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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OSIL Aug 27. 2018

[중국 차마고도(2)] 호도협 트레킹,감칠맛나는 길

휴가로 갈 만한 걷기여행(3) 

차마고도 트레킹 혹은, 호도협 트레킹이라 불리는 이 1박2일의 걷기 여행을 요약해보자면- 호도협이라는 매우 가파른 협곡중간쯤의 절벽길인 차마고도를 따라 걷다가, 중간의 객잔(중국식 여관)에서 하루를 묵고, 다음날 다시 전날 걸은만큼 더 걸어 종착지에 있는 티나객잔에 도착하면 끝나는 코스다. 보통 티나객잔에서 중호도협 계곡아래까지 내려갔다 올라오는데, 이것은 선택사항이다. 물론 내가 걸은 것은 길고긴 차마고도의 극히 일부일 뿐이겠지만, 그 이름에 걸맞지않게 이렇게 편해도 되나 하는 생각이 들만큼 쉬웠다.

호랑이가 건넌 계곡?
호랑이 우는 소리가 나는 계곡?

첫째날 아침, 리장에서 예약한 버스를 타니 상호도협이라는 곳에 내려주었다. 호랑이가 건넜다는, 엄청난 물살의 협곡을 구경할수 있게 관광지처럼 꾸며놓은 곳이다. 물은 많고 협곡은 좁아 누런 물살이 몰아치는 소리가 엄청난데, 마치 집채만한 호랑이의 울음소리같다. 호랑이가 건너서 호도협인지, 호랑이 울음소리가 나서 호도협인지 살짝 헷갈리는게, 아마 둘다 그럴듯하기 때문일 것이다. 협곡을 볼수 있는 곳이 상호도협과 중호도협이 있는데, 둘다 가보니 인공 계단 하나 없이 자연 그대로인 중호도협이 더 끌린다.(뒤에서 얘기하겠지만 단점도 있다.) 단체관광객은 차가 갈수 있는 상호도협이, 트레커들은 중호도협이 어울린다.

상호도협의 우렁찬 협곡!
관광지 상호도협에 인력거도 있다. 무한도전에 나온 적이 있었다.

원래 이 트레킹은 상호도협 위쪽에 ‘28밴드’라 불리는 공포의 오르막길부터 시작한다.(28번 굽이진 오르막이라 28밴드라고 한다) 하지만 우리는 민박집사장님의 추천으로 차를 타고 바로 오르막 꼭대기에 있는 차마객잔으로 가서 트레킹을 시작했다. 셋이 편히 즐기는 여행컨셉이었으므로 이 정도의 편법은 대환영이었다.


아니, 이런 호화로운 걷기여행이라니?

식당을 겸하는 여관 차마객잔에서 셋이 3인분이 한참 넘는 요리들을 신나게 먹고나서야 트레킹을 시작했다. 여행자 대상 식당이라 그런건지, 윈난성 요리 스타일이 원래 그런건지 중국 특유의 향신료가 약하고 하나같이 대중적으로 맛있는 요리들이다. 트레킹에는 맛있는 끼니가 성패를 좌우한다,고 생각하는데, 차마고도는 일단 필요조건은 갖춘 곳이다.

신서유기에 나왔던 그곳, 차마객잔!

차마고도는 호도협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각도가 가파른 협곡 중간 쯤의 절벽 길인데, 아이러니하게도 오르막 하나 없어 걷기 편하다. 절벽길이라 옆이 탁 트인 풍광은 속이 다 시원하다. 좁은 협곡이라 맞은편에 산이 병풍처럼 이어져있다.(식상한 표현이지만 더 적절한 표현을 찾을수가 없다.) 마침 우기였던 차마고도엔 늘 구름이 따라다녔는데, 오히려 다이나믹한 구름의 움직임으로 길이 심심하지 않았다. 건너편 산에서는 소림사 무술 고수가 훈련을 하고 있을 것 같은 신비로운 풍경. 엇, 저 구름 뒤로 이연걸이 움직이는 게 보이는 것 같은데에?!!

파노라마를 계속 찍게 만드는 풍경.


