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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프링버드 Jan 22. 2021

아, 호시노 미치오!

<곰아>와  <숲으로>

호시노 미치오, <바람 같은 이야기>



여기 한 사람이 있다. 진짜 삶을 산 사람이. 자연으로 눈길을 돌린 사람이. 알래스카 들판을 걷는 그리즐리 한 마리에서, 영화 50도의 혹한에서 지저귀는 박새에서 눈길을 떼지 못한 사람이. 자기 생명, 살아 있다는 것의 신비를 온몸으로 살아낸 사람이.


호시노 미치오는 10대 후반에 알래스카를 처음 접한 뒤, 20여 년간 알래스카의 대자연과 야생동물과 그곳에서 거주하는 사람들을 사진으로 담아낸 일본 출신의 세계적인 야생 사진가다. 안타깝게도 그는 러시아 캄차카 반도 쿠릴 호에서 텔레비전 프로그램 취재 작업을 하던 중에 불곰에게 습격당해 사망했다. 그때 나이가 마흔셋. 알래스카 원주민 사회의 정령신앙과 신화의 흔적을 좇아서 17회에 걸쳐 쓰기로 예정돼 있던 글을 14회까지 끝내 놓았던 즈음이었다.


호시노 미치오를 접한 건 그의 <바람 같은 이야기>와 <여행하는 나무>에서였다. 그의 글은, 뭐랄까, 진짜(!)라는 느낌이 들었다. 말과 행동과 생각이 제각기 따로 노는 사람의 글이 아니라 한없이 깨끗하고 진실하고 정직한 글이었다. 사람이 이토록 하나에 집중하기는 어렵지 않나, 운명이란 게 있다면 그것은 아주 드문 사람에게만 찾아드는 것이구나, 감탄하면서 경외심을 느꼈다. 호시노 미치오 자신의 표현에 따르면, 그는 '마치 첫사랑의 열병에 걸린 소년처럼' 첫 순간부터 알래스카를 동경했다고 한다.


그가 찍은 사진은 놀랍도록 아름답고 진귀한데, 진심으로 대상을 사랑했고 또 온갖 위험을 무릅쓰고 대상에게 더 가까이 다가가고자 했기 때문이다. 그는 카리부들이 새끼를 낳고 계절 이동을 하는 때를 기다려서 알래스카 툰드라로 찾아가 북극해의 바람을 온몸으로 맞으며 카리부 떼의 사진을 찍었고, 알래스카 바다로 나가 흑고래의 사진을 찍었다.


그의 글은 사진으로 담아내지 못한 그 이면의 이야기와 자신의 생각과 느낌들 그리고 그곳 사람들의 이야기들을 섬세하고 따뜻하게 전해준다. 글도 사진처럼 투명하다.


호시노 미치오의 글과 사진으로 채워진 두 권의 그림책이 있다. 더 정확하게는, 사진 그림책이다.  <곰아>는 알라딘 인터넷서점에서 품절로 표시되는데 <숲으로>는 아직 판매되고 있다.


<곰아>, 진선출판사


<숲으로>, 논장


호시노 미치오의 글은 어린 아이들에게는 조금 추상적이고 먼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반드시 그러리라고 단정하지는 못하겠다. 사진의 언어가 너무나 강렬하기 때문에. 그렇더라도 글을 음미할 수 있다면 더 좋을 것 같다.


사진 그림책은 많이 제작되지 않기도 하려니와 잘 만들어진 책을 보지 못했다. 사진과 글이 서로를 방해하지 않으면서 최상의 호흡을 맞추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솔직히 이 두 사진 그림책도 편집이 무척 아쉽다. 이를테면 다음 그림은 글자가 사진을 망친다. 이 그림책은 글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연령대의 아이들이 적정 독자일 텐데 그렇다면 굳이 글자를 크게 키울 필요가 없었다 싶다.




