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_ 마타쿠에오야신 _ 1/4
미타쿠예오야신.
평원에 사는 어느 네이티브 부족의 인사말이다. '우리 모두는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뜻이라고 한다.
운전을 하는 동안 갑자기 이 단어가 떠오른 것은 틀어놓은 네이티브의 플릇 연주곡 때문이었을까? 아니 그보다는 뜨끈하게 끓인 밥이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던 것 같다. 이 말을 처음 안 건 류시화의 번역으로 엮인 '나는 왜 너가 아니고 나인가'라는 책에서였다. 수만 년 전부터 북미 대륙에서 살아온 아메리카 원주민들이 백인들에게 터전을 빼앗기고 고통받을 때, 여러 부족의 추장들이 남긴 연설을 모은 책이다.
그날 채영은 찬밥에 물을 넉넉하게 부어 스토브에 올려놓고, 밥이 끓는 동안 이 책을 읽고 있었다. 욕심만큼 진도가 나가지 않아서 조금씩 자주 읽으려고 아예 식탁 한쪽에 놓아두었던 책이다. 비통이 느껴지지만 절묘한 표현에 감탄할 수밖에 없었던, '내 눈물만 다 모아도 가뭄은 없다'라는 '추마쉬'족의 '후아니타 센테노'추장의 말에 막 연두색 밑줄을 긋고 있을 때였다.
밥물이 푸르르 끓어 넘치는 소리에 깜짝 놀라 반사적으로 벌떡 일어섰다. 찬밥을 끓일 때면 아무리 신경을 써도 잠깐 방심하는 사이에 밥물이 끓어 넘친다. 매번 반복하는 실수라서 밥물이 끓어 넘치는 것과 서둘러 스토브를 대충 닦는 일까지도 밥을 끓이는 과정의 일부란 생각을 한 적도 있다. 이상하게도 마음이 유난히 갈피를 못 잡거나 몸살 기운이 있으면 꼭 밥을 끓여 먹는 게 습관이 되었다. 아니, 그런 날이어서 밥을 끓였다기보다는 끓인 밥을 먹다 생각해 보면 마음이 허허로운 추위를 타고 있다는 걸 알아챈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이겠다.
단정하게 떠오르던 글귀가 함부로 흩어지더니, 까실하게 웃자란 풀들을 가둔 들판 한가운데, 글자들은 바람의 볼모처럼 앉아있다. 우리. 모.두는.서.로.연결.되.어.있다. 나는 이미 너무 멀리 온 걸까. 이젠 그 누구의 타전도 닿지 않는 곳에 와 있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정말 모두 서로 연결되어 있는 걸까? 채영은, 누군가의 물음에 대답이라도 하듯이, 아직은 그렇다고 믿는다,고 중얼거린다.
1
집 근처에 오자 맨 먼저 마가목이 보였다. 붉게 익어가는 열매 덕분에 사철 짙푸른 침엽수가 대부분인 풍경 속에서 유난히 돋보인다. 채영은 마가목을 다시 한번 쳐다보면서 차를 오른쪽으로 꺾었다. 주황색이던 마가목의 열매가 선명한 붉은색으로 변할 무렵의 귀갓길엔 늘, 마치 모르는 길에서 이정표를 만나 집을 찾아낸 기분이 들곤 했다.
집 앞 드라이브 웨이로 들어서자마자 마가목에서 떨어진 열매들이 차바퀴에 눌려 터지는 소리가 났다. 처음에는 마치 한 알 한 알 소심한 신음을 내는 것 같다가 갑자기 차르륵, 연음으로 합쳐지자 그게 무슨 소리인지 알면서도 마치 미처 보지 못한 유리조각들을 밟는 것처럼 저절로 미간이 움찔했다. 유난히 소리에 예민한 날이다.
이른 아침에 한번 쓸고 나갔는데도 어느새 또 집 앞 진입로가 어지러웠다. 그나마 알알이 떨어져 있을 때는 꽤 운치 있는 풍경을 만들고 쓸어내기도 편하지만 알갱이가 터진 후엔 바닥에 달라붙어서 잘 쓸어지지 않았고 비질 후에도 흔적은 남았다. 처음엔 일단 길가에 차를 대고 들어와 마당을 쓴 후에 차를 차고에 넣었는데 언제부턴가 성가시고 귀찮아서 그만두었다.
