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_ 인디언 써머(Indian Summer)
인디언 써머(Indian summer)는 북아메리카 대륙에서 발생하는 기상 현상 중 하나로 대개 9월 말부터 11월 중순 사이, 그러니까 늦가을에서 겨울로 넘어가기 직전의 일주일 정도, 점점 쌀쌀해지던 날씨가 갑자기 따뜻한 시기를 뜻하는 말이다. 가끔은 서리가 내린 후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날 때가 있다. 북미권에서는 200여 년 전부터 쓰던 표현으로 지역에 따라 시기가 조금씩 차이도 나고, 품고 있는 의미도 다양한데 그중 하나는, '절망 속에서 만나는 예상치 못한 희망적인 것'이란 뜻이다.
낯선 장소에 홀로 있을 때, 그곳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전혀 예측할 수 없다는 것만큼 두려운 일도 드물 것이다.
깨끗하게 물청소가 된 바닥과 테이블 끝에는 맑은 물이 가득 담긴 깊은 물탱크가 놓여있다. 분명히 시간에 맞춰서 왔는데 아무도 없다. 하지만 일을 하러 왔으니 뭔가를 해야 한다는 조바심에 시달렸지만 주변엔 손에 잡힐 만한 게 아무것도 없다. 아무래도 장소를 잘 못 찾아온 것 같아서 어디로 가서 물어봐야 할지 생각하며 망설이고 있었는데, 그때 갑자기 문이 활짝 열리고 덩치가 큰 남자가 이마에 머릿수건을 묶고, 정글 탐사를 갈 때나 필요할 것 같은 크고 긴 칼을 들고 나타났다. 나는 더욱 당황해서 이젠 정말 나가야겠다고 결심하는 순간, 갑자기 굉음을 내는 파워잭이 움직이더니 무시무시하게 큰 컨테이너를 들어 올렸다. 계속 위로 올라가던 컨테이너는 천정에 닿기 직전에 갑자기 방향을 바꾸더니 무엇인가를 쏟아냈다. 물고기다. 아니, 그냥 물고기라고 부르기엔 너무나 크고 두툼한, 연어다. 이렇게 큰 연어를 직접 본 적이 없으면서도 나는 그게 연어란 걸 금세 알아챈다. 너무 놀라 멍하게 서 있는 내 곁에는 조금 전까지 없었던 누군가 서 있다. 두려움 때문인지 고개도 잘 돌아가지 않아서 곁눈질로 살핀다. '아카네'다. 그녀는 초등학생만 한 체격인데 오랜 노동으로 다져진 다부진 근육 때문에 여자인지 남자인지 구분하기 힘들 정도다. 나는 얼굴 외에는 조금도 살이 드러나지 않게 하려고 꽁꽁 싸매고 있는데 그녀는 고무장갑은 꼈지만 얇은 셔츠의 소매를 걷어올려서 팔뚝이 거의 다 드러나 있다. 그녀의 팔 근육이 꿈틀거린다. 그녀는 사장보다도 더 회사를 아끼고 그야말로 충성하는 직원이다. 가족끼리의 가내수공업으로 시작한 공장이 이만큼 큰 회사가 되는데 혁혁한 공을 세운 사람이다. 그녀는 이 회사에 첫 번째로 입사한 사람이기도 해서 모두들 이름 대신 '넘버 원'이라고 불렀다. 사장은 일본의 자기 고향에서 지속적으로 사람들을 불러서 일을 시키고 영주권을 받게 해서 아직도 고향에선 귀빈 대접을 받는다고 했다. 아카네는 사장에게 보이는 충성도만큼, 아니 그보다 더 직원들에겐 지독하게 굴었다. 아, 그리고 아까 그 남자는 언제나 이름이 기억나지 않던 일본남자다. 