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_ 미타쿠예오야신 _ 3/4
3
LA로 가는 비행기가 요란한 소리를 내며 막 이륙하려고 할 때, 채영은 비로소 전화를 했던 그녀에게 누군지, 아니, 지섭과 무슨 관계인지를 물어보지 않았다는 게 떠올랐다. 분명히 들은 그녀의 이름이 생각나지 않는다.
그녀는 누구지? 어떻게 내 연락처를 알았지? 이렇게 무작정 지섭의 집으로 가면 그녀를 만날 수 있다는 뜻인가? 사실 채영은 지섭의 집에 가본 적이 없었다. 단지 노아가 혼자 한 번 간 적이 있어서 그 집의 주소를 갖고 있을 뿐이다. 채영은 지금 이 순간에 그녀가 누군지 궁금해하는 자신을 이해할 수 없었다.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설명하기 싫은 이 감정의 혼돈 속에서 빨리 벗어나고 싶어서 도움을 청하 듯 옆에 앉은 노아를 쳐다보았다.
부실했던 자신의 둥지에서 저렇게 건강하고 멋진 청년으로 자라 준 게 늘 고마웠다. 해도 여전히 채영에게 노아는, 바라보기만 해도 가슴 저린 존재다 채영은 살짝 한숨을 쉬며 노아의 반듯한 옆모습을 쳐다보았다. 옆모습이 지섭과 많이 닮았다는 걸 새삼스레 깨닫는다. 채영은 눈을 감고 있는 민우의 옆모습에서 형언할 수 없는 아픔을 느꼈다. 차라리 오랫동안 그랬듯이 계속 아빠가 없는 듯 지냈더라면 노아가 지섭의 죽음을 받아들이기가 훨씬 쉬웠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지난 일 년동안 마치 그동안 못해준 것을 몰아서 해 주겠다는 듯, 지섭은 적극적이었다. 채영은 할 수만 있다면 시간을 돌려놓고 싶었다. 하지만 한편으론 어쩌면 지섭의 무의식이 자신이 이렇게 갑자기 떠날 것을 예감하고, 서둘러 아이에게 다가온 것 일수도 있단 생각이 들자 새삼스레 삶과 죽음의 모호한 경계가 아찔했다. 우리는 모른다.
지금 우리가 삶과 죽음, 그 어느 쪽에 더 깊이 몸을 담고 있는지.
지난 일 년은, 세 사람 모두에게 헤어져 산 그 이전의 십 오 년 보다도 더 많은 일들이 있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일’이라기보다는 감정의 교류라고 해야 하겠다. 채영의 예상과는 달리, 마치 오랜 가뭄 끝의 단비인양, 민우는 쏟아지는 지섭의 관심과 계획을 거부하지 않았다. 자라는 동안 아버지에 대해서 아무것도 묻지 않는 것이 아이 나름대로 정한 규칙이거나 자존심일 거라 짐작하면서도 혹시 그게 미움일까 봐 은근히 걱정했던 채영에겐 뜻밖의 반응이었지만 다행이란 생각도 들었다.
노아는 지섭의 청에 기꺼이 LA로 가서 한 달 동안 함께 지내다 온 적도 있다. 이젠 다 자랐다고 여겼는데 한 달 만에 돌아온 아이는 키도 조금 커진 것 같고 몸도 탄탄해 보였다. 달라진 것은 외모만이 아니었다. 행동에도 어딘지 모를 여유가 느껴졌다. 채영은 그렇게 변한 아이가 신기하고 기특하면서도 묘한 기분이 들었다. 안도감과 서운함이라는, 함께 겹치기엔 어색한 감정들이 달그락거렸다. 둘이 닮은 구석이 많아서 함께 지내다 보면 감정적으로 부딪쳐서 관계가 나빠지지나 않을까 걱정했던 채영이 무안할 정도로 두 남자는 아주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했다.