채영은 시동을 끈 후에도 차에서 내리지 않고 그대로 의자를 뒤로 젖히고 기대어 눈을 감았다. 토요일이라 늦잠도 좀 자고 느긋하게 장을 보고 오는 길인데도 유난히 피곤했다. 생각해 보니 지금까지 라떼를 한 잔 마신 게 전부였다. 이제는 정말 늙는지 환절기 때마다 입맛도 없고 피곤했다. 운전 내내 듣던 음악을 계속 듣고 싶었지만 라디오를 켜려고 손을 뻗는 일조차 귀찮아서 그만둔다. 그러면서도 문득, 오래전 노아가 했던 말이 떠오르자 채영의 한쪽 입 꼬리가 살짝 올라간다.
노아는 밖에서는 영어를 써도 집에서는 늘 한국말을 사용한 덕분에, 외국에서 태어난 아이치고는 한국어를 퍽 잘했다. 어느 날 누군가 채영에게, 얼굴이 까칠한 거 보니까 가을을 타는 모양이라고 하는 말은 듣고 나서 이렇게 물었었다.
엄마, 왜 가을을 탄다고 하지? 자동차도 아닌데?
이제 청년이 된 아이는 더는 이런 질문을 하지 않는다. 어쩌면 지금쯤 아이는 탈것이 아닌 것에 ‘탄다’라는 표현을 쓰는 것에 익숙해져 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도 채영이 눈치채지 못한, 아이 스스로 찾아낸 관계에 대한 서글픈 대답이 몇 개쯤 더 있을지도 모른다. 채영은 다정한 농담처럼 훌쩍 자라 버린 아이의 얼굴이 떠오르자 금세 기분이 좋아졌다. 하지만 늘 그렇듯 가슴 한쪽이 저릿한 것도 어쩔 수 없었다.
툭, 투둑,
기습적으로 차 지붕 위로 뭔가 떨어지는 소리에 채영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그리 큰 소리가 아니었는데도 어찌나 갑작스러운지 잠깐 정신이 아득할 정도였다. 그 소리가 마가목 열매가 떨어지는 소리라는 것을 금세 알아채고도 두근거리는 가슴은 쉽게 가라앉지 않았다. 차 지붕 위에 떨어진 붉은 열매들이 자신을 내려다보며, 집에 왔는데 왜 내리지 않느냐고 재촉하는 것 같아서 의자를 세우고 문을 연다. 트렁크에서 장 본 것들을 꺼내러 가는 동안에도 조심을 했지만 걸을 때마다 발밑에서 열매들이 터지는 소리가 났다.
막 이사를 왔을 때도 그리 작은 나무는 아니었지만 지난 몇 년 동안 어찌나 왕성하게 자랐는지 이젠 무성한 나뭇가지가 드라이브 웨이의 절반쯤을 그늘로 다 덮을 정도였다. 해거리를 하던 붉은 열매도 올해는 유난히 실하게 달렸다. 과일나무였으면 따서 먹기라도 하지…… 머루 알처럼 매달려 있는 작고 붉은 열매들이 속절없이 떨어지는 것 밖에 못하는 게 아까워서 나무를 올려다보며 채영은 자신도 모르게 혀를 찬다. 순간, 붉은 열매 한 알이 그녀의 뺨 위로 톡, 떨어진다. 마치,
그러는 네 삶은 어떠냐고 따져 묻듯이.
채영은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 몰래 숨어드는 사람처럼 서둘러 집안으로 들어왔다. 장 봐온 것을 정리하자 냉장고엔 식재료들이 가득했지만 뜨끈한 끓인밥을 한 그릇 먹고 싶었다. 하지만 밥을 끓는 동안 넘칠까봐 조심할 생각을 하니 그도 귀찮아서 물을 올리고 라면과 달걀 한 알을 꺼냈다. 요리는 잘하면서 왜 라면은 맛있게 못 끓이는지 참 이상하다며 놀리던 노아가 떠올랐다. 대학을 졸업하자마자 동부 쪽에 있는 회사에 취직이 된 아이는 곧 오타와로 떠날 것이다. 엄마를 혼자 두고 가는 게 걸려서 제 딴에는 꽤 고심을 하고 있다는 걸 알아챈 채영은 쓸데없는 고민하지 말고 그냥 가라고, 너 없으면 엄마도 무지 편할 거라고. 혼자 살 생각을 하면 벌써 설렌다는 반 농담으로 아이의 결정을 도왔지만 요즘 들어 아이와의 시간이 관련된 것이면 아주 사소한 것에서도 ‘잠깐 멈춤’이 되어서 미소 짓거나 괜히 혼자 뭉클해지기도 한다. 같은 나라 안이지만 동부와 서부는 거의 외국이나 마찬가지다. 시차도 3시간이고 자동차로 갈 수 없는 건 아니지만 워낙 오래 걸려서 비행기를 타야한다.