정년퇴직할 나이가 지났는데도 본인이 원해서 여전히 일을 하고 있는데 겉으로는 건장해 보여도 요실금이 있어서 기저귀를 차고 있다고 큭큭거리던 써니의 말이 떠올랐다. 그런데 써니는 어디 있는 거지? 계속 이름이 기억나지 않는 그는 가장 가까이에 있는 연어 한 마리를 움켜쥐더니 마치 두부 한 모를 썰 듯 가볍게 싹둑 연어의 머리를 잘랐다. 순식간에 머리가 잘린 연어는 비명을 지르듯 울컥울컥 피를 쏟아낸다. 그리고 이젠 머리가 없어서 오히려 더 두툼해 보이는 연어를 넘겨받은 아카네는 잘 벼려진 날렵한 칼로 연어의 배를 한 칼에 가르고 내장과 알을 꺼낸 후 나를 향해 연어를 밀었다. 나는 그녀가 빼내서 소중히 다루는 두 개의 알을 보면서 실한 고등어 한 손 같다고 생각한다. 갑자기, 내 또래였던 한국에서 단골로 가던 생선가게의 주인여자가 떠오른다. 그녀가 잘 손질해 준 고등어 한 마리를 씻으면서 조금 남아있는 핏물에도 진저리를 쳤었다. 그녀에게 미안했고, 그 호들갑스러움 때문에 지금 벌을 받고 있는 것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순간, 알아들을 수 없는 아카네의 목소리가 카랑하게 울리며 내 잡념을 자른다. 어느새 테이블 위는 피로 덮였고 나는 언제부터인지도 모르게 손에 들려있는 숟가락으로 연어의 속 등뼈에 붙어있는 피막을 긁어낸 후, 물탱크 안으로 밀어 넣는다. 연어는 숨 쉴 틈도 없이 끊임없이 밀려온다. 조금만 천천히, 조금만 천천히, 말이 될 수 없는 간절함으로 나는 점점 숨 쉬기가 힘들지만 몸은 미친 듯이 아카네의 속도에 맞추며 피를 긁는다. 내가 물속에 넣은 연어를 씻어서 건져 올리던 누군가가 외쳤다. 40킬로는 넘겠다! 장갑 낀 내 손과 앞치마는 점점 더 피로 물들고, 장화의 밑바닥은 바닥에 고인 핏물로 끈적거린다. 나는 무서워서 한 번도 제대로 본 적이 없는 공포영화의 한 장면 속으로로 던져진 것인지도 모른단 생각을 한다. 시간이 지날수록 속도에 맞추지 못해 내 옆에는 연어가 산처럼 쌓이고 'Hurry up!'이라는 아카네의 갈라진 목소리가 반복적으로 들릴 때 벨이 울렸다. 마치 팽팽하던 끈이 끊어진 것처럼 벨 소리와 함께 모든 긴장이 허물어진다. 누군가 내 어깨를 치며 말했다. 커피 브레이크야. 화장실 가서 얼굴 닦아. 피 묻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나는 깜짝 놀란다. 누가 일부러 뿌려놓은 것처럼 얼굴에는 자잘한 핏방울이 가득하다. 나는 서둘러 휴지로 얼굴을 닦는다. 그런데 닦아지지 않는다. 이번엔 휴지에 물을 묻혀서 닦지만 오히려 점점 더 번지기만 해서 내 얼굴은 핏빛으로 뒤덮이고 나는 두려움에 소리를 지른다. 그런데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다. 이젠 피로 물든 얼굴보다 목소리가 나오지 않는 것이 더욱 공포스러워서 안간힘을 쓰며 계속 소리를 지르자 어느 순간 목이 터지듯 외마디 비명이 내 귀에도 들렸다. 깜짝 놀라 눈을 번쩍 떴다.
꿈이구나.
