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_ 미타쿠예오야신 _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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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티브 인디언인 '아라파호' 족은, 11월을, 모든 것이 다 끝난 건 아닌 달이라고 부른다.
11월이 시작되었는데도 이상하리만치 햇살이 화사했다. 예년 같으면 지금쯤 우기가 시작되어서 비 오는 날이 많았을 텐데 일주일째 계속된 맑은 날씨 덕에 늘 보는 풍경에도 매번 감탄할 만큼 단풍이 아름다웠다.
몇 년 만에 온 캐필라노 계곡은 알맞게 익은 햇살과 공기로 청명했다. 집에서 그리 멀지 않은 도시 외곽이지만 그렇다고 막상 오려고 하면 그리 만만한 거리도 아니라서 손님이나 와야 찾아오게 되는 관광지 같은 곳이지만, 채영에겐 가끔 생각나는 아끼는 장소 중의 하나다. 지섭과의 첫 결혼기념일에도 여기에 왔었다. 노아를 가진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입덧도 심하고 꿈이 많아서 잠을 자도 개운하지 않았다. 그때 지섭은 이곳의 기념품 가게에서 채영에게 '드림 케춰'를 사 주며 말했다.
이걸 머리맡에 걸어두고 자면 좋은 꿈은 통과하고 나쁜 꿈은 여기에 다 걸렸다가 아침 햇살이 닿으면 모두 사라진대.
지섭과 이혼한 후에도 일이 년에 한 번씩은 왔었다. 절대로 그가 생각나서 온 건 아니고 그냥 이곳이 좋았다. 하지만 그때마다 그가 떠오른 건, 처음으로 이곳에 함께 온 사람이었기 때문일 뿐, 아무런 감정의 동요는 없었다. 다만 오늘은, 여전히 기억은 비슷한 경로로 되살아나는데 이젠 그가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라는 게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가 죽은 지 벌써 일 년이다.
지난 일 년동안, 엘에이에서 돌아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오타와로 떠났던 노아는 처음엔 좀 외로움을 타는가 싶더니 곧 적응해서 새 친구들도 사귀고 직장도 만족하며 지내고 있고, 채영은 집을 팔고 작은 저층 콘도로 이사를 했다. 그 사이 집값이 좀 오르긴 했어도 은행 융자를 제하고 나니 그리 큰돈이 남은 건 아니지만 그래도 통장에 갑자기 목돈이 들어있으니 든든했다. 이사할 때, 마가목을 두고 오는 게 섭섭했지만 아쉽진 않았다. 채영에게 마가목은 이미 잊히지 않을 추억의 물증으로 남았기 때문이다.
채영은 집을 팔리자 곧 직장을 그만두었다. 집을 팔아 목돈이 생기긴 했지만 나중을 생각하면 부담 없이 일을 그만 둘 처지는 아니지만 아무 미련도 없이 사표를 냈다. 보수도 좋고 베네핏도 좋아서 노아를 키우는 동안 많은 도움이 되었던 직장이었다. 표면적인 이유는 심신의 한계를 넘어선 노동을 견디게 했던 노아가 자립을 했으니 돈을 더 벌려고 애쓸 필요가 없어졌다는 것이지만 진짜 이유는 문득, 자신이 가엾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꽤 오랜 세월 동안 한 번도 자신만을 위해서 무엇을 하거나 하지 않았던 적이 없었다. 늘 견디라고 참으라고만 했다.
직장을 그만두자 가장 기뻐한 건 노아였다. 몇 년만 지나면 월급도 많이 오를 테니 그땐 자기가 엄마를 책임지겠다며 꽤 비장한 목소리로 말했다. 채영은 크게 웃었다. 절대 아이에게 부담을 주진 않을 테지만 그 마음이 예뻐서 행복했다.
얘! 아직까진 내가 더 부자야. 이젠 돈 쓸 일도 별로 없어서 놀고먹어도 앞으로도 몇 년은 끄떡없다. 놀다가 질리면 다시 일할 수도 있지만 이젠 힘든 일은 안 할 거니까 걱정 마. 해도 파트타임으로만 할 거고.
