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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May 14. 2024

따로 또 같이


보라색 꽃이 핀 라벤더 모종 하나를 샀습니다. 프랑스 남부에 있는 유명한 라벤더 밭을 본 적이 있어요. 넓은 구릉지대가 바다처럼 펼쳐지는데 온통 라벤더 꽃으로 뒤덮혀 있더군요. 굉장한 풍경이었습니다. 하지만 그걸 볼 목적으로 굳이 비싼 비행기값을 내고 갈 것 같진 않아요. 저는 그랬습니다. 그곳의 라벤더 밭은 시선을 사로잡지만 사람이 풀 하나 하나를 들여다보기에는 너무 집단적이어서 오히려 눈길을 못 받지요. 역설입니다. 많고 많은 장미보다 내 장미 한 그루가 소중하다는 어린왕자의 말을 언젠가부터 마음으로 알 것 같아요. 여기 라벤더 한 포기가 프랑스 남부의 그 엄청난 라벤더들보다 예쁘고 감동적입니다. 충분히, 넘치게요.


라벤더를 고추 옆에 심어줬어요. 딸기도 나지막하게 자라기 때문에 키 큰 고추 아래에 자리를 잡아줬습니다. 라벤더의 보랏빛 꽃과 설향딸기의 환한 빨간꽃과 고추의 조그마한 흰꽃이 사이좋게 어우러질 풍경을 기대합니다.

  


라벤더랑 동향인 로즈마리는 라벤더와 같이 있고 싶었겠지만 상추 사이에 심어줬어요. 소박하고 수수한 쌈채소들과 고상한 로즈마리의 동행이 좀 어색해 보이기도 합니다. 이도령과 춘향이가 로미오와 줄리엣이랑 만났달까요?

 


상추를 사이에 두고 카모마일도 자랍니다. 코스모스 잎사귀 같이 생긴 풀이 카모마일입니다. 이것도 역시 허브예요. 작년에 씨를 왕창 뿌렸다가 엄청 뒤엉켜 자라는 바람에 뽑아버렸던 카모마일이 올해 텃밭에서 저절로 싹을 틔웠네요. 상추 옆에서 자라길래 놔뒀어요. 상추는 약간 빛을 가려줘야 한다는데 카모마일이 레이스 같은 잎사귀를 펼쳐져 상추 위에 부드러운 그림자를 드리워주면 좋겠습니다.



고수는 저희 밭의 깍뚜기입니다. 무난히 자라고, 다른 식물들을 방해하지 않을 정도로 키도 적당합니다. 그림자도 짙지 않고 꽃도 아주 예뻐요. 시선을 확 끌어당기는 화려한 꽃이 아니라 안개처럼 아스라한 흰색입니다. 고수의 향이 벌레들을 쫓는다길래 이곳저곳에 심어줬는데 부추 옆에도 자라고 있습니다. 아쉽지만 고수는 벌레들한테도 아주 친절해요. 벌레들이 고수를 피하지 않고 신나게 찾아와요.

 


여기는 그룹 수업을 받는 것 같습니다. 여러 친구들이 옹기종기 모여있어요. 방풍(왼쪽 맨 위)과 아욱(오른쪽에 졸졸이 자라는 동그란 잎사귀들)과 차조기(깻잎처럼 생긴 진한 보라색 풀)와 머위(왼쪽 아래 둥글둥글한 잎사귀)가 사이좋게 자라고 있습니다. 차조기는 작년에 다른 밭에서 보고 키워보고 싶었는데 갑자기 저희 밭에 이렇게 나타나서 자라고 있네요. 오~ 잘 왔어, 잘 왔어~



들깨 새싹들입니다. 들깨의 생존력은 대단해요. 전투력이라고 하는 편이 더 적절할지 몰라요. 자라서 씩씩한 전사가 될 스파르타의 어린이들 같습니다. 작년에는 여기 저기 흩어서 심었는데 올해는 들깨만을 위한 자리를 만들어줄 생각이에요. 감자를 캐고 나면 생길 빈자리에 몽땅 옮겨심어볼까 합니다. 들깨잎으로 어디까지 요리를 만들 수 있을까, 실험해보려고요.



이건 메리골드 싹입니다. 작년에 꽃씨를 받아뒀다가 올해 뿌렸더니 오래 오래 뜸을 들인 끝에 이제 싹을 틔우고 있어요. 메리골드의 생존력도 남다릅니다. 향기도 강해요. 꽃색깔은 얼마나 샛노란지. 작년에 벌레 오지 말라고 밭에 심었는데 역시나 벌레는 전혀 구애받지 않고 저희 밭을 찾아옵니다. 메리골드 꽃으로 꽃차도 만든다는데 전 그렇게까지 부지런하진 않아서 그냥 눈요기로나 키우려고요. 이 자리에서 왠만큼 자라면 적당한 자리를 찾아 옮겨줘야 할 텐데... 고민입니다. 자람이 왕성해서 다른 식물들을 방해하거든요. 작년에는 가지의 보랏빛 열매 밑에서 화려한 꽃을 피우며 꽤나 눈길을 끌었네요.    

 


요건 바질 새싹들입니다. 씨를 뿌리고 하도 싹이 안 나서 모종을 세 개 샀는데 뒤늦게 이렇게 싹을 내미네요. 바질이 갑자기 너무 많아졌어요. 키우는 수밖에요. <바질 잎사귀+견과류+올리브오일+소금=바질페스토>가 됩니다. 아주 바질스럽게 나오는 새싹이네요. 바질스러운 향도 이미 풍기고 있겠지요?!








이번주의 텃밭 기록을 합니다:

5월 9일 : 열무를 수확했다.

5월 12일: 2차로 옥수수 씨를 뿌렸다(2주 전에 뿌린 옥수수씨에서 싹이 올라오기 시작했다.) 달래를 모두 수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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