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
내가 옛날에는 특별히 좋다고 느끼지 못했는데 지금은 무척 좋아진 이야기가 있어. 오늘은 그 이야기를 소개할게.
할아버지와 고양이의 이야기야. 이 둘은 절친이지. 할아버지의 이름은 페트손. 할아버지는 작은 농장에서 닭들과 함께 살고 있고 사람들과 이야기하는 것보다 혼자 있는 걸 좋아해. 그리고 곰곰 생각하는 걸 즐겨. 어떤 생각을 하냐면, 재밌는 생각! 예를 들면, '말하는 기계 요정' 같은 걸 생각해서 목공 기계로 만드는 거야. 채소 키우는 게 좋아서 채소밭을 일구고, 호수에서 낚시를 하거나 수영을 하는 것도 할아버지의 즐거운 취미야. 저녁이면 부엌에 앉아서 라디오를 듣고 십자말풀이를 하고 커피를 마시지.
다 좋은데 할아버지는 조금 외로웠는지 몰라. 젊을 때는 몇 년 동안 사귄 애인이 있었는데 할아버지를 버리고 다른 멋진 남자랑 먼 오스트레일리아로 떠나버렸다나 뭐래나. 어느 날 이웃에 사는 할머니가 갓 구운 빵을 들고 할아버지를 찾아와 정원에서 커피를 마셨는데 할아버지가 기운이 없다는 걸 알아차리지.
"부인이 있어야겠구려. 그래야 기운이 나지." 할머니가 말했어.
"무슨, 아내를 구하려면 벌써 구했어야지. 난 너무 늙었소. 혼자 사는 데 익숙해지기도 했고."
"그럼 고양이를 키워 보는 게 어떠우?"
"그러게. 고양이라면 나쁘지 않을 것 같군. 한번 키워 볼까?" 할아버지는 곰곰 생각하더니 말했어.
- <핀두스, 너 어디 있니>에서
그다음 주에 할머니는 종이 상자를 들고 할아버지를 다시 찾아왔는데 종이 상자에는 아기 고양이가 들어있었어. 고양이는 할아버지를 쳐다보며 '삑삑' 울었고 할아버지는 그 순간-
밝고 따뜻한 햇살이 쏟아져 내리는 것 같았어. 어느 여름날 아침 커튼을 걷을 때처럼.
할아버지는 고양이에 관해서는 아무것도 몰랐지. 특히 아기 고양이에 관해서는. 그래서 고양이에게 처음으로 한 말이 "난 페트손이야. 여긴 내 부엌이고. 이제 넌 여기서 살게 될 거야. 커피 마실래?" 였어.
아무튼 이때부터 아기 고양이는 할아버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존재가 됐어. 핀두스란 이름은 할머니가 고양이를 담아왔던 상자가 '핀두스표 완두콩' 상자였기 때문이야. 핀두스는 마치 사람 아기 같아서 장난치는 걸 무척 좋아하고 호기심도 많지. 닭 친구들과 놀고 '무클라'라고 하는 상상의 친구들도 있어. 페트손 할아버지와 숲을 산책하며 버섯을 따고 저녁에 소파에 누워서 할아버지와 함께 라디오를 듣는 일도 좋아해.
이 둘은 절친이 됐고 할아버지는 하루하루가 즐거웠어. 물론 핀두스도 그래 보여. 할아버지와 핀두스의 하루 속에는 많은 사건이 벌어지는데, 배고픈 여우가 이웃 닭을 잡아가고 핀두스가 집 탐험을 하다가 실종되기도 해. 할아버지는 놀라서 집 안 구석구석을 샅샅이 뒤지며 찾아 헤매지. 할아버지가 이웃 사람한테서 수탉을 데려와서 (잡아먹는다는 말에 수탉이 불쌍해서) 암탉들과 친해지자 핀두스가 질투를 하는 일도 벌어져. 마당에 텐트를 치고 멀리 등산을 왔다는 상상을 하다가 텐트 안에서 잠이 드는 바람에 이웃 사람한테 들키기도 하고.
