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져있지만 사라지지 않은 것들
도망치듯 떠났던 나라였지만, 시간이 지나도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건 그곳에서 버티고 있던 나 자신의 얼굴이다.
캄보디아는 내게 잘 찍힌 여행 사진 몇 장이 아니라, '다르게 살아본 적이 있다'는 증거처럼 남아 있다.
그곳에서의 시간은 끝났지만, 한국에서 흔들릴 때마다 나는 여전히, 앙코르와트와 툭툭이 소리를 떠올리며 숨을 고른다.
어느 순간, 도마뱀이 있어도 덜 놀라고 툭툭이 가격 협상도 덜 지치고 단골 카페, 단골 식당, 단골 툭툭이 기사까지 생겼다.
툭툭이 소리가 더이상 소음이 아니라 그저 하루의 배경처럼 들리던 때, 나는 깨달았다.
“아, 여기서도 나는 결국 일상을 만들어버렸구나.”
한국에 돌아갈 생각을 하니 이 일상은 이상하게도 '임시 저장된 삶' 처럼 느껴졌다.
어쩌면 처음부터 완전히 눌러앉을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지만, 글 쓰다 잠시 날라가지 않게 저장 버튼을 누르는 것처럼 송두리째 날려버릴 수도 있는 씬이었다.
캄보디아에서의 시간들이 도피였을까, 아니면 또 다른 성장 시간이었을까.
그 질문을 여러 번 스스로에게 던졌지만 명확한 답은 나오지 않았다.
나는 그곳을 좋아하면서도 미워했고, 적응하기 위해 애쓰면서도 마음 한쪽에서는 늘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어느 날 문득, 여기서는 더 행복해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뇌를 지배할 때 나는 돌아가기를 마음먹었다.
결심이 생기고 난 뒤로는 모든 풍경이 조금 빠르게 지나갔다.
변함없는 풍경이었지만 묘하게 내것처럼 느껴지지 않는 자리.
돌아온 한국의 일상은 처음엔 어색할 정도로 조용했다.
흩어져 있는 퍼즐이 제자리를 찾아가듯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을 한 장면씩 제자리로 돌려놓았다.
가족과 마주 앉아있는 식탁, 문 열고 들어왔을 때의 공기, 내 물건들이 놓여있는 익숙한 방식.
그 모든 것들이 캄보디아에서는 느끼지 못했던 안정이었다는 걸 돌아오고 나서야 알 수 있었다.
결국 나는, 그곳에서 뭔가를 깨달아서 떠난 것도 아니고 멋진 성장을 이뤄서 돌아온 것도 아니었다.
그냥 더는 버티고 싶지 않았고 돌아가고 싶었고, 그 마음이 나를 움직였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단순하고 충동적인 선택이 지금의 나를 더 단단하게 만든게 사실이다.
그곳에서의 시간 덕분에 내가 이미 가지고 있는 것들의 소중함을 조금은 제대로 볼 수 있게 되었으니까.
잘못된 선택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지만, 그 잘못이 나를 지금 이자리로 데려왔다.
그리고 이 자리에서 나는 예상보다 잘 살아가고 있다.
그 시절의 선택이 옳았는지는 모르겠다.
가끔은 돌아가지 않았어도 됐을 길을 빙 돌아간 것만 같고, 그 사실이 마음에 오래 남아있다.
그 마음들까지 그때의 내가 견딜 수 있었던 방식이었다고 지금은 그렇게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