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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May 07. 2024

크는 힘


서울은 비가 옵니다. 옥수수를 한 줄 더 파종하려고 했는데 비가 오네요. 파종하고 싶은 욕심을 비가 눌러줍니다. 세차게 날리는 빗줄기에 어린싹들이 쓰러지지 않을까 걱정스럽습니다. 파종을 하고 새싹이 나와서 어지간히 자라기 전까지는 물도 살살 줘야 해요. 씨앗이든 싹이든 아주 작기 때문에 잘못하면 흙이 파헤쳐져서 물에 쓸려나가거나 쓰러져버리거든요.


주말농장이 문을 열고(말 그대로 '문'을 열었어요. 제 텃밭이 있는 주말농장에는 철망으로 울타리를 두르고 문도 달아놨거든요) 대략 3월 말부터 이것저것 심기 시작했습니다. 감자를 필두로 그다음에는 강낭콩을 심고  그 뒤로 이런저런 씨를 뿌렸습니다. 씨 뿌리기는 중독성이 있달까요. 이걸 뿌리면 저것도 뿌리고 싶고, 하나를 뿌리면 한 줌을 뿌리고 싶고, 오늘 뿌리면 내일은 더 뿌리고 싶습니다. 빼꼼히 싹이 흙을 밀고 나오는 모습이 너무 앙증맞고 예뻐서 마음이 자꾸 달려가게 돼요.    

 

4월 11일 / 5월 2일

감자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습니다. 이 비가 그치면 감자꽃이 피기 시작할 거예요. 이미 경기도의 한 밭에서 감자꽃을 봤습니다. 감자를 잘라 땅에 묻으면 위 사진처럼 작은 감자싹이 흙을 비집고 올라옵니다. 처음 나올 때만 더디지 그다음에는 쑥쑥 큽니다. 4월 11일의 저 작은 감자싹이 3주가 지나니 무성해진 걸 보세요. 기세가 대단합니다.



4월 22일

강낭콩입니다. 콩이 두 쪽이 난 모습이 보이시나요? 콩알이 떡잎이에요. 잘 몰랐던 사실입니다. 짜잔, 하고 손을 벌려 싹을 내놓고 있는 것 같습니다. 강낭콩도 참 잘 자라는 식물이에요. 작년에는 수확을 너무 일찍 해서 채 익지도 않은 콩을 서둘러 따버렸습니다. 장맛비가 내리기 전에 수확해야 한다는 정보만 보고, 어느 날 비가 내리길래 장마구나, 생각하고 콩을 몽땅 땄는데 비가 그치고 쨍한 날이 그 뒤로도 한참을 이어지더군요. 아무튼 새파란 어린 콩으로 콩밥을 해 먹었습니다. 맛있었어요! 흠... 콩은 덜 익은 콩이 제맛이지...  




작년 늦가을에 심은 달래가 겨울을 넘기고 올해 싹을 냈습니다. 모두 하늘거려서 마트에서 파는 대찬 모습과는 많이 다릅니다. 그래도 그중 큰걸 뽑아봤더니 이렇게 뿌리가 분화를 하고 있네요. 꼭 아기처럼 붙어 있습니다.


 

4월 28일

들깨씨는 동그랗고 그물무늬가 있었어요. 그 씨앗에서 이름 붙이기 어려운 초록색의 떡잎이 나옵니다. 24색 물감세트에서 찾아봤지만 딱 들어맞는 색이 없네요. 하지만 자라면서 들깨 싹의 채도는 달라집니다. 성숙해진달까요. 위 사진 오른쪽 들깨는 제가 심지 않았어요. 밭에서 그냥 자라네요. 작년에 그리도 무성했던 들깨의 후손인가 봅니다.


4월 28일 5월 2일

꼭 아기 이빨처럼 가장자리가 동글동글한 모양의 이 싹은 고수입니다. 아기가 손바닥을 펼친 것 같기도 하고요.


4월 22일 4월 28일 5월 2일


제가 감탄했던 아욱입니다. 이렇게 예쁜 잎맥을 가진 떡잎은 본 적이 없어요. 지금까지 떡잎을 관심 있게 본 적도 별로 없지만요. 씨앗을 뿌리니 떡잎을 관찰하지 않을 수 없어요. 아욱은 요런 떡잎을 내더니 아욱스러운 잎사귀들을 하나 둘 펼치기 시작합니다.



시계방향으로 왼쪽 상단부터 토마토, 가지, 애플수박, 오이입니다




어린싹들이 자랍니다. 제가 키우는 게 아닙니다. 자기들이 자기들 힘으로 자라고 있어요. 크는 힘입니다. 씨앗을 뿌리고 물을 주긴 했지만, 씨앗들이 흙을 밀어내며 싹을 내미는 힘은 모두 씨앗의 것입니다.


사람 아이도 자랍니다.  제 아이들이 어렸을 때는 제가 밥을 먹이고 입히고 씻기고 재워서 아이들이 크는 줄 알았지만 아이들은 제 힘으로 컸다는 걸 지금에 와서야 문득 깨닫습니다. 자기 안의 크는 힘으로 말이죠.

사람 아이도 식물 아이도 또 동물 아이들도 뽀독뽀독 큽니다.


예전에는 아이들이란 기본적으로 행복하다고 생각했어요. 항상 웃고 항상 뛰놀고 계속 자라니까요. 맞습니다. 아이들은 빛을 향해 자랍니다. 식물처럼 말이죠. 모든 아이들에게는 크는 힘이 있습니다. 식물들이 그렇다는 걸 문득 깨달은 날, 뒤늦게 깨달은 진실입니다. 씨앗이 제게 알려준 진실이죠.


그런데 크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힘이 들어요. 어린이들은 자기들이 힘든 줄도 모르고 자라는데, 자라는 일 자체가 참 힘든 일이에요. 새로운 낯선 세상에 싹을 낸다는 건 엄청난 일입니다.


어리다는 건 여리다는 것이고 여리다는 건 상처받기 쉽다는 뜻이죠. 저 어리고 여린 새싹들이 ‘비에도 지지 않고 바람에도 지지 않고’ 잘 크기를 바랍니다.

 





이번주의 텃밭 기록을 합니다:

4월 28일 : 토마토, 고추, 가지, 애플과 망고 수박, 오이, 호박 모종을 심었다.

4월 29일: 옥수수 씨를 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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