노아의 감은 눈꺼풀이 간헐적으로 움직였다. 채영은 아이가 자는 게 아니란 걸 알았다. 이어폰을 꽂고 있는 걸 보니 아마 음악을 듣고 있는 모양이다. 채영은, 자지 않으면서도 말없이 눈을 감고 있어야 하는 아이의 어지러운 상념들이 짚어져서 가슴이 미어졌다.
그땐, 모든 변화가 뭔가 좋은 시작의 징후 같았는데 결국은 아이에게 더 큰 아픔이 되고 만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렇다고 채영이 지섭과 함께 하는 미래에 대해 기대를 가졌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아이에게, 아예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을 찾아준 것 같아 홀로 뿌듯했던 것도 같다. 소용없는 후회가 가슴을 짓누를 때마다 채영은 저도 모르게 한숨을 쉬었지만 한 편으론 다른 생각도 들었다. 만약 지난 일 년 동안 아무 일도 없었다면, 두 사람은 지금보다는 훨씬 더 냉정하고 담담하게 지섭의 죽음을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게 지금의 낱낱 한 슬픔보다 더 견디기 쉬웠을까? 어쩌면 더 아린 상처와 후회를 남기진 않았을까? 무언가를 잃거나 상처받는 것이 두려워 아무것도 마음 안에 들이지 않고 살아간다는 건 공허한 일이다.
채영은 노아의 머리칼을 가만히 쓰다듬어주고 자세를 고쳐 앉으며 눈을 감았다.
4
장례식은 지섭이 다니던 교회에서 치러졌다. 지섭은 부모님께 물려받은 가게를 결국은 잘 지켜내지도 못하고, 다른 사업을 몇 번 시도하다 꽤 많은 돈을 탕진한 후에야 미국으로 건너가서 지금 하고 있는 일을 시작했다, 채영과 이혼 후 불과 2,3년 사이에 벌어진 일이었다. 한인마켓에 물건을 대주는 유통업을 했는데 다행히 사업이 잘 되어서 거래처를 캐나다까지 확장하는 준비를 하던 중이었다. 동업자는 그래서 오히려 채무가 더 많다며 목소리를 높였다. 아무래도 뭔가 석연치 않은 구석이 있는 것 같으니 변호사를 사서 알아보면 어떻겠냐고 넌지시 말을 건넨 사람은, 평소에 지섭과 가까이 지냈다는 교회의 목사님이었다. 하지만 채영은 물론 노아도 그러고 싶지 않았다. 그건 자신들과는 상관없는 지섭의 일이고, 이곳에서 함께 살았던 사람들이 처리할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여자,
채영은 노아와 그녀가 초면이 아닌 것을 알고 조금 놀랐다. 노아는 이제야 엘에이에서 한 달 동안 지내면서 아빠의 사무실에 간 적이 있는데 그때 만나서 인사를 하고 함께 셋이서 함께 먹은 적이 있다는 말을 했다. 사실 노아는 그때 이미 눈치를 챘었다. 집안에 딱히 여자의 물건이라고 할 만한 것은 없었지만 집안의 상태나 냉장고 안의 밑반찬 같은 것들이 혼자 사는 남자의 집은 아니었다. 따져보면 굳이 숨길 필요가 없는데도 내색을 하지 않는 아빠를 위해 노아는 끝내 모른 척했고, 혹시라도 엄마가 알면 이젠 친구처럼 지내는 두 사람의 사이가 다시 멀어질까 봐 채영에게도 자신의 짐작을 말하지 않았었다.