소파에 누워 티비를 보다가 깜빡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층고가 높은 거실 천장에 비스듬하게 난 창으로 푸른 하늘과 구름이 보였다. 꿈이었다는 것을 확인했을 때의 안도감은 이내 아직도 이런 꿈을 꾸고 있는 자신의 나약함에 대한 연민과 뒤섞인다. 다시는 반복되지 않을 일이란 걸 알면서도 기억은 일종의 트라우마로 남았다. 단지 더는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위로가 될 뿐, 몸과 정신에 남아있는 기억들은 쉽게 지워지지 않는다. 나는 나의 한계를 무시하고 무조건 견디라고 강요했다. 하지만 견뎌냈다고 해서 극복한 건 아니다. 그건 좀 더 시간이 필요한 일일 것이다.
여전히 켜져 있는 티비에서는 화장품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처음 화장을 시작하는 어린 여자들이 주로 쓰는 클렌징 로션 광고였다. 클로즈업된 모델의 얼굴이 유난히 싱그럽다. 나는 무심결에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다 벌떡 일어났다. 다리에 감겨있는 담요를 풀고 천천히 일어나 주방으로 가서 찻물을 올리고 우두커니 서 있는다. 초점이 없는 시야에 들어온 익숙한 사물들은 낯섦과 다르지 않다. 눈을 몇 번 깜빡거리면서 점점 커지는 전기주전자의 소음에 약간 불안해진다. 하지만 어느 순간 소리는 제풀에 가라앉으며 보글보글 물 끓는 소리를 바뀐다. 얕게 불안하던 마음이 금세 사라진다. 아마도 불안이라기보다는 아직 기억에 남아있는 습관적 반응일 것이다.
출근 준비를 하던 새벽 다섯 시엔, 자고 있는 식구들이 깰까 봐 소리를 내는 모든 것에 민감했다. 그중 가장 큰 소리를 내는 것이 전기 포트였지만, 그건 내가 슬리퍼를 신지 않고 맨발로 다니거나, 도시락을 싸는 손놀림을 조심하는 것처럼 어떻게 해 볼 수 있는 소리가 아니었다. 대책 없이 끝나기를 기다려야만 하는 소음, 그래서 막막한 현실을 불러다 괜한 감정이입을 시키는 그런 소리였다.
하지만 갑자기 주전자의 소음이 물 끓는 소리로 바뀌고 이어서 툭, 소리를 내며 전원이 자동으로 차단되면 반대로 내 하루의 전원 스위치가 켜진다고 느꼈다. 여전히 지겹고 힘든 똑같은 하루가 되겠지만 나는 잘 버텨낼 것이다. 그래야만 한다, 고 확인하지 못한 긍정과 희망을 끊임없이 자신에게 세뇌시켜야만 버틸 수 있는 시기였다.
어쩌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런 한 시절을 손금처럼 지니고 살아갈 것이다. 하지만 그 시절을 통과하는 동안엔 세상에서 오직 나만 힘들다고 느낀다. 사실 그 누구도 남의 아픔에 대해 제대로 알지는 못한다. 심지어 같은 상황에 속해 있다 해도 각자 느끼는 아픔이나 힘듦의 강도가 다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때론 명백한 이유의 신체적 고통마저 설명하기 힘든 외로움이 되기도 한다. 나도 그랬다.
아끼는 찻주전자를 꺼내려다 그만두고 늘 사용하는 큰 머그에 거름망을 걸고 '얼 그레이'를 한 스푼 넣고 물을 붓는다. 차를 우리기엔 약간 식은 물이 좋다지만 커피든 차든 팔팔 끓는 뜨거운 물로 내리는 건 오래된 습관이다. 잘 우려진 차에 메이플 시럽 조금, 냉장고에서 얇게 잘라둔 레몬 두 조각 꺼내서 넣고, 소파로 돌아가 담요를 둘러쓰고 앉아 뜨거운 차를 한 모금 마신다. 얼 그레이 향에 스민 달큰하고 상큼한 맛이 기분을 한결 맑게 한다.