채영은 칼린 지브란의 글에 나오는 활과 화살을 떠올렸다. 지금까지가 활시위를 팽팽하게 당기며 정조준하는 시기였다면 드디어 활을 떠나보내야 하는 때가 온 것이다. 뒤돌아 볼 수도 돌아올 수도 없는 화살이 아무런 걱정 없이 앞으로 곧장 날아가도록 경쾌하고 날렵하게 손을 놓아야 한다. 이런 생각 때문인지 요즘엔 한국으로 돌아가는 걸 제법 현실적으로 생각할 때도 있다. 동생이 자꾸 보채는 이유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노아의 가장 큰 걱정이 혼자 살게 될 엄마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라면 봉지 뒷면에 적힌 레시피대로 끓이면 맛이 없을 수가 없다는데 한 번도 읽어본 적이 없고, 편하게 한 끼를 데우려고 먹는 게 라면인데 물을 계량해서 올리는 건 어쩐지 좀 지나친 것 같아서 눈대중으로 물의 양을 잡는데 항상 국물이 좀 싱거웠다. 그래선지 라면은 노아가 끓여주는 게 가장 맛있다. 달랑 두 식구인데도 두사람이 각자 좋아하는 면발의 익힘 정도가 확연하게 달라서 함께 라면을 먹을때도 지누는 늘 냄비를 두 개를 올렸다. 라면 두 개를 한 냄비에 끓이다가 내가 먹을 만큼의 면을 먼저 꺼내면 되지 않냐고 채영이 말하면, 지누는 짐짓 심각한 척 고개를 저으며, 미세한 차이지만 자기는 물을 조금 덜 넣고 끓이기 때문에 안된다고 했다. 그리고 라면은 각자 한 개씩 끓여야 맛있다는 말도 덧붙였다.
이번에도 물이 좀 많았다. 라면을 자주 먹지 않다보니 냄비를 정해놓지 않고 그때마다 손에 잡히는 대로 사용해서 그런 것 같다. 채영은 이제 노아도 떠날텐데 라면만 끓이는 전용 냄비를 정해야 겠다고 생각한다. 채영은 라면과 단무지를 쟁반에 받쳐들고 책상 앞으로 갔다. 라면을 한 젓가락 집에서 호호 불며 먹는다. 라면은 언제나 첫 한 젓가락이 가장 맛있다. 채영은 라면을 우물거리며 인터넷의 검색 창에 ‘마가목’ 이란 단어를 넣었다.
이사 오고 일주일쯤 지났을 때, 동네를 이곳저곳 산책하던 중에 우연히 같은 나무가 있는 집을 발견했었다. 마침 정원 일을 하던 집주인에게 물어서 마운틴 에쉬(mountian ash)라는 이름을 알았고 사전에서 한국어로 ‘마가목’이라 부른다는 것도 알아냈었다. 그때는 그저 이름이 마음에 든다는 생각만 했지 어떤 나무인지 자세히 알아보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런데 해를 거듭할수록 주변의 나무들 중에서 유난히 마음이 머물렀다. 튼실하고 변함없는 상록수보다는 단풍 들고 낙엽 져서 빈 가지로 겨울을 나는 나무를 좋아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쩌면 열매의 붉은 색깔 때문이었을 것이다. 좋아하는 색이 아닌데도 그 붉은 열매는 분명 초면이지만 어디선가 기분 좋은 인연으로 만난 적이 있는 사람 같은 느낌을 풍겼다. 그 선명한 붉은색에 끌려서 빨간색 스웨터까지 한 벌 샀다. 조금씩 다른 여러 종류의 빨간색 중에서 고른 러시안 레드의 터틀넥 스웨터였다. 옷을 입고 거울을 보니 얼굴에 붉은빛이 비치는 것 같았다. 빨간색 옷을 입은 건 처음이란 걸 깨닫는다. 무채색 계열이나 쿨톤의 옷을 좋아하는 편이라 평소 같았으면 입을 생각조차 안 할 색깔인데도 나도 모르게 거울 속의 나를 향해 미소 짓고 있었다.
다정한 타인 같다.
컴퓨터는 내가 타이핑한 ‘마가목’이란 단어 하나만으로도 아주 친절하고 의욕이 넘치는 세일즈맨처럼 자신이 알고 있는 정보들을 쏟아냈다. 마가목의 열매는 새들의 먹이나 되는 줄 알았는데 의외로 사람에게도 유용한 열매라고 한다. 기침이나 가래가 있고 목이 약한 사람은 마가목 열매로 담근 술을 날마다 소주잔으로 한 잔씩만 마셔도 치료 효과를 볼 수 있다는, 비교적 자세한 용법과 효과까지 적혀있는 글이 많았다.