지섭이 죽고 없는 집에서 채영과 해옥은 마주 앉았다. 채영은 처음 만나는 여자가, 그것도 전남편의 장례식에서 만난 여자가 이토록 익숙하고 편한 것이 이상할 정도였다. 장례식 내내 해옥은 채영의 뒤에 없는 듯 서 있어서 채영이 누군지 모르는 사람들은 의아해하기도 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겠고 우리가 굳이 이렇게 마주 앉을 필요가 있는 사람인가 싶은 채영의 마음을 알아채기라도 한 듯이 해옥은 묻지도 않은 자신의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해옥이 서울에서 공장 시다부터 시작해서 마침내 갖게 된 작은 봉제 공장을 운영하다 정리하고 미국으로 온 게 5년 전이라고 했다. 재단부터 미싱, 검수까지 모든 과정에 능통했던 해옥에게 남편은, 그 정도 기술이면 미국에서 돈도 많이 벌고 영주권도 금세 나온다고 말하며 꿈에 부풀어 있었다. 사실 남들에게는 편하게 남편이라고 했지만 그저 사진 한 장 박아 액자에 넣어 세워두고 함께 살기 시작한 처지였다. 하지만 해옥은 좋아해서 함께 살면 남편이지 법적인 위치가 무슨 상관이랴 싶었다. 그는 처음엔 공장의 궂은일을 척척 해줘서 큰 의지가 되는가 싶더니 시간이 지날수록 대부분의 일을 해옥에게 맡기고 거의 날마다 술친구들과 어울렸다. 해옥은 미국에 가면 그가 변할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하며 그의 결정에 따르기로 했다.
불법적으로 운영하는 공장이긴 했어도 해옥의 솜씨가 워낙 좋아서 공장의 일감은 점점 많아지고 돈도 벌었지만 같은 종류의 사업을 하던 한국인의 밀고로 전 재산을 압수당했다. 출국 명령이 내려졌지만 그대로 돌아갈 순 없어서 몸을 숨겼다. 다행히 해옥은 다른 봉제공장에 취직을 했다. 해옥은 옷의 종류를 막론하고 모두 재단과 바느질이 가능해서 사람들을 가르치고 품질 검사를 하는 것만으로도 꽤 많은 월급을 받았지만 워낙 일이 많아서 늘 고단했다. 게다가 작업장에 갑자기 들이닥치는 이민국 사람들을 피해 허둥지둥 숨을 때면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여기서 포기하고 한국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이런 해옥의 결심과는 다르게 남편은 일도 하지 않고 하루종일 엘에이의 한인타운을 돌아다녔다. 가끔은 며칠 동안 안 들어오기도 했다. 아무래도 도박을 하는 것 같았지만 절대 아니라며 오히려 화를 냈다. 새로 공장을 차리려고 알아보러 다니는 중이라면서.
해옥이 아무리 일을 많이 하고 절약해서 돈을 모아도 그의 씀씀이를 당해낼 수가 없었다. 돈이 떨어지면 그는 해옥에게 화풀이를 했다. 처음엔 물건들을 집어던지더니 기어코 그 폭력성이 해옥에게로 이어졌다. 세상에서 가장 못된 남편들이 하는 일은 모조리 다 하려고 작정한 사람 같았다. 차라리 해옥에겐 잘 된 일인지도 몰랐다. 아이가 있는 것도 아니고 이젠 남편에게 기대할 게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다는 게 오히려 홀가분했다. 어느 날, 술이 취해 들어와서 행패를 부리다 잠든 남편을 보며 충동적인 살의를 느낀 해옥은 스스로에게 너무 놀라서 남편보다도 어떻게 변할지 모르는 자기 자신이 두려워서 외투와 손가방만 들고 집을 나왔다. 하지만 막상 나와 보니 갈 곳이 없었다. 그때 눈에 띈 곳이 지섭의 장례식을 치른 한인 교회였다.