찾는 프로도 없으면서 채널을 돌리다가 화면 가득 클로즈업된 한 남자의 얼굴에서 멈춘다. 특별히 잘 생겼다거나 눈에 띄는 치장을 한 것도 아닌, 오히려 평범한 얼굴이지만 나는 금세 알아본다. 그는 내가 오랫동안 보아 온 사람들과 비슷한 얼굴을 가졌다는 것을. 거칠고 깊은 주름과 투박한 말투에도 불구하고 그의 표정과 목소리는 환하다.
“나는 평생을 바다에서 보냈는데 이런 광경은 처음 봅니다. 강이 좁아서 뭍으로 튀어나올 것만 같은 사카이(sockeye salmon) 떼가 7마일이나 계속되고 있어요. 강에 물보다 연어가 더 많아 보인다면 더 말해 뭐 하겠습니까? 저 붉은 빛깔을 보세요. 정말 아름답지 않나요?”
그는 '스티브 요한슨'이란 어부였다. 자연 속에서 오래 일한 사람 특유의 두껍고 거친 피부지만, 기쁨으로 붉게 상기된 그의 얼굴은 어딘가 산란을 위해 거슬러 오는 연어의 색깔과 닮았다. 화면이 바뀌면서 얕은 강물을 치고 올라오는 연어 떼가 보인다.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감탄할 수밖에 없는 풍경이다. 내가 그동안 막연하게 상상했던 회귀하는 연어 떼의 모습이 얼마나 빈약한 것이었는지를 깨닫기까지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때 갑자기 몇 마리의 연어가 마치 물속에서 누가 밀쳐 내기라도 한 것처럼 위로 솟구치며 튀어 올랐다. 나도 모르게 저절로 탄성이 터졌다. 와우!
리포터는, 길이가 2,000km가 넘는 ‘프레져 리버'로 올라오는 사카이가 지금까지 30 밀리언 마리가 넘는 것으로 추정된다는 설명을 한다. '30 밀리언'이란 숫자를 한국식 단위로 바꾸려고 중얼거린다. 일십백천만...... 머릿속에 부실한 번역기를 넣어두고 수시로 영한 전환을 하던, 오랜 습관 탓이다.
백여 년 만의 기록적인 숫자라는 데, 일일이 셀 수도 없을 텐데 어떻게 저런 걸 구체적인 숫자로 추정할 수 있을까. 엉뚱하게도 이런 생각을 하는 동안에도 붉은 연어 떼는 화면을 가득 채웠다. 내가 리모컨 버튼을 하나만 눌러도 거실로 쏟아질 것처럼 몰려오고 있었다. 아무렴 어때. 그러니까 전문가겠지. 어쨌든 이렇게 엄청난 숫자를 추정해 낸 전문가들은 이 기록적인 풍어가 좋은 징조만은 아니라며, 아직 오지도 않은 걱정거리 또한 책상 위에 올려놓았지만 그러거나 말거나 다시 화면에 나타난 ‘스티브'는 여전히 행복하고 감격스러운 얼굴이다. 그의 표정을 보면서 나는 또 '삼십밀리언'이란 수치가 주는 기쁨을 내 식으로 다시 환산한다. 그건, 금세 표피가 벗겨질 얄팍한 희망이라 해도 때론 그 무엇보다도 적절한 위로가 되는 기쁨일 것이다. 스티브의 마지막 말이 가장 힘센 연어처럼 튀어 오른다.
"요즘엔 아침을 기다리느라고 잠을 이룰 수가 없을 정도예요!"