사실 채영은 이런 종류의 민간요법에 별로 관심이 없는 편인데도 글을 마저 다 읽기도 전에, 내일은 마가목 열매를 모아서 술을 담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누가, 난데없이 무슨 담금주냐고 묻는다면 날마다 마당 가득 떨어졌다가 터지는 마가목 열매들이 아까워서라고 말했겠지만 이미 지난주에 통화할 때 들은 그의 목소리가 떠오른 후였다. 평소에도 목이 약했던 그는 감기에 걸려도 꼭 목부터 아팠고, 환절기 때마다 마른기침을 하곤 했다. 걱정하는 말 따위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은근하고 간접적인 방법으로, 이를테면 담금주나 잼을 만들거나 뜨개질로 목도리나 조끼 따위를 떠서 별것 아니라는 듯 건네면서 그를 걱정하는 마음을 전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라면은 맛이 없었다. 특히 국물은 이맛도 저 맛도 아니게 밍밍했고 마가목에 관한 글을 읽느라 면도 불었다. 꼬들한 면을 좋아하는 채영이 절대 먹지 않는 음식 중 하나가 불은 국수나 라면이다. 아무래도 뭔가 달콤한 것으로 마무리를 해야 할 것 같아서 낮에 사 온 피칸 파이를 한 쪽 꺼내고 커핏물을 올려놓은 후, 식탁에 놓아둔 셀폰을 들었다. 하영이 보낸 사진이 카톡으로 와 있었다. 좁은 들길을 따라 열병식을 하듯 양쪽으로 피어있는 코스모스가 끝이 안 보이게 펼쳐져 있었다. 언젠가 어릴 때 동생과 함께 자주 걸었던 고향 뚝방길에 피어있던 코스모스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하다가, 이곳에는 루드베키아는 흔한데 코스모스는 거의 못 본다고 했던 말을 기억하고 보낸 사진이 분명했다. 채영은 씩 웃으며 문자를 보냈다. 이젠 꽃으로도 꼬시니? 하영은 재작년부터 통화를 할 때마다 이젠 그만 한국에 돌아와서 함께 살자는 말을 빼놓지 않았다.
하영은 양수리 근처의 작은 마을의 보건소장이다. 그녀는 간호대학을 졸업하고 대학병원에서 오래 일했다. 그러던 중에 의사들이 오지의 진료를 꺼리는 것에 대한 해결책으로 대학병원에서 임상경험이 풍부한 간호사들 중에서 뽑힌 사람에게 시골의 보건소장으로 발령을 내주는 제도가 생겼다. 그렇게 보건소장이 된 하영은 아예 그곳에 정착했고, 말로는 비혼주의는 아니라고 하면서도 아직까지도 혼자 산다. 사소한 잡일부터 진료나 왕진까지 모두 혼자 해야 하는 자리지만 하영의 싹싹하고 온화한 성품에는 아주 잘 맞는 일이었고, 나름대로의 보람도 있다고 했다. 딸린 식구가 없으니 언니 한 명 나한테 얹혀 산다고 성가실 것 전혀 없다는 말을 자주 했다. 하지만 채영은 대답 대신, 이제와서 돌아가기엔 곡절 많은 세월이 너무 멀리 흘러갔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가끔은 단호하던 생각이 조금 술렁이기도 한다. 그렇다고 이제 노아가 독립을 하기 때문에 앞으로 외로울 것 같아서 동생과 함께 사는 것을 생각해 보는 건 절대 아니었다. 그녀는 혼자만의 시간을 누구보다도 좋아했고, 같은 도시긴 해도 거리가 좀 있어서 노아는 대학 4년 내내 기숙사에 있었으니 절반쯤은 혼자 산 것이나 마찬가지라서 혼자 지내는 생활에는 이미 익숙했다. 그건 그저 나이를 먹는 것과 비슷한 감정의 변화라고 채영은 생각했다. 혹시라도 더 나이가 들어서 정말 갈 수 없는 상황이 되었을 때, 속수무책으로 찾아드는 감정이 귀소본능 같은 것이면 어쩌나... 이 성글게 찾아들던 감정이 마치 장롱 뒤의 먼지처럼 몰래 쌓여서 손대지도 못할 그리움이 되면 어쩌나... 같은.
하지만 채영은 이내 깨닫는다. 아직 일어나지 않은 일을 예상하면서 현재를 결정하는 건 어리석은 일이고, 자칫 돌아가지도 못하면서 괜한 미련과 기대로 지금껏 지켜온 현재를 결핍으로 남게 할 수는 없다는 것을.
그건, 지금까지 살아낸 자신의 삶에 대한 예의가 아닌 것 같았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