떠나고 싶었지만 떠날 수 없던 마음

서평: 김지현 장편소설, 『유자는 없어』

by 조통달

나는 경북 청도라는 시골에서 자랐다. 국민학교 시절, 우리 마을에는 우현이란 친구가 있었다. 우현이 집은 잘 살았다. 컬러 TV와 오토바이가 있었고, 위인전 전집과 각종 전과와 소설책이 가득한 책장이 우현이 개인방 한 벽을 차지하고 있었다. 우현이는 4학년 때 대구로 전학을 갔다. 아니, '유학'을 갔다. 집이 넉넉한 친구들에게는 선택지가 많았다. 말 그대로 세상이 넓었다. 우리 마을에 살던 친척 형인 경호 형, 성호 형도 국민학교 때 대구로 '유학'을 갔다.


그 말이 그때는 참 멋있게 들렸다. 도시로 떠난다는 건 공부를 더 잘해야겠다는 결심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여기 말고 다른 세계가 있다"는 선언이었다. 지금은 대구를 지방으로 부르지만, 당시에 대구라는 도시는 내가 상상하던 또 다른 세계였다. 아주 큰 세계.


하지만 우리 집은 가난했다. 그 큰 세계에 진입한다는 것은 애당초 내가 꾸면 안 되는 꿈이었다. 엄마에게 "나도 대구 가면 안 돼?"라고 물었을 때 엄마의 그 난처한 눈빛을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한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이 있다는 걸, 그게 바로 나라는 사실을 그때 아주 어린 나이에 배웠다.


어릴 적의 그 마음을 ‘나이가 들면 다 똑같다’, ‘세월 지나면 다 잊힌다’라는 하나마나한 그런 말로 정리하고 싶지는 않다. 세상의 고민은 시골에 있어도 도시에서 살아도 결국 비슷할지 모른다. 누구에게나 꿈은 있고, 그에 따른 불안은 오고, 비교는 따라오고, 마음은 흔들린다. 그때의 청도는, 내게 너무 답답한 곳이었다.


어디서나 보는 하늘은 똑같겠지. 하지만 그 하늘을 보는 내가 서 있는 땅이 달랐다. 우현이와 경호, 성호 형이 서 있는 땅은 ‘유학’을 가 있는 대구라는 세계였고, 내가 서 있는 땅은 청도라는 시골이었다. 내게 주어진 선택지가 너무 적어서 슬펐다. 이 시골에서는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가 스트레이트로 이어진다. 내가 선택할 수 있는 중학교, 고등학교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순간 정해졌다. 대구로 ‘유학’을 가지 않으면…"



유학이라는 말이 남긴 감정


그때 내가 부러워했던 건 도시 자체가 아니었을 것이다. 떠날 수 있다는 가능성이었다. "여기 말고 다른 세계가 있다"는 걸, 누군가는 너무 쉽게 확인할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떠나고 싶어 하는 마음은 꼭 대단한 야망 때문만은 아니다. 뭔가 선택할 수 있는 곳에서 공부하고 싶었다. 아침 버스를 놓치면 읍내까지 십 리길을 걸어서 등교해야 하는 곳에서 회수권을 넣고 줄줄이 이어지는 시내버스를 선택하며 등교하고 싶었다. 학교 수업을 마치면 곧바로 집으로 오는 버스를 타야 하는 것이 아니라, TV에서 보는 학원이라 부르는 사교육의 단어도 체험하고 싶었다. 하지만 문제는, 그 선택의 욕구 앞에 놓인 문턱의 높이가 사람마다 달랐다.


떠나고 싶어도 떠날 수 없는 사람도 있다는 걸 나는 그때 배웠다. 그리고 그 기억은, 어른이 된 지금도 내 안에 오래 남아 있다.



거제의 '유자'를 만나며


『유자는 없어』를 읽으며 그 오래된 답답함을 다시 떠올렸다.


이 소설의 배경은 거제다. 섬이라는 공간은 낭만적인 풍경을 떠올릴 수도 있지만, '경계'라는 보이지 않는 선을 떠올릴 수도 있다. 바다 건너에는 분명 더 넓은 세계가 있는데, 누군가는 쉽게 건너고 누군가는 끝내 건너지 못한다. 그 차이를 만드는 건 의지나 각오만이 아니라, 결국 삶의 조건이다.