그의 말이 신호라도 되는 것처럼 나도 모르게 허리를 펴며 깊은숨을 들이마시지만 이내 풍선에서 바람이 빠져나가 듯 아랫배가 풀려서 다시 몸이 처진다. 허물어지듯 스르르 옆으로 기울어진 몸은 머리가 소파 쿠션에 닿자 이내 평온해진다. 아무래도 또 몸살에 올 것 같다. 해마다 연어가 돌아오는 계절이면 나는, 몸이 쑤셨다. 아마 어떤 통증은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몸속 어딘가에 질긴 뿌리처럼 남아있는 모양이다. 마치 잊을만하면 한 번씩 같은 자리로 올라오는 이마의 뾰루지처럼. 게다가 그 통증에는 타이머가 부착된 기억 장치가 있는 것처럼 늘 비슷한 시기에 작동했다. 이런 징후가 슬슬 시작되었다는 걸 느끼고, 터무니없는 이유로 애를 쓰는 악몽을 서너 번쯤 꾸고 나면 지독한 몸살에 잡히곤 했다.
티비속에선 아직도 선홍색 연어들이 푸드덕거리고 있다. 문득, 아직까지 한 번도 살아있는 연어를 본 적이 없다는 걸 깨닫는다. 그래서 연어라는 단어에 누구보다도 익숙하면서도 좀 전에 텔레비전에서 본 회귀하는 연어들이 그토록 경이롭고 낯설었던 것이다. 지금, 가장 치열한 생존본능인 종족보존을 위해 물살을 거슬러 돌아오는 연어를 보며 마치 연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했던 사람처럼 감탄하는 나는, 저렇게 올라오다 잡혀서 죽은 연어를 손질하는 일로 생계를 이었던 적이 있다.
삶은 늘 얄팍한 모순으로 가득 차 있다.
이민 후, 나의 첫 직장은 연어공장이었다. 아는 사람이라곤 한 명도 없는 낯선 나라에 고작 몇 달을 버틸 수 있을 만큼의 돈을 가지고 세 식구가 도착했을 때, 내 선택지는 그리 많지 않았다. 다른 평범한 이민자들처럼 여행이나 쇼핑을 하며 몇 달을 보내는 일은 꿈도 꾸지 않았지만, 충분히 영어공부도 하고 좋은 직장도 잡고 싶었다. 하지만 꼭 필요한 것도 몇 번을 망설이다 사는데도 통장의 숫자는 공포스럽게 줄어들고 있었다. 일방적으로 이민을 결정하고 막연하게 자신만만하던 남편도 뒤늦게 걱정을 했겠지만 속도와 무게는 나와 달랐다. 그래서 연어공장에서 구체적으로 내가 해야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이력서를 냈다. 단순 노동 치고는 보수가 높았고, 아무것도 모르고 공원의 오리 떼와 미끄럼틀이 좋아서 환하게 웃는 아이를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아서 견딜 수가 없었다.
경험이나 정보는커녕 한국에서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일이라선지 겨우 삼 년을 일 했을 뿐인데도 마치 평생을 그곳에서 보낸 사람처럼 그때의 시간들은 여태도 가끔 악몽으로 찾아온다. 그건 교두보나 완충제가 없는, 이전과 이후가 철저히 단절되는 그런 경험이었다. 아마도 정도나 종류의 차이는 있겠지만 대부분의 이민자들이 겪는 통과의례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캄캄한 터널 같은 그 시간을 견딜 수 있었던 것은 지금은 고통스럽지만 언젠가는 나아지고, 모든 것이 점점 좋아지리라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통은, 왜 하필 나한테?라는 반항심을 버리고 내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수긍할 때, 빛을 보여준다.
일터에서 만난 써니의 아들이 첫 학생이었다. 이렇게 한 명의 학생으로 시작한 미술 레슨이 생각보다 빠르게 입소문이 나고 소개로 이어져서 학생들이 늘어났고, 남편은 꽤 큰 미술학원을 차렸다. 그 덕에 나는 연어공장을 그만둘 수 있었다. 하지만 그 일을 그만둔 후에도 연어에 관련된 소식을 들을 때면 여전히 예전에 함께 일했던 사람들이 떠올라 무조건 그들이 잘 지냈으면 좋겠고, 우습게도 전혀 모르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일종의 동지애 비슷한 것을 느꼈다.