목사님은 평소에도 어려운 일이 생기면 의논하고 도움도 자주 받았던 지섭에게 해옥의 딱한 사정을 말했고, 해옥은 교회 구석의 마룻바닥에 매트리스를 깔고 잠을 자며 지섭의 가게에서 일을 시작했다. 해옥은 워낙 경험이 많아선지 무슨 일이든 어려워하지 않았고 사람 한 명이 들어온 티가 금세 날 정도로 일을 잘했다. 됨됨이도 좋은 사람이 일도 잘해서 지섭은 무엇으로든 그녀를 돕고 싶었다. 더구나 평소에 그녀가 편히 쉴 수 있는 방 한 칸도 없는 것이 늘 마음에 걸렸던 지섭은 세 달쯤 되었을 때 지섭의 아파트에 있는 작은 방으로 들어올 것을 권했다. 철 지난 옷이나 잡동사니등을 넣어두고 창고처럼 쓰는 방이니 월세는 안 받겠다고 했지만 해옥이 굳이 우겨서 지섭은 어쩔 수 없이 시세의 반값만 받기로 하고 그녀에게 방을 내주었다. 얼마 후 해옥은 식료품을 사러 갔다가 예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을 우연히 만났는데 그 사람을 통해서 해옥의 남편은 술집에서 다툼이 나서 경찰에 연행되었다가 불법체류자인 게 밝혀져서 강제추방 되었다는 걸 알았다. 해옥은 차라리 잘 된 거라고 생각했다. 미움도 애틋한 감정의 일부인지 그동안 원망만큼 걱정을 하기도 했는데 한국엔 그의 가족도 친구들도 있으니 미국보다는 나을지도 모른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그가 이 땅에 없다고 생각하니 갑자기 숨통이 트이는 것 같았다. 해옥은 그가 갑자기 자기 앞에 나타날까 봐 두려워서 출근을 하거나 가까운 마켓에 가는 외에는 거의 외출을 하지 않고 살았었다. 지섭의 회사에서 일을 한 지 2년쯤 되었을 때, 해옥은 마침내 영주권을 받았다. 해옥에게 지섭은 '소도'같은 존재였다.
남 얘기를 하듯 별 감정의 기복도 없이 자신의 이야기를 하던 해옥은 채영에게 죄송하다고 했다. 채영은 그녀가 자신에게 그런 말을 할 이유가 없다는 걸 말하려다 그만두었다. 그러면서도 해옥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이젠 까마득해진 자신이 지나온 시간들이 휘청거리며 다가오는 걸 막진 못했다.
한국에서 중학교 국어교사였던 채영은, 흔한 표현으로 노처녀였다. 맘에 드는 남자를 만나지 못한 탓도 있지만, 엄마를 향한 아버지의 권위적이고 강압적인 모습이 남편이란 존재에 대한 기대를 일찌감치 무너지게 한 탓도 있었다. 게다가 채영은 자신의 생활이 좋았다.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도 좋았고, 방학 때마다 홀로 떠나는 여행도 즐거웠다. 하지만 채영의 나이가 서른에 가까워오자 아버지의 결혼 재촉은 거의 고문 수준이었다. 빚쟁이처럼 기다리고 있는 맞선 때문에 주말이 오는 게 두려울 정도였다.
아버지나 친척들의 눈치를 보느라 나름 만족했던 자신의 생활방식마저 지겨워졌다. 할 수만 있다면 당장 이 나라를 떠나고 싶었다. 그때 마침 캐나다에 사시는 엄마의 친구로부터 지섭을 소개받았다. 몇 번의 어색한 통화 끝에 지섭이 한국으로 왔다. 지섭이 머무는 두 달 동안 두 사람은 거의 날마다 만났다. 어딘가 순진하고 어눌한 구석이 있는 남자였다. 채영은 그리 오래 망설이지 않고 몇 달 후에 결혼을 했다.
