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들림 위의 단단함에 대해
한국에서 좀처럼 들을 수 없는 굵은 모터 소리가 물 위를 천천히 갈랐다.
수상가옥들 사이로 들어섰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흔들리는 지붕들과 그 아래로 떠 있는 삶들이었다.
학교도, 교회도, 가게도 모두 물 위에 떠 있었고 사람들은 마치 그것이 당연하다는 듯 배위에서 하루를 시작하고 끝냈다.
그 모습을 바라보며 어떠한 감동도, 연민도, 특별한 감정도 떠오르지 않았다.
아마도 내 삶과 너무 멀리 있어서, 감정이 쉽게 닿지 않았던 것인지도 모른다.
그저 배 위에 앉아 누군가의 일상을 안전한 거리에서 구경하는 사람.
그게 그 순간의 나였다.
배는 모터 소리를 최소한으로 낮춘채 천천히 지나갔고, 그 속도가 이곳 사람들의 삶의 속도와 맞춰진 듯 했다.
그들은 물결에 흔들리는 배 위에서 빨래를 하고, 밥을 하고, 아이들을 키우고 있었다.
아이들은 이 호수가 유일한 놀이터이자 삶의 터전이었다.
흔들리지 않는 날이 더 적을 텐데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물 위를 지나가는 나보다 훨씬 단단해 보였다.
나는 물결에 조금만 흔들려도 휘청 중심을 잃기 일쑤였지만, 그들은 매일의 흔들림을 삶의 일부로 받아들이는 것처럼 보였다.
멀리서 보면 이곳의 삶은 위태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바람이 거세게 불면 금방이라도 기울어질 것 같은 배위의 집들과 철마다 수위를 달리하는 호수의 성질을 그대로 받아내는 나무 기둥들.
가까이서 바라보면 그 위태로움 속에 오래 버텨온 흔적들이 있었다.
흔들리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방식으로 그들은 자신들만의 생존을 꿋꿋이 이어나가고 있었다.
서행하는 배 위에서, 나는 이 흔들림을 얼마나 두려워해 왔는지를 떠올렸다.
삶이 조금만 요동쳐도 금세 불안해졌고 변화를 받아들이는 일에도 서툴렀던 나날들이 스쳐갔다.
단단한 땅 위에 살면서도 흔들리는 마음 앞에서는 언제나 중심을 잃곤 했다.
톤레삽 호수는 나에게 흔들리지 않는 삶보다 흔들리면서도 사는 삶에 대해 생각하게 만들었다.
흔들림이 반드시 불안만을 뜻하지 않고, 때로는 그 흔들림이 누군가에게는 삶을 지탱하는 방식이 되기도 한다는 것을.
나는 그들의 삶을 이해한 것이 아니다. 이 곳에서 흘러가는 하루를 단지 잠깐 스쳐 지나간 관광객일뿐
다만 이 짧은 시간 동안 내가 그들의 삶을 지나치게 단순한 감정으로 해석하려 했다는 것.
그마저도 타인의 삶을 안전한 거리에서 소비하는 일이었다는 것만은 분명해졌다.
일몰시간에 맞춰 배가 마을을 빠져나올 즈음, 물 위에 비친 지붕들의 그림자가 잔물결에 따라 조용히 흔들렸다. 흔들렸지만 무너지지 않는 풍경. 그 묘한 안정감이 잔상에 남는다.
어쩌면 나는 흔들림을 피하려고만 했던 것이 아니라 흔들리지 않는 척하며 살아왔던 건지도 모른다.
흔들리는 물결 위에서도 삶은 계속된다는 것. 반쯤 기울어진 지붕 아래에서도 사람들은 여전히 삶을 이어가고 있었다는 것. 그 단순한 사실이 내 숨을 조금 느슨하게 만들었다.
돌아오는 길, 물결은 일정한 박자로 배 밑을 두드렸다.
그 리듬을 따라가다보니, 마음도 조금씩 제 속도를 찾아가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