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회 말_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첫 부서
야구의 계절이 끝난 오프시즌은 콘서트 대응으로 바쁘기도 했지만 가장 중요한 다음 시즌 준비로 몸도 마음도 바빴었다. 한국과는 다르게 일본은 아르바이트를 고정된 시간이 아닌 자신이 일할 수 있는 때에 맞춰 근무시간을 정하는 시프트제를 기본으로 하는 곳이 많아 대학생들은 매 학기 바뀌는 시간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그만두는 게 아니라 일할 수 있는 다른 시간으로 변경해 계속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아르바이트도 동아리처럼 4년 내내 같은 곳에서 같은 동료들과 하는 경우도 매우 많은데 내가 있었던 굿즈샵도 상황은 비슷했다. 돔 근처에 대학이 있기도 했고 일본은 아르바이트여도 교통비를 제공하는 경우가 많아 야구를 좋아하는 대학생들이 멀리서도 찾아왔기에 겨울이 되면 졸업하는 4학년을 배웅함과 동시에 새로운 1학년 신입생 친구들을 맞이했다. 부서를 배정받고 얼마 안 지나 나이도 어리고 아르바이트 직원들의 업무를 다 파악해주었으면 하는 과장님의 지령도 있어 내가 아르바이트 직원을 관리하기로 조직을 재정비했다. 다행히도 너무나 성실하게 자신의 일을 묵묵히 해주는 친구들도 많았고 나보다 굿즈샵에서는 모두 선배들이기에 업무에서 동네 이야기까지 함께 일하면서 많은 것을 배우기도 했다.
시즌이 끝나고 다음 시즌의 목표 예산이 정해졌고 그 예산을 달성하기 위한 상품 라인업과 물량, 그리고 판매할 수 있는 체제를 갖추기 위해 필요한 인원과 매장 규모를 계산하다 보니 그 해 졸업하는 4학년이 나가면 새로 들어올 신입생 교육이며 각 파트별로 오른팔이 되어주었던 인원이 한 번에 많이 빠져 꽤 큰 일이었다. 회사 인사부가 모든 채용을 맡아서 했기에 당장 미팅을 소집해서 이야기를 했는데 시급이며 업무강도 그리고 물리적인 위치를 포함해 대학생들이 선호하는 시내에 새로 생기는 쇼핑몰이나 리뉴얼된 곳과 경쟁했을 때 우리는 점점 매력이 없는 일자리가 되어 있었고 요 근래 지원자 수가 많이 줄고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도쿄에 있는 학교에서 공부를 했던 나는 한국처럼 일본도 최저시급이 다 똑같고 여기는 꽤 힘을 많이 쓰기도 하고 힘든 업무라 다들 천 엔 이상 받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바 친구들의 이야기를 들으니 일본은 지역별로 최저시급이 다를뿐더러 후쿠오카 시내와 비교했을 때 우리 매장이 매우 짠 시급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 반대로 나는 어떻게 이 시급을 받고 다들 이렇게까지 열심히 일을 하지? 싶을 만큼 열심히 해주었기에 칸토에서 온 선배랑 같이 시급이 너무 낮은 거 아니냐며 시급을 올려서 모두의 의욕도 높여주고 새로운 직원도 더 많이 뽑을 수 있는 전략을 짜기 시작했다. 물론 철저히 계산으로 움직이는 회사이기에 최고 매출을 기록했던 우리의 실적과 더 높은 매출을 위해 꼭 필요한 것이라고 열심히 설득했다.
그와 동시에 근처 대학 진학이 정해진 신입생들의 지원서도 조금씩 들어와서 처음에는 같이 면접에 들어갔다가 두 번째부터는 혼자 우리 부서를 대표해 면접을 보러 가기도 했다. 인사부 담당자와 실무진인 내가 함께 면접을 진행했는데, 면접을 보러 가던 게 일 년도 채 지나지 않았는데 순식간에 입장이 바뀌어 기분이 참 묘했다. 그와 동시에 면접을 진행하면서 아르바이트이기는 하지만 나도 조금씩 사람을 보는 눈이 생기기 시작했는데 우리 스태프 중에 에이스라고 생각되는 친구와 비슷한 지원자를 발견하면 눈이 절로 반짝여졌고 그 친구가 예상대로 제2의 에이스가 되어 활약해주면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다. 물론 생각했던 것과 다르게 불성실한 사람도 있었고 돔에서 일한다는 것에 환상을 가지고 들어왔다가 힘들어서 일주일 만에 그만둔다고 했던 사람도 있었다. 시간이 지나니 이런 사람들을 조금 빨리 눈치챌 수 있게 되었는데 나만 그런 게 아니라 다른 사람들도 같은 생각이었는지 나중에 이야기를 해보면 대부분 비슷한 경향이 있었던 것 같다. 게 중에는 가끔 본심은 그렇지 않은데 낯을 많이 가린다던지 자신만의 세계가 확고한 친구들이 있어 시끌시끌한 또래 그룹에서 받아들이기 어려워하는 경우도 드물게 있었는데 일부러 외국인이라는 위치를 활용(?)하여 일본어나 그 지역에 대해 물어본다던지 일부러 장난의 의도가 다분한 조례나 종례시간의 인사 멤버로 지목하면서 오랜만에 일을 하러 오더라도 어색하거나 불편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슬며시 전하곤 했다.