노아는 채영의 말은 건성으로 듣는지 마치 추임새를 넣듯 채영의 말 중간중간에 엄마 잘했어. 정말 잘했어.라는 말만 되풀이했다. 그동안 날마다 그저 버티는 심정으로 근육통에 시달리며 일하는 엄마를 보는 노아의 심정이 어땠을지 짚어져서 채영은 새삼 마음이 아팠다. 15살부터 알바를 시작해서 대학 졸업할 때까지 한 번도 용돈을 준 적이 없는 아이였다.
일을 그만두자 한국에 있는 동생은 부쩍 더 자주 전화를 해서 한국에 와서 함께 살자고 했다. 채영은, 늘 일만 하고 살다가 이제야 아름다운 캐나다의 진면목을 좀 즐기려는 중이니 방해하지 말라는 농담을 하면서도 단호하게 싫다는 말은 나오지 않았다. 나이 들면 귀소본능이 생긴다더니 이젠 정말 늙는가, 싶기도 했다.
주차장에 차를 대고 3시간짜리 주차 티켓을 끊어 앞 유리창에 끼워놓고 채영과 코니는 매표소로 향했다. 길을 건너기도 전에 큰 목판에 새겨 넣은 간판이 눈에 들어왔다.
Capilano Suspension Bridge (캐필라노 서스펜션 브리지)
입장권을 사려고 줄을 선 코니와 나란히 선 채영은 새삼스레 그녀와 처음 대화를 나눴을 때가 떠올랐다. 캐나다에서 태어났지만 일본과 브라질 혼혈인 코니는 외모나 기질이나 엄마의 유전자는 별로 받지 않았는지 동양적인 요소는 거의 없었다.
이사 오고 첫 봄이었다. 봄을 타는지 만사가 귀찮았던 채영은 잔디밭까지 돌볼 여력이 없었다. 잔디 깎기 담당이었던 노아는 주말마다 아르바이트하랴 운동하랴 늘 바빴다. 그러는 동안 뒷마당의 잔디는 무럭무럭 자라고 민들레와 제비꽃이 창궐했다. 채영은 뭐든 자라는 것들은 다 그냥 두었다. 그러다 아무래도 민들레는 홀씨가 되면 이웃에게 민폐가 될 것 같아서 동그랗게 몸을 마는 씨앗을 보면 두 손안에 가두고 목을 땄다. 그러면서도 은밀하게 땅따먹기를 하는 제비꽃은 모른 척했다. 아마 우연히 듣게 된 옛 노래 때문이었을 것이다. 갓 스물의 한 부분을 물들이고 있는 조동진의 제비꽃. 제비꽃은 가문비나무 아래로 집중적으로 퍼졌는데 나중에는 마당의 이곳저곳에서 자라는 제비꽃을 캐다가 모종을 심듯 가문비나무 아래에 동그랗게 심었다
지금 뭐 하는 거야?
채영은 난데없는 목소리에 깜짝 놀라 소리 나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옆집과 경계선 구실을 하는 낮은 담장 위로 한 여자의 얼굴이 보였다. 옆집 사는 코니였다. 이사오던 날 이름정도만 알리는 인사를 한 후에 제대로 만나거나 말을 해본 적도 없었다. 채영은 집에 있을 때도 주로 안에만 있었고 주중엔 출근을 하니까 시간이 없기도 했고, 솔직히 말한다면 이웃에게 자신의 직업이나 이혼했다는 말을 해야 하는 상황이 싫어서 더욱 이웃들과의 관계에 소극적이었다. 코니는 친한 사람에게나 할 법한 말투로 잔소리를 했다.
잔디밭으로 순식간에 퍼질 텐데 어쩌려고 그래? 그리고 그거 잡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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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영이 아는 한, 코니는 들꽃은 무조건 잡초로 분류하는 동네에서 가드닝을 가장 잘하는 사람이다. 이건 누구에게서 들은 건 아니지만 동네를 한 바퀴 산책한 후에 그녀의 정원을 본 사람이면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결론일 것이다. 그녀의 정원은 온갖 꽃과 나무들이 허락된 만큼의 제자리에서 자라고, 계절이 바뀌어야만 변화를 눈치챌 수 있을 만큼 늘 한결같은 풍경을 유지하고 있었다. 잔디밭은 더 완벽했다. 멀리서 보면 다 같은 푸른 잔디밭이지만 가까이서 보면 잔디 반, 잡초 반인 대부분의 집들과는 달리, 그녀의 잔디밭은 순도 99.9%의 잔디였다. 아침마다 그녀는 자신의 잔디밭에 기생하려고 날아온 잡초들을 마치 막 생기기 시작한 흰 머리칼을 핀셋으로 뽑듯 골라냈다. 이층 방 창문에서 몇 번 그 모습을 본 채영은 은근히 주눅이 들어서 뒷마당의 파티오 테이블에 앉아서 책을 읽고 싶은데 참은 적도 있었다.
