샐리,
상상을 해보자. 네 안에서 큰 강이 굽이 굽이 흘러가고, 넌 휘돌아가는 물굽이를 내려다보고 있다고. 이제 그 강에 배를 띄워볼까. 그건 아주 작은 배지. 넌 배에 앉아 천천히 노를 저어 강의 한가운데로 나가서는 강물에 배를, 배를 탄 너를, 가만히 내맡겨. 강물은 흐르고 배와 너도 흘러가.
물도 하늘도 맑은 날. 물속에서는 물고기가 새처럼 자유롭게 헤엄치고, 하늘에서는 새가 물고기처럼 유연하게 날아가. 물에 비치는 파란 하늘과 흰 구름. 맑은 물빛은 깊고 푸르러.
이 그림책은 <미스 럼피우스>의 작가 바버러 쿠니가 그림을 그리고 제인 욜런이 글을 썼는데, 미국의 한 지역에서 실제로 일어났던 일을 바탕으로 한 이야기야. 그곳에는 맑은 물이 흐르는 큰 강이 있었고, 대도시에 물을 공급하려고 강을 막아 댐을 만들기로 하면서 강 골짜기에 옹기종기 모여있던 작은 마을들이 물에 잠기고 사람들은 고향을 잃고 흩어지게 되었어. 강물은 몇 년에 걸쳐서 골짜기에 천천히 차올라 마을의 집들과 교회와 학교와 길을 삼켰지. 사람들의 정든 고향은 물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어. 이야기는 표지의 저 아이, 여섯 살 아이의 시간으로 시작돼.
내 나이 여섯 살 땐 세상이 아주 편안해 보였어요. 침실 창가에선 살랑살랑 기다란 버드나무 가지를 스치며 기분 좋은 바람이 불었어요.
시간이 흐르고 이제 어른이 된 아이, 샐리는 아빠와 함께 옛날에 마을이 있던 자리로 찾아와 작은 배를 타고 노를 저어 저수지 한가운데로 들어갔어. 강물 속을 내려다보며 샐리는 떠올렸지, 오래된 돌집 방앗간과 마을회관과 교회가 이어지는 꼬불꼬불한 길을 따라가 네거리에서 친구들을 만났던 그때를. 스위프트 강에서 낚시를 하고, 공원묘지로 소풍을 나가 도시락을 먹었던 일, 여름날 밤이면 뒤뜰의 단풍나무 아래서 밤하늘을 보며 잠을 잤고 그럴 때면 멀리서 기차 소리가 울렸던 일을. 겨울이 오면 어른들이 호수에서 얼음을 잘라서 여름까지 녹지 않을 곳에 저장하고 단풍나무에서 수액을 받아 모았던 것도. 그리고 어느 날 밤, 엄마가 했던 말도 기억했어. 그때 샐리는 친구들과 개똥벌레(반딧불이)를 잡아서 유리병에 넣는 장난을 치고 있었지.
놔주렴, 샐리 제인.
어렸던 그 시간, 세상은 편안하고 평화로웠어. 하지만 큰 도시는 물이 부족했고, 이곳에는 물이 많았어. '좋은 물, 맑은 물, 깨끗한 물, 차가운 물'이 낮은 언덕 사이로 쉬지 않고 흘렀지. 어른들은 강을 둑으로 막아서 저수지를 만들기로 도시 사람들과 타협했어. 고향을 포기하기로 말이야. 마을 사람들은 무덤을 옮기고 집들을 허물고 이사를 갔어. 모두 뿔뿔이 헤어졌어. 친구들도 흩어졌어.
강물은 데이나, 엔필드, 프레스콧, 그리니치 같은 스위프트 강의 작은 마을 여럿을 삼켰어요. 7년이란 긴 세월이 걸렸지요.
샐리와 아빠는 오후 내내, 저녁이 될 때까지 작은 배에 앉아 물 속을 내려다보았어. 아빠는 말했지. 저기가 프레스콧 마을로 가던 길 자리고, 저기는 네가 세례를 받은 교회가 있던 자리고, 저기는 학교, 저기는 마을회관, 저기는 오랜 된 돌집 방앗간이 있었던 자리라고. 밤이 내리고, 하늘의 별들이 물 위에서 반짝였어. 옛날, 유리병에 가뒀던 개똥벌레처럼. 샐리는 별빛이 반짝이는 물을 두 손으로 모아 떴어. 그리고 추억했지. "지금은 가 버린, 물속으로 영원히 사라져 간 모든 것"을. 개똥벌레를 잡으며 좋아하는 아이에게 엄마는 말했어. 놔주라고. 저 먼, 먼, 시간의 끝에서 그때의 엄마 목소리가 다시 들려왔어.
"놔주렴, 샐리 제인."
나는 점점 캄캄해지는 깊은 물속을 들여다보며 조그맣게 웃었어요.
그리고 엄마 말씀대로 했지요.
반짝이는 개똥벌레를 놔주듯, 별빛에 반짝이는 강물을 흘려보내듯, 우리의 귀중한 것을 과연 놔줄 수 있을까, 샐리? 과연 그럴 수 있을까? 개똥벌레는 유리병을 벗어나 자유를 찾아 밤하늘로 날아가는구나. 그래, 개똥벌레는 자유롭게 날아야 하지. 아무렴. 우리의 귀중한 사랑도 어쩌면 그래야 하는 건지 몰라. 우리의 좁은 마음에 갇히지 않고 넓은 허공으로 날아가야 하는 건지도. 본래의 자유를 찾아서.
그렇다고 우리가 그것들을 영영 잃는 건 아닐 거라고 믿고 싶어. 강물은 흘러가도, 맑은 날, 밤, 강물에는 여전히 우리의 사랑하는 별빛이 가득할 테니까. 그걸 보기까지 비록 많은 시간이 걸리겠지만. 여섯 살 아이가 어른이 되는 만큼이나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놓아주는 일은 큰 결심과 용기가 필요하지만. 사랑을 놓아줄 때 비로소 우리는 진정 사랑과 이어지는 것일지 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