다음 그림에서도 한정된 공간 안에 사진을 너무 많이 실은 탓에 사진 자체가 갖고 있는 생생한 느낌이 흐트러지는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 장 한 장 충분히 시간을 두어 사진과 글을 음미하고 있으면, 북극의 얼음처럼 차고 맑은 바람과 곰의 뜨거운 입김과 고요히 응시하는 작가의 시선이 그대로 내 마음으로 들어오는 것 같다. 그림책은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공식이 때로는 적용되지 않는 경우도 있지 싶다. 그것은 작가에 대한 사랑에 눈이 어두워져서 그림책을 눈이 아닌 마음으로 보게 돼서가 아닐까.  


<곰아>는 품절됐고 글도 비교적 짧아서 전문을 다 같이 감상해보면 좋을 것 같다:


언젠가 너를 만나고 싶었어.

아주 오래전, 내가 어렸을 적 너는 이야기 속에 있었지.

그러던 어느 날 이상한 일이 생겼어.

문득 네 생각이 난 거야.

전차에 내 몸이 흔들리고 있을 때였어.

횡단보도를 막 건너려는 참이었지.

네가 깊은 산속에서 풀숲을 힘차게 헤치며 쓰러진 큰 통나무 위를 건너고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던 거야.

나는 알았지. 너와 나 사이에 같은 시간이 흐르고 있다는 것을.


너는 산골짜기 저쪽에서, 나는 여름 풀 무성한 이 언덕에서, 포근한 6월의 바람을 쐬고 있어.

이글루 산에서 피어오르는 흰 구름이 그늘을 만들며 머리 위를 지나고 있지.

끝없이 펼쳐진 벌판에 네가 있는 것만으로 하늘과 땅이 가득 차 보이는구나.

너는 새끼 곰과 놀고 있어.

다정히 속삭이듯 애틋이 끌어안듯이.

나도 이대로 초원을 달려가 너의 몸에 손을 대 보고 싶구나.

하지만 너는 너무 멀리 있지.

밤하늘의 별처럼 너무도 멀리, 아득히.


미크픽 강에 여름이 왔어.

연어는 계속해서 강을 거슬러 올라오지.

너는 산에서 내려오고 흰머리독수리는 바다에서 날아들어.

갈매기들은 먹다 남긴 찌꺼기를 얻으러 오지.

미크픽 강에 여름이 왔어.


무심코 앞을 봤을 때 풀숲 속에 '이거 어쩌지?' 하는 얼굴로 네가 앉아 있었어.

나도 어쩔 줄 몰라 꼼짝도 않고 서 있었지.

서로 마주 본 채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내 귀에 가늘게 너의 숨소리가 들렸어.

맥킨리 산기슭에서 우리는 궁둥이를 땅에 붙이고 블루베리와 크랜베리를 정신없이 따먹고 있었어.

가끔 머리를 들어 서로를 확인하면서.

나는 가을 열매에 바지를 물들이며, 너는 가을 열매에 엉덩이를 물들이며.


벌써 여러 날 우리는 같은 숲 속에서 밤을 맞고 있어.

정적이 흐르는 어둠 속 낙엽 밑에서는 바스락바스락 뒤가 부산스레 움직이고 산토끼가 후다닥 나무 사이를 달려가고 있어.

네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나는 알아, 네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벌써 여러 날 우리는 같은 숲 속에 함께 있어.

밤이 되면 나는 조금 두려워.

어딘가에 있을 너에게 귀를 기울이지.

그럴 때면 옛날의 원시인이 된 것 같아서, 짐승이 된 것 같아서 내 몸에 신비로운 느낌이 퍼져.

밤이 되면 나는 조금 두려워.

하지만 이 야릇한 느낌이 좋기도 해.


너는 아니, 가을 색이 부쩍 깊어진 때를.

기온이 뚝 떨어진 밤이 지나고 햇살이 맑은 아침이야.

앞을 둘러보렴.

울긋불긋 단풍이 한결 짙어졌지.

끝도 없이 끝도 없이 저렇게.

가을의 툰드라에 아름다운 뼈가 묻혀 있었어.

나는 팔을 뻗어 살며시 만져 보았지.

얼굴을 가까이 대고 냄새를 맡아보았어.

쭈그려 앉아 먼 지난날의 네 노래를 듣고 있었어.


겨울의 정적에 귀를 기울여.

이제 너의 모습은 보이지 않지만 눈 밑에 웅크리고 있는 생명의 기운을 나는 느끼고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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