미안, 너네 집 정원까진 안 번지게 할게. 그냥 이번 한 철만 모아두고 보고 싶어서 그래.
코니는 채영을 빤히 쳐다보더니, 아침에 스콘을 구웠다면서 자기 집으로 커피를 마시러 오지 않겠냐고 했다. 그때까지도 코니를 거의 낯선 사람으로 분류하고 있던 채영은 정말 가고 싶지 않았지만 지은 죄(?)가 있어서 거절할 수가 없었다. 담장 하나를 사이에 두고 집들이 붙어있으니 내 집 마당을 제대로 관리하지 않으면 남의 집까지 피해가 갈 수도 있다는 걸 채영도 알고 있었다.
커피를 마시는 동안, 잡초가(잡초라고 듣고 들꽃이라고 이해한다.) 얼마나 빠르게 잔디밭을 점령하는지에 대해 일장 연설을 듣고, 아끼던 한국산 봉숭아 꽃씨를 뇌물로 상납하겠다는 약속까지 한 후, 눈치를 보며 일어섰다. 노아에게 주라며 싸준 스콘을 달랑달랑 들고 돌아오던 채영은 문득, 생각했다. 그런데 노아 이름은 또 어떻게 안대?
알고 봤더니 노아와는 벌써 꽤 친해져서 노아를 통해 채영의 신상이 다 털린 후였다. 채영은 그 후로도 꽤 여러 날 제비꽃과 한통속이 되어서 그녀를 초조하게 했다. 그러다 어느 휴일, 더 이상은 못 봐주겠는지 잔디를 깎겠다고 나갔던 노아가 웃으면서 다시 들어왔다. 엄마, 잔디가 너무 키가 커져서 기계로는 깎을 수가 없어. 궁리 끝에 두 사람은 가위를 하나씩 들고 뒷마당으로 나갔다. 잔디에게 사죄라도 하듯 무릎을 꿇거나 엉거주춤 앉아서 가위로 잔디를 자르다가 너무 열중하고 있는 서로의 모습을 보며 그야말로 웃음이 터져서 아예 잔디에 드러누워서 웃었다. 우리 왜 이러고 사니?
언제 나왔는지 두 사람을 보고 있던 코니는 좀 전에 만들었다며 레모네이드 두 잔을 담장 위에 얹었다. 그 후로 코니는, 다 큰 녀석이라 안 챙겨도 된다고 사양해도 못 들은 척하며 채영이 없는 저녁 시간이면 자주 노아에게 음식을 가져다주었고, 채영도 뒷마당에서 코니와 함께 커피나 차를 마시며 그녀가 구운 스콘을 먹는 날이 많아졌다. 일 년에 두서너 번이긴 했지만 채영이 한국 음식을 만들어서 코니를 부르기도 했다.
정말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
요즘 채영이 심각하게 고민을 하고 있다는 걸 알고 있는 코니가 뜬금없이 묻더니 말을 이었다.
벌써 이십 년도 넘었는데 이제 와서 돌아가 어쩌려고? 아무리 동생이 있다지만 이십 년이면 한국이라고 안 변했을까. 내 말은 사람들 말이야. 여기서도 아무리 오래 살아도 여전히 이방인이란 생각이 들 때가 있지만 그래도 그러려니 하며 넘길 수 있지만, 네가 태어났고 너와 같은 외모를 지닌 사람들이 사는 그곳에서 이질감이나 소외감을 느낀다면 그건 더 견디기 힘든 일이 아닐까? 그리고... 난 정말 네가 멀리 안 갔으면 좋겠어. 그 생각만 하면 너무 슬퍼.
