통제하는 모양인지, 메일이 잘 안된다고 했다. 야나우에게 사진을 전해주고 싶었지만 할수 없었다.
미얀마사람들만 만났던 1인 트레킹투어를 하며, 조금은 부담스럽고 가끔은 외로웠다. 관광객 경험이 많지 않을 미얀마사람들이 낯설고 조심스러웠는데, 그들은 또 나라는 존재가 얼마나 불편했을까.
그런 낯설음과 불편함이란 순수함의 다른 이름이며, 여행을 할수록 소중하고 그리운 것임을 깨닫곤 한다. 이제 미얀마같은 곳이 지구에서 점점 사라져 가고 있음을.
다른 아시아 여행지와 마찬가지로, 점점 더 미얀마는 여행하기 편해질 것이다. 미얀마 사람들은 능숙해지고 약아질 것이고, 그 귀여운 서투름은 점차 사라질 것이다. 그때도 이미, 껄로 트레킹 후 관광마을 낭쉐나 양곤에서는 그런 숫기 없는 미얀마사람들을 보지 못했다.
순수한 채로 남아있어 달라는 것이 여행자의 이기적인 요구인지도 잘 안다. 그것들을 사라지게 하는 것이 나같은 여행자라는 것도. 그런 사실을 알면서도 또다시 나는 그런 곳을 찾아 여행할 것이고, 사라지는 것들을 안타까워 할 것이다. 다만 내가 할 수 있는 건- 내가 누리는 모든 것에 감사함을 알고 만나는 모든 분들을 존중하는데 최선을 다하는 것이 고작이다.
껄로에서 마주쳤던 사람들이 지금도 그때처럼 유리알같이 웃고 있었으면 좋겠다.
[미얀마여행정보]
-비자: 미얀마는 비자가 필요하다. 인터넷에 대행해주는 곳이 꽤 있고, 사이트를 통해 e-Visa를 신청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약 5만원선. 직접 대사관으로 가는 방법도 있는데, 반값정도로 저렴한 대신, 신청할때와 받을때 두번 방문해야 한다.
*비자신청 사이트: https://evisa.moip.gov.mm/NewApplication.aspx
-국내교통: 꽤 넓고 도로상태가 안좋아 버스이동이 오래걸린다. 양곤-바간, 인레호수-양곤 국내선 비행기를 이용했다. 각각 10만원선.
*국내선 예약 사이트: www.oway.com.mm
-껄로트레킹: 껄로라는 작은 마을에서 출발하는 트레킹이다. 샘스패밀리트레킹 여행사가 가장 유명하다. 1박 2일에서 4박 5일까지 가능한데, 보통 2박 3일 트레킹을 가장 많이 한다. 일행이 있다면 1/n로 부담하며, 식사, 숙박, 가이드 포함 1박2일 3-4만원 수준.(1인일 경우 7-8만원) 껄로에서 인레호수까지가 코스인데, 거꾸로도 가능하다. 소수민족 마을의 민박집에서 숙박한다. 미얀마의 소박한 풍경을 즐길 수 있다.
-인레호수: 껄로트레킹의 종착지이며 미얀마 최대 호수로 그 자체로도 관광지이다. 낭쉐라는 마을에서 묵거나, 호수주변에 리조트들이 있다.
-바간: 미얀마에 방문한다면 유네스코세계문화유산 바간은 필수코스. 3천여개의 불교탑 파고다가 장관이다. 마차로 하루 투어를 하거나, 전기자전거를 빌려 자유롭게 다닌다. 5일간 다닐 수 있는 입장 티켓이 15달러다. 파고다위에서 보는 일출과 일몰이 유명하다. 열기구 투어도 있다. 안타깝게도 2년전 큰 지진으로 일부 유적이 파손되었다고 한다.
-양곤: 미얀마의 수도는 네피도이지만, 양곤이 가장 큰 도시이며, 보통 양곤으로 입국한다. 웅장한 황금파고다 쉐다곤을 꼭 방문할 것. 낮, 일몰, 밤의 모습을 모두 보기를 권한다.
휴가로 갈만한 걷기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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