하루하루가 즐거운 삶. 우리는 그런 삶을 꿈꾸지 않니? 이런 삶은 그림책 속에서만 가능한 삶일지도 몰라. 천진한 고양이와 절친이 돼서 아이처럼 놀이하듯 사는 삶말이야. 사람들 속에서 시달릴 필요가 없고 스스로를 자책하거나 일과 공부에 쫓길 필요도 없는 삶. 이런 하루가 마치 시루떡처럼 쌓이고 쌓이는 삶. 맛있는 삶.
작가는 자신이 페트손 할아버지와 꽤 닮았다고 말하네. 낡은 시골집에서 고양이와 함께 페트손 할아버지처럼 살고 있대. 상상으로 지어낸 이야기지만 그 속에는 작가의 실제 모습이 부분적으로 들어가 있어. 그리고 부분적으로는 작가의 꿈도 들어가 있을 거야. 실제 모습과 꿈이 만나서 페트손이라는 인물을 만들어냈는데, 이야기를 만들어내면서 작가는 아마도 자신 속에서 좋은 모습들을 더 많이 끌어내게 됐을 거라고 짐작해. 이야기를 만든다는 게 원래 그렇거든. 꿈꾸는 모습은 내 안에 원래 씨앗처럼 들어있고 그걸 유심히 찾아볼 때 비로소 살아나는 거니까.
나는 특히 할아버지의 자연스러움과 너그러움이 좋은데, 집 안의 온갖 잡동사니를 자기만의 방식으로 내버려 두는 거나 별난 물건들을 만들어보는 거나 배고픈 여우를 불쌍히 여기고 닭들과 대화를 하는 모습 속에서 할아버지가 어떤 사람인지 보여. 우리 사회는 무언가를 향해 달리게끔 끊임없이 우리를 닦달해. 마치 달리기가 당연한 것처럼. 목표를 향해 열심히 달려야만 하는 게 정답인 것처럼. 어제와 오늘, 심지어 내일도 그저 과정일 뿐이고 목표만이 유일하게 가치 있는 것 같아. 목표를 이루지 못하는 내일은 영원히 부족한 내일이지. 마치 목마른 사람처럼 우리는 손을 뻗으며 무언가를 향해서 달리지만 어쩌면 그 달리기는 쫓기는 걸지 몰라. 뭔가를 이뤄내야 한다는 불안감이 우리를 잡아먹을 듯이 매 순간 쫓아오고, 우리는 성적이든 돈이든 우정이든 중요한 걸 남들처럼 갖지 못해서 항상 마음이 가난해지는 것 같아.
하루하루가 즐거운 페트손 할아버지의 삶도 실제로 가능하지 않을까? 뭘 모르고 그런 얘기하지 말라고 너는 말하고 싶니? 얼마나 공부에 시달리는지, 얼마나 경제적 독립이 걱정되는지 내가 모르고 하는 소리라고 말이야. 그래, 그럴지도 모르지. 하지만 다른 삶의 방식도 가능하다는 것, 다른 사고방식도 가능하다는 것을 네가 꼭 알았으면 좋겠다. 빡빡한 한국 사회의 삶과 사고방식이 전부는 아니라는 걸 말이야.
그림책을 펼치고 페트손 할아버지와 핀두스가 살아가는 하루 속으로 잠시만 들어가 보자. 그림책을 넘기는 시간만큼은 '가능할 수도 있을 하루'가 '가능한 하루'가 되고, 그 시간만큼은 우리 안의 천진함이 살아나는 것 같아. 천진함은 너그러움과 짝이 되어서 할아버지와 고양이의 다채로운 하루를, 그들의 편안한 이야기를 시루떡처럼 쌓아 올리네. 그걸 맛있게 즐기는 거야, 잠시만. 김이 오르는 맛있는 시루떡을 먹듯이 말이야.
* 인용한 그림들은 온라인서점 알라딘에서 제공한 자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