내 기억의 차마고도 트레킹의 이미지를 그려낸다면- 길고긴 테라스같은 길을 걸으며 눈앞엔 웅장한 산맥과 춤추는 구름이 주인공인 아이맥스 영화가 펼쳐지고 있다. 그곳은 전설의 차마고도인데 테라스라니? 사람이란 늘 좋게만 기억하기 때문인 걸까?
먼 옛날, 이 길을 지나던 상인들은 멀고먼 티벳에 차를 말에 잔뜩 싣고 가야 하니 되도록 힘들지 않게 길을 냈을 것이다.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 보이차와 바꾼 여러마리의 말을 이어 묶어 긴 행렬을 이루어 이 길을 천천이 걸었을 것이다. 그들에겐 생존의 문제였을텐데, 덕분에 이 체력 저질 트레커는 귀한 풍경을 이렇게 쉽게 즐기고 있다. 다시한번, 지금 내가 누리고 있는 것에 대해 쉽게 생각하지 말아야지, 다짐한다.

중도객잔이 멀리 보인다. / 방의 전망이 죽인다.

그렇게 설렁설렁 날라리 트레커들은 중도객잔에 도착했다. 민박집 사장님께서 미리 예약해준 덕분에 느긋이 도착했음에도 가장 전망좋은 방을 얻었다. 방의 전망 부분이 통창으로 나있어 그야말로 그림이다. 한참을 감탄을 하고서는, 파자마 차림으로 식당인 옥상으로 올라갔다. 방 전망이 그런데 옥상의 풍경이야 말해 뭐하겠는가. 어두워질때까지 그 개미지옥같은 옥상에서 백숙에 온갖요리와 맥주를 비웠다. 밥먹다가 산보고, 맥주한모금 마시고 하늘보고, 또 밥먹고... 풍경을 안주삼았다기엔 실제 안주를 너무 많이 먹었다...어쨌거나, 직장인의 휴가란 이런 것이어야지.

세상에서 가장 풍경좋은 화장실이란다. / 맥주가 저절로 들어감.
중도객잔 옥상의 풍경에 취한 한 여행자.
한량이 걷는 트레킹 코스!

그렇게 중도객잔의 환상적인 하룻밤은 손살같이 지나갔고, 둘째날 다시 걷기를 시작했다. 폭포도 지나고, 염소떼도 지나고 어제보다 길이 더 다채로운데, 역시 평평한 테라스다. 이렇게 몇시간을 걸어 종료지점인 티나객잔에 도착했다. 점심으로 무얼 먹을까 하다가, 객잔 마당에서 마침 막 따온 야생버섯을 흥정하는 걸 보고서, 저 버섯요리를 달라고 외쳤다. 아니나다를까, 내가 지금껏 먹었던 가장 향기로운, 아니, 전혀 다른 종류의 버섯이다. 인생버섯 요리까지 끝내고, 이런 한량컨셉으로 여행을 끝내나보다 했다.

둘째날 풍경이 더 다이나믹.
인생버섯요리.


상호도협을 다녀왔기에 중호도협에 갈까말까 잠깐 고민했지만, 마침 티나객잔 주인이 차로 입구쪽에 데려다준다고 하니 몇몇 트레커들과 함께 냉큼 길을 나섰다. 차는 몇분 거리에 우릴 떨궈주었고, 우린 절벽 끝까지 내려가 중호도협을 보고 다시 올라와야 했다. 뭐, 지금껏 좀 편했으니, 해보지 뭐.
지그재그 내리막을 끝도 없이 내려갔다. 점점 내려갈수록 우르릉 소리가 가까워진다. 바로 그 호랑이 소리. 반듯반듯한 대리석 바닥에 커다란 호랑이 동상까지 있었던 상호도협과 달리 중호도협은 조만간 끊어질 것 같은 흔들다리에 중호도협이라 쓰여진 돌 정도가 사람 손을 탄 전부였다. 그만큼 우렁찬 물살에 더 가깝게 다가갈수 있었다. 박력있는 호랑이 물살에 힘을 잔뜩 얻은 것 같다. 그럼 이제 신나게 올라가볼까?