주인공은 고1 유지안. 별명은 '유자'다. 이름만 들으면 상큼하고 귀여운 별명 같지만, 이 소설의 '유자'는 가볍지 않다. 유지안은 공황을 겪고, 사소한 일상에서도 자주 흔들린다. 자신을 둘러싼 시선과 기대, 그리고 또래들이 아무렇지 않게 던지는 말들 속에서 마음이 자꾸 미끄러진다.


이 소설은 그 불안을 과장하지도, 쉽게 극복하게 만들지도 않는다. 대신 그 불안이 어디에서 시작되고, 어떻게 일상을 잠식하는지를 조용히 보여준다. 청소년 성장 소설이라기보다, "떠나고 싶다는 마음"과 "떠나지 못하는 현실" 사이에서 생기는 균열을 정면으로 다루는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내가 사는 이곳이 누군가에겐 안식처일 수 있지만 내게는 한정된 선택지일 수 있다. 그것은 단지 소설 속 청소년의 고민이 아니라, 지방에서 자랐던 많은 사람들이 한 번쯤 삼켰던 질문이기도 하다.



곁이 있어 견딜 수 있었던


이 소설에서 주인공의 답답함을 견디게 해 준 건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결국 사람이었다.


가족이었고 친구였고, 그들을 붙잡고 버틴 주인공 자신이었다. 도망칠 능력이 없어서 버틴 건지, 버텨서 살아남은 건지, 이제 와서는 구분이 잘 안 된다. 다만 확실한 건 그 시간이 주인공을 약하게만 만든 게 아니라, 어떤 방식으로든 단단하게 만들었다는 사실이다.


『유자는 없어』에서도 결국 중요한 건 '곁'이다. 유지안이 흔들릴 때 지켜봐 주는 사람들, 과하게 개입하지 않으면서도 손을 놓지 않는 관계들이 있다. 이 소설은 "정답을 주는 어른"보다 "함께 있어주는 사람"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이야기한다.



그래서 나는


나는 태어난 곳 청도를 벗어나 대구에서 대학을 보냈고, 대구에서 직장생활을 하다 수도권을 전전하다 다시 대구로 왔다. 국민학교 시절 청도에 살던 그 시절에 생각해 보면 거제에 사는 책의 주인공처럼 대구에 사는 내 딸들도 언젠가 비슷한 답답함을 느낄지 모른다. 내가 국민학교 시절에는 대구라는 도시가 꿈을 꿀 수 있는 ‘큰 세계’였었는데…


대한민국의 중심은 언제나 서울이고, 수험생과 취업 준비생의 목표는 결국 'in서울'이라는 말로 통하는 시대다. 삶의 무게는 지역마다 다르고, 선택지는 공평하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래서 아이들이 흔들리는 건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에 더 가까울지도 모른다.


우리는 너무 오랫동안 '떠나는 것'을 성공으로, '남는 것'을 정체로 여겨왔다. 지역을 지키는 삶은 누군가의 현실이고, 누군가에겐 돌봄이고, 누군가에겐 책임인데도, 그 선택은 늘 "그래서 너는 거기서 뭐 할 건데?"라는 질문 앞에서 작아진다.


떠나고 싶은 마음이 잘못은 아니다. 하지만 떠날 수 있는 사람에게만 넓은 세계가 열리고, 떠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그 마음조차 쉽게 가벼워지는 사회라면, 그건 조금 이상한 일이다. 누군가의 불안을 '예민함'이라고 부르기 전에, 그 불안이 반복되는 이유를 우리가 먼저 묻는 편이 더 정직할지도 모른다.


주인공 유자(유지안)가 흔들릴 때 곁을 지켜준 가족과 친구들처럼, 나도 내 딸이 흔들릴 때 함께 있어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아빠'라는 이름이 아닌, 그보다 먼저 살아가는 한 사람으로서. 아이에게 필요한 건 정답을 주는 어른이 아니라, 흔들리는 시간을 "함께 건너가 줄 사람"일지도 모른다. 『유자는 없어』는 그 사실을 조용하지만 단단하게 다시 확인시켜 주는 소설이다.


나도 그렇게, 누군가의 곁이 되는 어른이 아닌 ‘사람’으로 남고 싶다.


유자는 없어_책.jpg ▲<유자는 없어> 책표지 ⓒ 돌베개


*이 서평은 2026년 1월 20일 오마이뉴스 책동네 코너에 기사로 발행되었습니다.

https://omn.kr/2gr0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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