채영은 미소만 지을 뿐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코니는 답답해 죽겠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표를 한 장 건네주었다. 입구로 들어서자 아직 흔들 다리는 보이지 않았지만, 단지 길 하나를 건너왔을 뿐인데도 숲의 향기가 달랐다. 가을걷이를 해서 쌓아놓은 크고 선명한 주황색 호박들 옆에 있는 화살나무가 아득하리만치 붉게 물들어 있었다.
[... 계곡을 가로질러 놓여있는 이 흔들 다리는 1889년에 개인소유로 처음 짓기 시작했다. 요즘처럼 중장비가 없던 시대라서 노동력은 전적으로 근처의 원주민들과 그들이 데려온 말의 힘에 의존했다. 처음에는 대마 줄과 삼나무로 만들었던 다리를 1903년에 와이어 케이블로 교체했다....]
출입구 안쪽에 마련되어 있는 안내소에서는 이런 내용의 녹음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리고 큰 유리 장식장 안에는 당시 인부들이 사용한 일상용품과 공구들이 진열되어 있었다.
길이 450피트, 높이 220피트의 계곡 사이를 잇는 흔들 다리. 상상만으로도 이내 짚어지는 고단했을 노동을 어쩐지 그들은 즐기며 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드는 건, 천정에 매달아 둔 주방도구들 때문이었다. 고된 일을 끝내고 따뜻한 음식을 큰 냄비에 끓여서 나눠먹고, 캠핑 도구 같은 냄비에 커피를 끓이고 성근 틀을 사용해서 머핀을 굽고 술도 한 잔씩 걸치며 왁자하게 하루의 피곤을 풀었을 그들을 생각하면 슬며시 미소가 지어졌다.
그들의 육체적 고단함을 누구보다도 공감할 수 있는 채영이지만 이렇게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게 되는 건 원주민들의 영혼과 마음씀을 좋아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채영은 그들이 고통을 다스리고 다시 새 힘을 얻는 방법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밤이면 다리 아래로 몰아치는 바람소리가 음산해서 무서울 정도였는데도 원주민들은 그 소리를 들으며 공사 중인 다리를 ‘라핑 브리지(laughing bridge)’라고 불렀다고 한다. 어디선가 바람의 웃음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코니도 이 장소를 좋아해서 열 번쯤은 왔을 거라고 하면서도 마치 처음 온 사람처럼 비명까지 지르며 흔들리는 다리를 즐겼다. 채영은 코니 때문에 다리가 더 흔들려서 다리 난간처럼 만들어진 로프를 잡고 아예 멈춰 있으면서도 춤추듯 다리를 건너가는 코니를 보는 게 즐거웠다. 코니는 익숙한 것에도 그것이 좋으면 매번 새로운 듯 감탄했고, 자신이 느끼는 감정을 남의 눈치 보지 않고 솔직하게 표현하고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지혜가 있었다. 채영은 자신이 그런 걸 놓치며 살았다는 걸 알고 있다.
늘 뭔가 지금은 가질 수 없는 것, 닿을 수 없는 것을 갈망하느라 정작 당장 누릴 수 있는 것들을 놓쳤다. 일상의 무늬를 이루는 사소한 것들이 모여서 바로 자신의 삶이 되는 것일 텐데 채영은 늘, 어딘가에 자신이 원하는 완성된 삶이 기다리고 있으리란 미련을 버리지 못해서, 현실은 오직 '견뎌야 할' 과정일 뿐이라고 여겼다. 이제 와서 이걸 알아챈 자신의 어리석음이 딱했지만 늦었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올바른 것들은 스스로 깨달았을 때가 바로 가장 완성된 시기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큰 흔들 다리를 건너가면 나무와 나무 사이를 잇는 작은 다리들을 다시 만나게 된다. 구름 속의 산책이 아니라 숲 위의 산책, 나무 사이의 산책이다. 한 사람이 지나갈 만큼의 폭으로 다리를 놓으면서도 예정된 동선 안으로 들어오는 작은 나무 한 그루도 허투루 베어내지 않는다. 그렇게 마치 다리에서 자란 듯 중간에 불쑥 나타나는 어린 나무들을 보면서 채영은 생각이 깊어졌다.
