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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기자기한 맛

by 스프링버드


샐리,


고양이는 모두의 친구인가 봐. 사람들은 고양이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아. 고양이가 털양말을 신은 것 같은 네 발로 사뿐사뿐 다가오면, 부드럽게 꼬리를 흔들며 다가오면, 누구도 거부하지 못해. 황홀한 눈으로 고양이를 홀린 듯 쳐다보게 돼. 참 이상도 하지. 고양이한테는 마법의 힘이 있나 봐. 그래서 작가들은 고양이에 관한 그림책을 그리고 또 그리나 봐. 고양이를 찬탄하지 않을 수 없다는 듯이. <모 이야기>의 고양이도 말할 수 없이 사랑스러워!




최연주 글/그림, 엣눈북스, 2023



고양이 이름은 '모'야. 계절은 가을과 겨울 사이. 시간은 아주 늦은 밤이야. 부엉이 할아버지도, 토끼 남매들도, 얼룩 고양이 가족도, 숲 속의 다른 주민도 모두 깊이 자는데 모는 도통 잠이 오지 않았어. 그런데 문득 창문 밖에서 무언가 반짝이네. 별은 아닌데 웃고 있는 것처럼 잠깐 반짝이고는 곧 사라져. 모는 얼른 목도리를 두르고 집을 나섰어. 그걸 찾으러.




빛. 나갓다 올게. 모.



모는 짧은 메모만 남기고 숲 속으로 들어갔어. 이야기는 우리가 충분히 예상하는 그대로야. 두렵고 설레는 모험 길에서 좋은 친구들을 만나고 반짝이며 웃는 빛도 찾는다는 얘기. 특별할 게 하나도 없어.




모는 부엉이 할아버지에게 숲의 지도를 받고 곤줄박이 부부한테서는 도시락도 받아. 청설모 친구에게서는 인사하는 법을 배우고, 식당을 하는 라쿤 아줌마와는 같이 수프를 끓이기도 하지. 그 밖에도 즐겁고 신나는 일이 많았어. 멧밭쥐들과 둥지를 짓고, 순록들과 신나는 파티를 벌이거든. 위험한 일도 하나쯤 있어야겠지? 숲 속 친구들은 한결같이 말해. 곰을 조심하라고.




사실, 곰은 오해를 받고 있었어. 숲 속 동물들은 곰을 나쁘고 위험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거든. 모는 당연히 그 오해를 풀어주지.




반짝이며 웃는 것, 모가 모험을 떠나게 만들었던 그것은 곰이 밤길에 들고 다니던 등이었지 뭐야. 그건 무섭고 위험한 곰을 만나야 찾을 수 있는 거였어. 우리가 '찾는 것'을 '찾기' 위해서는 길을 나서야 하고, 새로운 길은 두렵지. 작가는 그 두려움을 곰이라는 동물로 표현했구나. 그런데 알고 보니 곰은 위험하지 않고 오히려 참 다정한 친구였어. 우리가 두려운 건 모르기 때문이고, 알면 두려움도 사라진다는 얘기를 <모 이야기>의 작가는 해주고 싶었던 모양이다.


모의 모험 이야기는 예측 가능해서 별로 신기하지도 않고 조마조마하지도 않아. 그런데 오히려 그게 이 이야기의 매력인 것 같아. 안심하고 한 장 한 장 페이지를 넘기면서 사랑스러운 고양이와 친구들과 풍경을 마음 편히 즐기면 되니까 말이야. 하나의 이야기를 놓고 우리는 여러 의견을 낼 수 있는데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특별한 점은 바로 이러한 아기자기함이 아닐까 싶어. 기분을 행복하게 만드는 아기자기함 말이야. 그림도 그렇고 이야기도 그렇고 인물들도 그래. 그건 마치 소소하고 평범한 우리의 일상생활을 얘기해주고 있는 것 같아.


원대하고 먼 목표 앞에서 자칫하면 우리의 하루하루는 시시하고 지루해 보일지 몰라. 태양빛 아래서 가로등이 빛을 잃는 것처럼. 하지만 우리의 주변을 가만히 돌아보면 작고 귀엽고 아기자기한 일상이 보여. 이를테면, 저녁 밥상 같은 것. 반찬 몇 가지, 밥공기, 그 옆의 숟가락과 젓가락들. 둘러앉은 가족. 혹은 책상 위에 놓인 펼쳐진 공책이며 연필들. 네모난 창문, 창문의 희뿌연 먼지. 현관에 어지럽게 널린 신발, 흐트러진 동생의 머리칼, 친구의 웃는 얼굴, 편의점의 알록달록한 과자봉지, 풀숲에서 불쑥 나타난 얼룩 고양이 같은 아주 사소한 풍경들. 우리의 일상은 이런 작은 풍경들로 채워져 있지. 작고 소소한 일들로. 시시한 이야기들로. 하지만 아기자기해서 기분이 행복해지는 풍경들로.


샐리, 오늘도 아기자기한 너의 시간들을 소중하게 누리고 챙기는 하루를 보내길 바라.




* 인용한 그림은 출판사에서 제공하는 자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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