사상 최고 매출의 기록을 경신할 때마다 위에서는 그 기록을 깰 수 있는 방법을 요구했고 이는 당연히 더 많은 사람들의 노동을 필요로 했는데 그렇게 새로운 조직원을 맞이하고 때로는 일일 알바를 함께 받아들이면서 정신 차려보니 내가 관리해야 할 부하직원이 백여 명이나 되었다. 매일 만나는 것은 아니고 시프트제로 일을 하다 보니 가끔 만나는 친구들도 있었는데 한 달에 한 번 출근하는 친구들은 미안하게도 이름을 까먹기도 해서 이를 핑계로 명찰을 제대로 달아달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그 수가 엄청 늘어났지만 예전에는 오프시즌에 모두 일대일 면담을 하면서 시합날 바쁘다는 핑계로 듣지 못했던 건의사항이나 개인적인 사정 혹은 앞으로의 계획 등을 듣고 다음 시즌에 반영을 하곤 했다고 한다. 사원도 한 명이긴 하지만 늘어났기도 했고 내가 워낙에 수다 떠는 걸 좋아하기도 하고 다들 일 하며 조금씩 나에게 이야기를 해줬던 것도 있어 호기롭게 계약서류 확인을 핑계로 모두와 면담을 실시했다. 10여 년이 넘은 프리타(フリーター)라 부르는 아르바이트를 전업으로 삼는 야전사령관과 같은 아르바이트 조직의 리더들부터 주부 아르바이트로 오전에 주로 계시는 어머니들 그리고 대학생들과 차례로 이야기하며 여러 번 울컥했던 적이 많았다. 큰 변화 없이 오래 이어진 조직이다 보니 다들 표현은 하지 않았지만 곪아 있는 불만과 서로 간의 불신이 있었고 그 안에서 매우 큰 우울감을 느끼는 직원들도 여러 명 있었다. 그래도 서로를 걱정하며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최대한 노력하며 돕고 싶다고 이야기해 준 사람들도 많았고 다른 사원에게는 말하지 못하지만 나에게는 얘기할 수 있다며 조심스레 속마음을 들려준 사람들도 있었다. 이야기를 듣고 정리를 하면서 마음이 참으로 복잡했다. 이 부서에 발령받고 나도 채 일 년이 지나지 않은 시점에 내가 생각한 것보다 나를 믿고 의지해주는 사람들이 많아서 기뻤던 마음과 동시에 그들을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었다. 그리고 개인적으로 업무 스케줄이나 생활이 많이 바뀌어 쌓여있던 스트레스와 불안도 많았기에 쌀쌀한 날씨와 함께 내 마음도 많이 차가워졌다.
힘들게 이어온 면담을 다 마치고 다음 시즌을 위해, 그리고 모두를 위해, 또 우리를 위해 내용을 정리해 상사와 선배들과 함께 공유하는 시간을 가졌다. 과장님은 모든 이야기를 듣고 나서 큰 고민에 빠진 듯한 얼굴을 하며 이내 "M짱, 면담하면서 많이 힘들었겠다. 괜찮아?"라고 걱정을 해주셨다. 사실 그 당시에는 별 생각이 없었는데 나중에야 무의식 중에 겨울을 지나며 작년처럼 힘들었던 시간이 또 온다는 생각에 큰 스트레스를 받으며 잠도 잘 못 자는 시간이 이어지며 과장님이 건넨 말의 의미를 알 것만 같았다. 다른 사람이 하는 부정적인 이야기를 듣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지칠 텐데 무사히 끝내서 대견하고 마음이 힘들었겠다는 안타까움이었을 거다. 일단 당시에는 감정을 뺀 사실에만 집중하려 했고 사원들이 개입해 정리해야 할 부분은 냉정하게 정리를 하려고 했고 조직 내에서 자연스럽게 해결되어야 할 문제는 조심스레 밖에서 지켜봤다. 물론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된 채로 새로운 시즌을 맞이한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에게는 도움의 손길이었을 거고, 누군가에게는 귀찮은 손길이었을 거다.
그리고 새로운 시즌을 맞이하고 얼마 안 지나 나는 부서이동을 하게 되었고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회사의 사정으로 친정과도 같았던 굿즈샵은 직영이 아닌 위탁운영으로 사업주체가 바뀌었다. 언제나 반가운 스태프들이 반겨주었던 아지트와도 같았던 가게는 모두 뿔뿔이 흩어져 어색한 공간이 되었다. 어떻게 보면 모두를 위해 잘 된 일 같기도 하지만 눈물 날 만큼 힘들었지만 뿌듯했고 모두와 함께 일한다는 것의 즐거움 그리고 동료를 믿고 함께 나아가는 것을 배웠던 곳이 사라져 아쉽고 슬프기도 했다. 그렇게 지지고 볶던 스태프들과 4학년 졸업생들의 졸업파티를 열어줬던 때, 종종 다 같이 모여 술자리를 가지며 일할 땐 들을 수 없던 개인적인 이야기를 들었던 시간들, 나의 부서이동이 정해졌을 때 아쉬워하며 선물을 준비해줬던 마음 모두 너무나도 소중한 추억이다. 종종 휴대폰 사진을 보면 졸음이 가득한 얼굴로 입금하러 가던 스태프들과 함께 수다 떨던 모습, 다섯 시간 버스를 타고 2군 일본 챔피언 시합을 구경 갔던 사진, 우리가 직접 만들었던 매장의 구석구석에서 지난 시간이 보인다. 지금은 함께할 수 없지만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소중한 첫사랑과도 같은 나의 첫 부서에서의 시간은 앞으로도 마음속 깊숙이 파란만장할 나의 사회생활을 함께 해 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