결혼을 하고 바로 캐나다로 왔다. 그의 집은 광역밴쿠버에서 조금 떨어진 아보스포드라는 곳이었다. 상상했던 것보다도 훨씬 크고 좋은 집이었고 잔디가 깔린 마당은 마치 축구장처럼 보였다. 지섭이 태어나기도 전에 이민을 와서 작은 수퍼부터 시작한 지섭의 부모님은 이제는 큰 골프용품 가게를 운영하고 계셨는데 작년에 은퇴하고 실제적인 운영은 지섭에게 모두 맡긴 상태였다. 모든 것이 더할 나위 없이 좋았고 지섭도 항상 채영을 세심하게 배려하며 예뻐했다. 결혼 10개월쯤 되었을 때 임신이 되어 아들 노아를 낳았다. 하지만 채영은 가끔, 자신이 정말 잘 적응하고 있는지 의심하곤 했다. 뭔가, 아주 중요한 것이 결핍되었다는 느낌을 끝내 지울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겉으론 모든 것이 충족되어 보이는 결혼생활에 실금이 가고 있다는 눈치를 챈 건 아들 노아가 세 살쯤 되었을 때였다. 매사에 꼼꼼하게 계획을 세우고 규칙적인 생활을 하는 채영에 비해 지섭의 생활은 점점 불규칙했고 가게도 종업원들에게만 맡기고 늦게 나가거나 아예 나가지 않다가 저녁 외출을 하는 때가 많아졌다. 그리고 별 일 아닌 것에 자주 신경질을 냈다. 채영은 비로소 그동안 지섭이 자신에게 맞추기 위해 꽤 노력하며 살았다는 걸 알아챘다.
골프와 포커와 파티로 이어지는 지섭의 생활을 채영은 경멸했다. 한마디로 부모 잘 만나 호강하면서 그걸 아끼거나 감사할 줄도 모르는 지섭에게서 채영은 점점 멀어졌고, 마음이 멀어지니 몸도 사리게 되어서 지섭이 침실 문을 부서져라 소리 나게 닫고 밖으로 나가는 날이 반복되었다. 그리고 마치 정해진 수순처럼 자주 만나는 여자가 있다는 걸 알게 되었을 때, 채영은 자신이 먼저 그를 거부했기 때문에 화도 내지 않았다.
이혼해요. 노아는 내가 데려가요. 아이에 대해선 두 말하지 말아요. 다른 건 나중에 변호사를 통해서 해결해요.
매사에 실수도 없고, 잘 참는 편이지만 한번 화가 나면 스스로 풀릴 때까지 어쩔 수가 없는 채영의 성격을 잘 아는 지섭은, 채영이 놀이방에서 놀고 있던 아이를 불러 옷을 입힌 후, 옷가방 하나만 달랑 끌고 집을 나가는 걸 말리지 못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일가친척도 없는 이곳에서 채영이 뭘 어쩌랴 싶은 마음도 있었다. 채영은 그 길로 가까운 모텔에 들었다가 이틀 후엔 낡고 작은 아파트를 빌렸다. 다행히 한국에서 올 때 가져온 돈과 평소에 넉넉했던 생활비 덕분에 저축해 놓은 돈이 꽤 있었다. 결국 채영과 지섭은 변호사를 통해 이혼 서류에 사인을 했고, 채영은 지섭의 위자료를 거부했다. 대신 아이가 스무 살이 될 때까지 양육비를 보내주기로 했다.
그리고 지금 채영은, 지섭의 장례식을 마치고, 지섭이 자신의 아내에게 주었던 아픔과 비슷한 상처를 지닌 여자를 돌봤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지섭이 해옥에게 남긴 것은 영주권과 슬픔이고, 채영에게 남긴 것은 민우와 숱한 회한이다.
채영에게 지섭에 대한 서운함이나 배신감 따위는 남아있지 않았다. 이미 그런 단어를 운운할 사이가 아니었다. 하지만 뭔가 서운함 비슷한 것은 남았다. 어쩌면 채영은 사실보다 훨씬 더 지섭을 잘 알고 있다고 착각하며 살았는지도 모른다. 그저 한 때 다정했던 타인이었을 뿐인데 노아의 존재에 의지해서 그 긴 세월동안 결국 그를 타인으로 생각하지 못한 건 채영이었다. 그래도 그가 좋은 일을 하고 갔다는 생각이 들 만큼 해옥은 착한 여자인 건 다행이다. 정확한 이유를 설명할 순 없지만 그게 가장 다행이란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녀는 지섭에 대한 고마움을 되풀이 해서 말했지만 채영은 그의 마지막 몇 년이 그리 외롭지는 않았을 것 같아서 오히려 그녀가 고마웠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