중호도협의 박력도 만만치 않다

그런데, 중호도협 들어올 때 허술한 철창입구를 지날 때 분명 입장료를 10위안씩 냈는데, 다른 나가는 길은 빠른길이라는 이유로 15위안씩 더 내란다. 얼마나 빠르길래?
그 웃돈을 더 주고 가는 빠른 길이라는 게- 약 50미터 암벽에 박힌 사다리를 아무 안전장치 없이 타고 올라가는 것이었다. 네? 이걸 타라고요?!! (멘붕이었어서 사다리 사진이 없다...안타까운 일이다ㅠ)
그런 암벽등반 특수훈련같은 사다리가 두세 군데 있었고, 그외에도 거의 90도에(느낌적으론!) 가까운 계단이 이어졌다. 이미 많이 올라왔고, 리장으로 돌아가는 버스시간 전에 도착해야했기 때문에 우리에겐 선택지가 없었다. 결국 암벽등반을 시작했는데- 25미터 정도에서 잠깐 아래를 보는 바람에 급 멘붕이 왔고 정신줄과 팔힘줄을 잡느라 속으로 내가 내이름을 부를 지경이었다.

‘야! 정신차려! 여기서 죽고싶지 않으면!!!’

어쩐지 이번 트레킹이 운수가 좋더라니... 몇시간 전 인생버섯을 먹으며 행복해하던 우린 웃음기가 싹 빠졌다. 다들 살아서 만나자...라는 무언의 대화.

내려갈땐 나름 신났다.
곧 끊어질 것 같은 다리...근데 저 아이의 패기있는 포즈...

그 격한 경사에도 군데군데 물이나 먹거리를 파는 상인들이 있었다. 아니 매일 이 물건들 들고 이곳으로 어떻게 출근하시나요? 그런 가게 중 한군데에서 영혼이 빠진 표정으로 잠깐 쉬었는데, 수박이 보였다. 도시의 시장보다 두세배의 가격이었지만 우린 저걸 먹어야겠다는 생각 뿐이었다. 흥정따위 하지 않고 바로 사서 그자리에서 깨뜨려 우걱우걱 먹었는데- 아니 이런 당도가? 과연 인생 수박이었다. 그 순간이었기에 그런 맛이 느껴졌던 걸까? 어쨌든 그날은 인생 버섯과 인생 수박까지 먹은 셈이다. 셋이 인정하는 사실은 인생수박 덕에 힘을 내서 끝까지 올라갈 수 있었다는 것. 그렇게 꾸역꾸역 사다리인지 계단인지를 기어기어올라 티나객잔까지 왔다. 객잔 마당에서 만신창이가 된 채 잠깐 쓰러져있다가 버스를 타고 리장으로 돌아왔다. 그렇게 나름 스펙타클했던 차마고도 트레킹을 무사히 마쳤다.

처음부터 끝까지 좋기만 한 여행은 잘 기억이 남지 않는다. 중호도협의 특수훈련 덕에 중도객잔과 버섯과 수박 맛이 더 선명히 기억나는 것 처럼. 그러고보니 좋기만 한 여행을 한적도 없는 것 같다. 늘 얘기치못한 일들이 벌어지고, 실망을 하게되는 순간이 있게 마련이었다. 그런데 재밌는 것은 지나면 모두 웃으며 이야기할 수 있게 된다는 것. 어쩌면 일상에서의 괴로운 일들도 좋은 일을 더 좋게 만드는 MSG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나에게 차마고도가 유난히 감칠맛나는 여행으로 남아있는 것처럼.



*리장에 간다면 호도협 트레킹과 함께 옥룡설산 투어를 신청해서 갈수 있다. 옥룡설산에 정말 사람이 많아 호불호가 갈리긴 하지만, 장예모 감독의  인상여강 공연이 포함되어 있어 좋았다. 일단 해보길 추천한다. 신청방법은 현지 여행사를 통하면 된다.

옥룡설산 투어에 인상여강 공연이 포함되어 있었다.
휴가로 갈만한 걷기여행 

01 미얀마 껄로 트레킹 ‘순수함으로 걸어들어가다’ 

02 중국 차마고도(1)(프롤로그) 

03 중국 차마고도(2) 호도협트레킹 ‘감칠맛나는 길, 차마고도’ 

04 스리랑카(1) 스리파다(아담스픽) ‘스리파다, Serendipity’ 

05 스리랑카(2) 하퓨탈레 ‘누군가의 시크릿가든’ 

06 스리랑카(3) 호튼플레인즈 ‘교향곡을 즐기듯 걷기’ 


*2018 뚜르드몽블랑 일주 여행기 1편

*2017 히말라야트레킹 여행기 1편

*2012 까미노데산티아고 순례 여행기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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