막히면 돌아가고, 아프면 앓다가 피하기도 하고, 쌓이면 허물어질 때까지 잠시 기다렸어도 좋았을 것을,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 것들에게 서둘러 제 팔다리를 하나씩 잘라 주며 허둥지둥 세월을 건너온 자신이 보이는 듯했다.
다시 캐필라노 서스펜션 브리지를 건너 되돌아서 나오자 어디선가 둥둥 북소리가 들렸다. 채영과 코니는 십 대 아이들처럼 팔짱을 끼고 그 북소리를 찾아갔다. 네이티브의 생활, 역사, 모험, 신앙 같은 그들 삶의 모든 것을 조각한 역사책이나 마찬가지인 토템폴을 만드는 작업장옆에 그리 넓지 않은 공터가 있었고 작은 공연이 열리고 있었다.
네 사람이 조금씩 모양이나 크기가 다른 북을 치고, 덩치가 좋은 한 남자가 웅얼거리는 음색의 네이티브 노래를 부르고 있다. 그리고 그중 가장 키가 크고 마른 한 남자는 가면을 쓰고 춤을 추고 있었다. 코니가 소곤거렸다. 아마 저 춤을 Pow dance라고 부를 거야. 북소리를 듣고 사람들이 제법 많이 모여들었다. 워낙 넓은 숲이라 그런지 걷는 동안 사람들을 별로 만나지 않았는데 다들 어디에 있었는지 꽤 많이 모여들었다. 사람들이 반원을 그으며 공연장 주변에 빙 둘러서자, 북소리가 멎고 노래를 하던 사람이 말했다.
오늘이, 크리스의 생일입니다.
모두들 일제히 박수를 치며 환호하다가 자연스럽게 생일 축하 노래로 이어졌다. 수십 명의 낯선 사람들이 목소리를 모아 생일 축하 노래를 부르자 마스크를 쓰고 있던 남자는 조금 망설이다가 마스크를 벗었다. 뜻밖에도 그는 네이티브가 아닌 앳된 백인 청년이었다. 조금 놀란 사람들의 축하 노래가 더 커졌다. 채영은 문득, 저 청년에겐 어떤 자신만이 해독할 수 있는 삶의 상형문자가 있을까,라는 생각을 했다. 생일 축하가 끝나고 다시 마스크를 쓴 청년은 노래와 북소리에 맞춰서 춤을 추었다. 순탄치 않은 삶을 살아온 그들이지만, 세상의 그 어떤 종족보다도 자연에 순응하고 감사할 줄 알았던 사람들의 후예답게 아리고 억울한 삶을 순하게 녹여 부르는 노래와 춤일 것이다.
채영은 노래나 춤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진 못했지만 자신의 느낌이 틀리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공연을 지켜보는 동안, 조금씩 벅차오르던 감정이 마음속 외진 곳으로 흘러들어 경직된 시간을 풀어내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뭉근하면서도 깊은 햇살 탓인지 실제로 뭉쳐있던 날갯죽지 근처의 근육이 부드러워졌다.
그리 길지 않은 공연이 끝나고 사람들은 다시 흩어졌다. 아마 그들도 저마다의 상념을 끌어안고 숲을 걷거나, 혹은 흔들리는 다리를 핑계 삼아 아무도 몰래 숨겨 둔 슬픔을 조금씩 흔들어 풀어주면서 제 몫의 시간을 건너갈 것이다. 사람들의 뒷모습이 새삼 아름다웠다.
채영과 코니는 오래전엔 티 하우스로 쓰였다는 기념품 가게 앞에서 멈췄다. 문득 지섭이 떠올랐지만 채영은 가벼운 미소로 그를 먼 하늘로 보낸다. 마당엔 굵직한 나무 둥치를 잘라서 만든 테이블과 의자가 놓여있었다. 한낮의 성성하던 숲의 기운이 어느새 짙고 쌉싸름한 늦가을 저녁의 향기로 번지고 있었다. 두 사람은 커피를 사서 나무 의자에 앉았다.
코니는 마치, 점심 먹었어?라고 물어보듯이 이젠 괜찮냐고 물어보았다. 채영은 그녀의 말속에 담긴 의미를 금세 알아챘다. 지섭의 장례식에 다녀온 후 채영은 꽤 오래 힘들어했다. 하지만 채영이 힘들었던 건 결코 지섭의 죽음 때문이 아니었다. 물론 스스로도 놀랄 만큼 슬프긴 했다. 그의 존재가 이토록 자신의 감정을 건들 수 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럼 괜찮지. 반성 많이 했어.
