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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Mar 12. 2024

만남

포르구 파로흐자드의 시 중에서


그 어두운 눈동자들

아, 내 단순한 고행의 은둔자들이

그의 두 눈이 부르는 음악에 취해

정신을 잃었다


그가 내 위에서 파도쳐 부서지는 것을 알았다

불의 붉은 피라미드처럼

물에 비치는 그림자처럼

몸을 떨며 비를 뿌리는 구름처럼

따뜻한 계절 숨을 몰아쉬는 하늘처럼

아득히 먼 곳을 향해

생명을 향해

그는 뻗어 나갔다


나는 보았다

그의 손길에 내 존재의 골수가

녹아내리는 것을

나는 보았다

방랑자들의 주술에 걸린 그의 심장이

온통 내 심장에서 메아리치는 것을


시간은 날아갔다

장막은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나는 그를 짓눌렀다

불의 후광 속에서

나는 이야기하고 싶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의 두 눈썹 아래 짙게 드리운 그림자가

비단 커튼의 수술들처럼

욕망의 오랜 흔적을 따라

어둠 깊은 곳에서 흘러나왔다

그리고 그 공포,

그 죽음으로 얼룩진 공포가

내 잃어버린 뿌리 끝까지 스며들었다


나는 보았다

내가 풀려나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내가 바람의 감옥에서 풀려나는 것을

내 몸을 둘러싼 껍질들이

부풀어 오른 사랑으로 갈라지는 것을

나는 보았다

내 불에 탄 몸이

서서히 물이 되어 가는 것을

그러고는 쏟아지고 쏟아지고

쏟아져 내렸다

달 위로

구덩이에 가라앉은 달 위로

어렴풋이 뒤집어진 달 위로

우리는 서로 엉켜 흐느꼈다

믿을 수 없는 우리 만남이 이어지는 동안

서로 엉켜 미친 듯이 살았다

 





서로 엉켜 미친 듯이 살았다에서 탄성이 나왔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미친 듯이 살았다에서.

시인은 누구라고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은 채로

그와의 만남이 '어떠'했는지만을 고백한다.

우리가 알게 된 ‘그’는 어둡고 그림자 진 눈동자를 하고 있는 이.


그와의 만남은 시인 내면의 고행하는 은둔자들의 정신을 혼미하게 만들었고

불의 피라미드와 물 그림자와 비 구름과 아득한 하늘과 온 생명의 모습으로 시인을 덮쳤으며

골수를 녹이고 심장을 온통 뒤흔들었다.

그리고 죽음 같은 공포를 동반한 채,

내면의 뿌리 끝까지 스며들었다.


그와의 만남으로

시인은 영혼의 감옥에서 풀려나 사랑으로 부풀어 올랐으되

그로인해 존재가 갈라지고

불에 타고

끝내는 물이 되어

달 그림자 위로 쏟아져내린다.

웅덩이에 드리워진 그것의 그림자를 뒤집으며.


두 사람은 서로 엉켜 흐느낀다.

운다.

그 만남은 믿을 수 없는, 불가해한 것.

속수무책으로 그들은  뒤엉키며

미친 듯이 살았다.


(이미지의 전개가 놀랍다.

불과 물로, 녹아내리고 흘러내려서,

웅덩이의 달 그림자 위로 쏟아져,

끝내는 뒤엉켜 흐느끼는 눈물이 된다.)


생각해본다.

나도 그 끝에서 뒤돌아볼 사랑이 있는지.

그것이 굳이 누구와의 사랑이어야 할 필요는 없을 텐데.

무엇이라 불러도 좋을 '어떤 것'과 미친 듯이 뒤엉켜 살았던 적이 너는 있냐고,

과연 미친 듯이 살았노라 말할 만남이 너는 있냐고,

물어본다. 너는 과연?

‘미친듯이’가 꼭 이상적이라 할 것은 없지만 말이다.


어쩌면 나는 아직 통과 중인지도,  아직 그 ‘끝’에 이르지 못했는지도.

그러니 다만 시인의 저 온통 솔직하고도 솔직한 독백에 조용히 탄성을 터뜨리며

욥처럼 두 손으로 입을 가린다.



* 포루그 파로흐자드, <바람이 우리를 데려다 주리라>, 신양섭 옮김, 문학의숲,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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