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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 잘 모르겠다면

by 스프링버드


샐리,


오늘은 그림책이 아니라 그림책 작가 얘길 해볼까 해. 아래 그림책은 이치카와 사토미라는 일본 작가가 그리고 쓴 책이야.


이치카와 사토미 글/그림, 정숙경 옮김, 다산어린이, 2013(초판 2쇄)



작가가 그림을 아주 잘 그리지? 사실적이면서도 다정한 그림이야. 이렇게 그리려면 연습을 참 많이 했겠어. 그림책 제목의 존 선생님은 작가가 실제로 잘 알고 가깝게 지냈던 분이라고 해. 의사로 일하다 은퇴해서 영국 작은 마을의 400년도 넘은 오래된 집에서 정원을 가꾸고 동물들을 보살피며 사셨대. 동물들은 대체로 다쳤거나 병들고 늙어서 보살핌이 필요한 아이들이었지. 사토미 작가는 해마다 이 분 집에서 한두 달씩 지내며 동물들을 그렸는데, 작가가 정원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으면 선생님은 "아주 좋아."하고 어깨를 다독여 주셨대. 그리고 동물들을 보고도 똑같이 그러셨다고 해. 양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며 "독이 든 꽃은 먹지 않는구나. 아주 좋아." 하면서 말이야. 존 선생님은 사람이든 동물이든 살아 있는 모든 존재를 소중하고 사랑스럽게 대하셨다는구나. 작가가 이 그림책을 만든 이유는 바로 이 때문이었어.


동물들과 아름답게 살아가는 존 선생님의 모습을 꼭 그림으로 남기고 싶었습니다. <존 선생님의 동물원> 작가의 말 중에서



사토미 작가가 그림 공부를 해서 작가가 된 과정이 참 흥미로워. 작가는 미술학교에 다니지 않고 혼자 그림을 배웠어. 자기가 그림 그리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도 좀 늦었지. 스무 살이 넘었을 때니까. 우리는 보통 중고등학생 때 진로를 결정해야 될 것 같잖아. 주변에서도 그렇게 요구를 하고. 사토미 작가에게도 그런 압력이 없지 않았을 거야. 하지만 작가는 순종적인 아이가 아니었던 것 같아.


작가는 일본에서 태어나서 자랐고 작가가 성장하던 무렵의 일본은 요즘보다 훨씬 더 보수적이었어. 학교에서는 성적으로만 아이들을 평가해서 시험성적순으로 명단을 만들어서 벽에 붙여놓았다고 해. 작가는 그런 학교가 싫었고 성인이 되면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떠나겠다고 결심했대. 그리고 성인이 되자마자 그 계획을 실천했지. 우리는 우리가 놓인 환경에 어떻게 하면 적응할지를 고민하고, 적응하기 위해 애를 쓰는데, 이 사람은 자신한테 맞는 환경을 찾아서 떠난 거야. 용감하고 산뜻하지 않니?


사토미 작가가 선택한 나라는 프랑스였어. 처음에는 가정집의 보모로 들어가 아이들을 돌보는 일을 했지. 그러면서 프랑스어를 공부하고, 자기가 앞으로 어떤 길을 가야 할지 이것저것 시험해 봤대. 시간을 충분히 갖고 서두르지 않았어. 그러던 어느 날 벼룩시장에서 그림이 많은 어떤 책을 발견하고는 자기도 그런 그림이 그리고 싶어졌대. 그래서 그 책을 사서 그림을 따라 그렸고, 그걸로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어서 다른 그림도 그리기 시작했어. 길거리의 사람들이라든지, 동물원의 동물들, 식물원의 식물들 같은 걸. 사토미 씨는 그 순간이 아주 행복하더래. 그리고 마침내 깨달았어.


아, 난 그림 그리는 것이 하고 싶었구나.
-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중에서.



그다음부터는 다른 일을 찾느라 두리번거리지 않았어. 오직 한 길만 열심히 갔지. 하고 싶은 일을 찾았으니까. 어떤 시기에는 하루에 열두 시간씩 그림을 그렸을 때도 있었다네. 작가는 이렇게 말해.