채영의 미소가 긴 여운처럼 숲을 건너간다.
있잖아. 난, 결혼하면서부터 내가 겪은 모든 힘듦을 내가 받아야 할 벌이라고 생각했어. 그를 사랑하지도 않으면서, 한국을 쉽게 떠나려고 결혼을 했으니까. 그리곤 마치 내가 불행해야 그 죄 값을 다 치르는 것처럼 건방을 떨었지. 그를 좀 더 자세히 알려고 노력하지도 않으면서 나와 다른 그의 생각과 행동을 무시했고, 변하지 않는 그를 못마땅하게 생각했어. 정작 나 자신은 사소한 버릇조차도 바꾸려 하지 않으면서 말이야. 적어도 내가 결혼을 얼마나 악용했는지에 대한 반성이라도 제대로 했으면 좀 더 현명한 사람이 되었을 것 같아서 후회한 적도 많아. 특히 노아에게 가장 미안했지. 아빠라는 그 아이의 권리를 내가 경솔하게 빼앗은 것 같아서... 아마 그땐 내가 좋은 엄마가 될 준비가 되어있지 않았던가 봐. 지섭에게도 좀 더 좋은 여자가 될 수도 있었을 텐데 그걸 철저하게 부정적인 에너지로 사용한 거야. 그렇다고 이혼했던 걸 후회한다는 말이 아니라 아이의 아빠인 그 사람에게 난 아무것도 진심으로 준 것이 없다는 자각 때문에 아직도 마음이 아플 때가 있어. 돌아보면 후회되는 일 모두가 결국은 내가 만들어 낸 것인데 난 그걸 남의 탓이라 생각했던 것 같아.
갑자기 뭔 소리야? 채영만큼 열심히 살고, 타인에게 무해한 사람도 드물다는 걸 내가 아는데.. 무엇보다도 노아를 저렇게 훌륭한 청년으로 잘 키웠잖아. 아이가 없는 나는 얼마나 노아를 탐냈는지 알아? 너 일하느라 정신없을 때 살짝 데려다 우리 집에 감춰놓고 싶었다고!
두 사람은 손뼉까지 치며 깔깔 웃었다.
그나저나 정말 한국으로 돌아갈 거야? 결정한 거야?
솔직히 말하면 여기 올 때까지도 반반이었는데 지금 막 결정했어. 네 영향이 커.
코니의 큰 눈이 더 동그래졌다.
안 갈 거야. 나는 내가 늘 부유하며 살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되돌아보니 나는 이미 뿌리가 내려진 나무더라고. 다 큰 나무는 다른 땅에 옮겨 심는 거 아니래. 그리고 내가 어딜 가서 산들 너만큼 좋은 친구를 또 만나겠니. 대신 네가 가끔 물도 주고 가지도 쳐주고 잘 돌봐줘야 해. 나 원래 무지 나약하고 의존적인 인간이야.
두 손으로 입을 가린 코니의 두 눈이 웃고 있는데도 물기가 스쳤다. 그러더니 갑자기 주변을 둘러보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아, 여기 너무 좋지 않아? 우리 일주일에 한 번씩 올까?
조금 남은 식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두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느린 걸음으로 숲을 빠져나오던 채영은 문득 멈춰 서 뒤돌아본다. 건너편 끝이 아득한 흔들 다리는 한 번도 흔들린 적이 없는 것처럼 고요하게 놓여 있었다. 하지만 흔들림 속에서 중심을 잡아가는 게 삶이라고, 삶은 원래 휘청거리며 건너가는 거라고 말하는 것도 같았다. 계곡 아래서 묵직한 바람이 불어왔다. 채영은 낮은 웃음소리 같은 바람의 말을 듣는다.
귀소본능이란 자신이 태어난 곳, 혹은 고향이라고 부르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아니라, 끝내 잃어버릴 수 없는 자기 자신으로 돌아가려는 갈망일수도 있다. 채영은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싶었다. 아직까지도 거기서 오래 기다려 준 그대,
나에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