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스프링버드 Mar 16. 2024

삶은 아마도 -

포르그 파로흐자드의 시 중에서

또 다른 탄생


어둠의 노래는 내 존재의 모든 것

그 노래는 내 안에서 그대를 반복하며

영원이 움트고 자라나는 새벽으로 데려가리라

아, 이 노래 속에서 나는 그대에게 한숨을 토해 낸다

이 노래 속에서 나는 그대를

나무와 물과 불에 연결 짓는다


삶은 아마도

하나의 긴 길이리라

한 여인이 매일 장바구니 들고 지나가는 그런 길

삶은 아마도 끈이리라

한 남자가 스스로를 나뭇가지에 매다는 그런 끈

삶은 아마도 어린 아이리라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가는 그런 어린아이


삶은 아마도

둘이 사랑을 나누다 잠시 쉬는 사이

담배에 불을 붙이는 것이리라

아니면 지나가던 사람의 아무 의미 없는 길이리라

모자를 벗어 들고 지나가던 다른 사람에게

아무 의미 없는 미소로

'좋은 아침입니다'라고 인사하는 그런 길

삶은 아마도 꽉 막힌 순간이리라

내 시선이 그대 눈동자 속에서

스스로를 망치는 그런 순간

그리고 이 안에 감각이 있다

나는 달의 느낌과 어둠의 인식을 그 감각과 섞으리라


혼자 있기에도 좁은 방에서

내 마음은

겨우 하나의 사랑만 지닐 수 있는 그런 마음은

자신의 행복을 가장할 단순한 핑계를 찾으며

화분 속 꽃들의 아름다움이 스러지는 것을 바라보며

우리 집 작은 정원에 그대가 키운 나무를 바라보며

카라니라의 지저귐에 귀 기울인다

겨우 하나의 창에 들릴 만한 그런 지저귐


아, 내 몫은 이만큼이다

내 몫은 이만큼이다

내 몫은

단지 커튼만 쳐도 나로부터 가릴 수 있는 그런 하늘

내 몫은 부서진 계단으로 내려가

고독과 부패 속에서 무엇인가와 만나려 하는 것


내 몫은 추억의 정원 속에서 슬픔에 젖어 산책하는 것

슬픔 속에서 생명을 바치는 소리가 내게 속삭인다

"나는 당신의 손을 사랑합니다"


작은 정원에 내 손을 심는다

자라서 푸르러질 질 것임을 나는 안다

나는 안다

나는 안다

내 잉크 묻은 손가락의 구덩이에 제비들이

알을 낳을 것임을


내 귀에 귀걸이를 건다

쌍둥이 붉은 체리로 된 귀걸이

손톱에 달리아 꽃잎을 붙인다

골목이 있다

그곳에는 나를 사랑했던 소년들이

여전히 가냘픈 다리와 목,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어느 날 밤바람이 데려간

작은 소녀의 순진한 미소를 회상한다

골목이 있다

내 심장이 어린 시절의 마을에서 훔쳐 온 그 골목


시간의 선을 따라 어떤 몸이 여행을 한다

그 몸에 시간의 메마른 선이 잉태되고

그 몸은 어떤 그림을 알고 있다

거울의 축제에서 되돌아올 것이라는 그림을

그리고 그렇게

누군가는 죽고

누군가는 살아남는다


그 어떤 잠수부도 구덩이로 흘러드는 하찮은 실개천에서

진주를 캐지는 않을 것이다


나는

넓은 바다에 살고 있는 작고 슬픈 요정을

알고 있다

그녀는 나무 피리에 입을 대고 자신의 심장을

연주한다

부드럽게, 부드럽게

밤에 한 번의 입맞춤으로 죽어 가던 그 작고 슬픈 요정은

새벽이 되면 한 번의 입맞춤으로

다시 태어나리라




시인은 어떤 말이 하고 싶은 것일까.

열여섯 살에 결혼해서 삼 년 만에 이혼하고, 보수적인 사회에서 사랑을 찾아 여러 남자를 만나고, 비난과 절망과 저항과 자유를 온몸으로 살다가, 교통사고로 젊어서 죽은 이 시인은.


(시는 모호하고 어려운 암호와도 같다.

해독하든 못하든, 순전한 자의적 해석이든 그럼직한 해석이든, 어떻게든 읽어내려 애쓴다.

시인은 스핑크스처럼 우리에게 수수께끼를 내놓는다. 풀어라!)


나는 이 긴 시의 한 대목에 공감한다.

삶이란 그저 긴 길과도 같은 것이란 대목 말이다.

그 길은 여인이 장바구니를 들고 걸어가고 어린아이가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며,

삶을 포기하는 절망한 남자의 선택이며,

동물적 욕망에서 잠깐 해방되는 순간이라는 대목 말이다.

시인은 아마도 이런 삶을 모두 살았거나, 적어도 이런 삶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 것이다.  


이 시의 '그대' 자리에 나는 '사랑'을 대입해서 읽는다.

사랑 속에서 시인은 스스로를 망치고,

그런 순간도 삶이라 말한다.

맞다, 우리도 그렇지 않은가. 스스로를 망치거나, 망치고 싶다는 강렬한 유혹을 느끼거나.


장바구니를 들고 걷는 일상의 길과

절망의 결말과

집으로 돌아가는 어린 시절과

무의미한 만남들과

욕망에서의 잠시 해방과

스스로를 망치는 순간들을 통과하는 시간들이 삶이다.

그리고 그 시간들을 살아내는 것으로써 우리는 삶을 ’감각‘한다-살아있다는 느낌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런 시간들을 사는 수밖엔 없는 것이다.


아무리 하찮고 비난받아 마땅하고 자해하는 어두운 시간들일지라도.

산다는 건 굉장한 별것이자 동시에 별것 아닌 일이고,

근본적으로는 '시간을 따라 여행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하여도 시인은 삶을 비하하지 않는다.

삶을 '넓은 바다에서 진주를 캐는' 일과도 같다고 하는 걸 보면.


또한 삶은 '온 심장으로 연주하는' 일이다.

입맞춤으로 죽고 새벽이면 거듭 태어나는, 사랑하고 절망하고 또 사랑하는 일.

그래서 우리는 모두 작고 슬픈 요정과도 같은 존재다.


어쩌면 시인은 이 말이 하고 싶었을까, 짐작해 본다.




작가의 이전글 만남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