꿈이 뭔지 잘 모르겠으니까 손에 잡힐 때까지 탐험하는 데 시간을 쓰기로 결정한 거예요. 성숙해지려면 시간을 써야 해요. 생각할 시간을 허락하지도 않고 꿈을 찾으라는 건 말이 안 되는 일이죠.
-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중에서.



넌 커서 뭐가 되고 싶니? 꿈이 뭐야? 샐리, 이런 질문을 받으면 어때? 어른들은 수시로 이렇게 묻곤 하지. 혹은 네 스스로도 그런 걸 물을지 몰라. 어른들이 자꾸 물으니까 마음이 조급해져서 말이야. 하지만 꿈이 없는데 어쩌지? 꿈이 너무 먼데 어쩌지? 불가능해 보이는데 난 이미 실패자가 아닐까? 너는 이런 걱정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내 생각에는, 미리부터 걱정하고 겁을 먹고 실망하고 있을 너 같은 아이들이 참 많을 것 같아.


나는 아이들에게 '꿈을 가지라'고 요구하는 어른들을 보면 마음이 불편해. 누구나 꿈이 있진 않아. 꿈이 없는 게 꼭 나쁜 것만도 아니고 꼭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라는 생각이 들거든. '꿈이 있다'가 정답이라고 누가 확실하게 말할 수 있을까? 뭔가 재밌는 일이 있다면 그걸 꿈이라고 부르면 안 될까? 그런 일은 일찍 나타날 수도 있고 늦게 나타날 수도 있지. 자꾸 변할 수도 있어. 그게 자연스러운 것 같아. 사람의 마음이란 원래 자연스럽게 피고 지고 또 피고 지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래서 너에게 이 작가를 소개하고 싶었어. 남이 가라고 한 길이 아니라 자기답게 산 어른을 알려주고 싶었어. 느긋하고 자연스럽게 살고 있는 어른을. 그렇게 사는 게 가능하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어. 그리고 세상에는 가능한 일들이 많다는 얘기도 하고 싶었어.


사토미 작가는 물이 흘러가듯 자신의 꿈으로 자연스럽게 흘러들어 간 것 같아. 우리도 마음과 생각과 느낌을 편안하게 흘러가게 놔두다 보면 결국 가야 할 곳에 이르지 않을까? 나는 어디로 가야 하지? 그래도 고민이 되면 자신에게 시간을 넉넉히 주고 기다려봐. 주변에 선량하고 현명한 사람들에게도 물어보지만 너 자신에게도 조용히 물어보면 좋겠어. 재촉하지 말고. 불안해하지 말고. 사토미 작가의 말이 너에게 도움이 됐으면 좋겠다.


제 안엔 제가 의지하고 믿는 친구가 있습니다. 깊은 곳에 있는 제 본성입니다.
중요하고 무거운 고민이 있을수록 남을 만나 의견을 구하기보다는 그 아이와 대화합니다. 프랑스에서 저는 완전히 혼자였습니다. 아무리 친하게 지내는 지인과 친구가 생겼다고 해도 그들에게 연애, 경제 문제 등 내밀한 이야기까지 나눌 순 없었어요. 모든 문제를 혼자 스스로 해결해야만 했습니다. 조언을 구할 주변인이 없으면 자연스럽게 자기 안에 의지할 친구를 만들게 됩니다. 제 안에 그런 존재가 있어요. 지금도 고민이 생기면 철저하게 혼자가 됩니다.
"넌 어떻게 생각해? 지금 이 결정이 마음에 들어?" 이렇게 계속 질문을 던지죠. 만약 그 친구가 "응"이라고 답하면 떨치고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내면의 친구는 쉽게 모습을 드러내지 않습니다. 조용하게 오랫동안 혼자 있을 시간을 줘야 해요.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중에서.






* 이치카와 사토미 작가의 정보는 최혜진 씨의 다음 책에서 도움을 받았습니다:

<유럽의 그림책 작가들에게 묻다> Pp. 248-281 , 최혜진 글, 신창용 사진, 은행나무, 2016.


https://brunch.co.kr/@hyejinchoi/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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