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경과 전조
우울증을 진단받고 정기적인 진료를 받던 초기, 한 가지 기억에 남는 질문이 있다. 그것으로 글을 열어보고자 한다. 다들 한 번씩 대답해 보길 바란다:
행복을 +10, 평범함을 0, 절망을 –10이라는 점수로 매겨봤을 때 사람은 하루 동안 어떤 그래프를 그리게 되는가?
보통은 하루에도 다양한 사건이 발생하고 선호하는 시간대가 있기 때문에 출렁이는 파도처럼, 혹은 격한 롤러코스터처럼 10인 10색의 그래프를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당시의 내 대답은 ‘-10에서 움직이지 않습니다.’였다. 죽은 이의 심박수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내 기분 그래프도 일직선을 그렸다. 사망 선고를 받은 것이다. 절망적인 기분을 전환하기 위해 좋아하던 취미를 하거나 맛있는 음식을 먹으러 가보고 사람도 만났으나 그래프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예전엔 재미있는 글을 보며 웃기도 했던 것 같은데 이젠 잘 읽히지 않고, 그렇게 맛있다는 맛집을 찾아가도 감흥이 없었다. 그나마 사람을 만날 때면 정해진 반응을 출력하기 위해 웃기도 하고 떠들기도 했으나 기본적으로 우울하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혼자 있을 때가 제일 편해졌다. 우울한 기분을 숨기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자연히 고립이 시작되었다.
원래 기질이 우울한 편이라면 이런 질문도 무의미하지 않냐는 시각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나 역시 기본적으로 비관적, 우울한 성향의 인간이었고, 위의 질문에 대답하면서 병리를 자각했기 때문에 기억에 남은 것이다. 우울증에 걸리기 전에는 나도 좋아하는 일과 취미가 있었으니까.
정리하자면 내가 겪은 우울증은 ‘행복한 일이 있어도 그에 맞게 반응할 수 없는’ 상태다. 보편적으로 우울증 환자는 행복을 느끼게 해주는 신경전달물질인 세로토닌이 부족하다는 소견이 있다. 그러니 기존에 좋아하던 일을 해도 전과 같은 느낌이 없는 것이다. 옛날엔 그렇게 좋아하던 책, 음식, 장소, 시간과 같은 것들에 감흥이 없어지면 사람이 비어 간다. 그렇게 어어 하는 사이에 마음의 안식처를 하나씩 잃다 보면 결국엔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이것이 우울증이다.
그렇다면 사람은 왜 우울증에 걸리는 것일까?
대답하기 어렵다. 똑같은 인생은 없고 각자 다른 과거와 계기로 우울증의 길로 접어들기 때문이다. 다만 어떤 ‘경향성’을 가진 사람들이 유난히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것 같다는 의견에 대해서는 말할 수 있다. 질문을 바꿔보자.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첫 번째, 예민한 사람이다. 외부의 자극에, 혹은 비도덕적인 사건에 예민한 사람은 그렇지 않은 사람에 비해 몇 배로 많은 스트레스에 노출된다. 단순히 양이 많은 것뿐만 아니라 더 자주, 심할 경우 매 순간 고통에 노출되어 있다면 우울하지 않을 수 있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두 번째, 회복력이 좋지 않은 사람이다. 개인적으로 이것은 사람이 어떤 과거를 겪었는지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하는데, 그 중요성이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상이 답답하다. 회복력이 낮은 사람은 정말 난감하다. 기분 전환을 위해 남들이 1의 시간을 투자할 때 3, 5 이상의 시간과 노력을 기울여야만 비로소 이전의 사건을 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스트레스가 누적되어도 회복할 시간이 충분하지 않은 경우 기분이 ‘우울함’에 고정되어 그대로 행복을 느낄 수 없는 인간이 될 수 있다.
세 번째, 가족 병력이 있는 사람이다. 유전이라는 얘기가 아니다. 가족 중에 병력이 있다면 우울증에 걸릴 수밖에 없는 환경이 자연스럽게 조성된다는 얘기다. 우울증 환자들을 깎아내리려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과 함께하다 보면 평범하던 사람도 쉽게 우울해진다. 아무리 기쁜 일이 있어도, 혹은 기쁘게 해 주려고 노력해도 보답이 돌아오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면 우울과 무기력은 쉽게 전염된다.
이상으로 우울증에 걸리기 쉬운 기질, 경험, 성장 환경을 정리해 보았다. 내 경험상 우울한 사람이어도 회복력이 좋을 수 있고, 긍정적인 사람도 힘든 일을 겪으면 자연히 우울증에 걸릴 수 있다. 우울증이란 이 다양한 원인의 조합으로 나타난 결과다. 그러니 맨 처음의 질문에서 사망 선고를 받은 사람은 자신이 어떤 원인으로 우울증에 걸렸는지 한 번씩 사유해 보기를 바란다. 이 변수를 조정하는 것이 치료의 첫걸음이기 때문이다.
성장 환경이 원인이라면 격리를 시도할 수 있다. 그게 어렵다면 도어 슬램, 그것도 힘들다면 원망의 대상을 정해두는 것만으로도 사람은 편해질 테니까. 경험이 원인이라면 치료를 시도할 수 있다. 전문 상담을 받거나 일상생활에서 훈련을 거듭하며 나의 회복력을 육성하는 것이다. 나를 행복하게 만들어줄 새로운 취미를 찾는 것도 좋다. 그런 초보적인 시도가 나를 일으켜 세울 것이다. 기질이 원인이라면 제일 쉽다. 약물의 도움을 받으면 된다.
보통은 이 세 가지를 전부 병행하며, 나 역시 그랬다. 대충 비유하자면 삼각대가 쓰러졌을 때, 어느 하나를 덜 조정할 수는 있어도 결국 세 다리의 각도를 전부 조정해 줘야 하는 것과 같은 이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