연어 공장을 그만두고 일 년쯤 쉬었다가 시작한 게 미술재료를 파는 작은 가게였다. 오래된 건물 안에 있는 여섯개의 작은 방에는 화가들이 각각 세 들어 있었고 나는 그들의 작업실 문이 모두 보이는 맞은편 공간에 가게를 차렸다. 하지만 생필품도 아니고 수요자가 정해진 업종인데다 물건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돈이 많이 드는 업종이라 썩 내키지 않았지만 남편과의 의견을 좁히지 못해 시작하게 되었다. 하지만 해를 거듭할수록 가겟세에 비해 수입은 시원찮아서 결단을 내려야 했다. 가게를 정리하고 물건들을 집으로 가져와서 베이스먼트에 진열대를 만들고 주문판매를 했다. 주로 아는 사람들만 상대로 하다 보니 매출은 많이 줄었지만 가겟세나 다른 유지비 지출이 없으니 수입은 크게 차이가 나지 않았고, 무엇보다도 몸과 마음이 편해졌다.
하지만 가을이면 늘 몸살에 잡혔다. 그래도 출퇴근이 정해진 게 아니라서 아프면 앓아누울 수 있다는 게 호사로 느껴졌다. 게다가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들도 늘 엄마가 집에 있으니 좋아했다. 삶의 굴곡이 늘 일정하지 않아 높을 때도 있고 낮을 때도 있다는 것과 밑바닥까지 박박 긁어서 온 힘을 다 쏟아야 살아지는 날들이 있고, 조금 여유를 부리고 느슨하게 살아도 괜찮은 시기가 있다는 게 얼마나 다행인가. 그래서 인생은 끝까지 살아봐야 안다고 했나 보다,
티비에서 사카이의 회귀 영상을 본 후부터 연어가 올라오는 큰 강이나 하다못해 강물과 닿아 있는 부화장이라도 가보고 싶은 마음이 숙제처럼 남아있었지만 쉽게 사라지지 않는 몸살 기운 때문에 끝내 사카이의 회귀를 보러 가지 못하고 계절이 바뀌었다. 이제는 연어 중에 가장 늦게 올라오는 '첨 Chum'의 계절이다. 작업하는 연어의 종류로 계절의 흐름을 알아채던 오랜 습관은 쉽게 잊히지 않았다.
앞마당 잔디밭 위로 쌓이는 햇살이 어찌나 예쁜지 그대로 집안에 있을 수가 없었다. 집 앞의 단풍나무는 티 하나 없이 맑은 붉은색으로 깊어지다가, 비 오는 날이 잦아지자 속절없이 떨어졌다. 그래도 오늘처럼 햇살이 좋은 날엔 낙엽조차도 잘 말린 꽃 같다. 곧 본격적인 우기가 시작될 테니 지금의 햇볕은 금싸라기 같은 볕이다.
동네 길이나 잠깐 걸을까 망설이다가 문득 아이가 한 말이 떠올랐다. 집 근처에 있는 숲으로 연어를 보러 필드 트립을 다녀왔다고 했다. 정말? 그 강으로 연어가 올라온다고? 아이는 학교에서 거의 한 달째 연어에 대해서 공부하는 중이었다. 다른 주제로도 그랬듯이 연어에 대한 공부가 끝나면 아마도 제 키만 한 크기로 그린 연어를 꼬리연처럼 흔들면서 집으로 올 것이다.
막 11월로 넘어간 숲은 조금 헐렁해 보였지만 남은 가을빛만으로도 여전히 충만하다. 집에서 채 한 블록도 되지 않는 곳에 이렇게 적당히 깊은 숲이 있다는 건 행운이다. 더구나 이 숲은 얕은 강을 품고 있다. 사실 강이라기보다는 좀 넓은 계곡 같아 보이기도 하지만 우기(雨期)인 겨울엔 강물 흐르는 소리에 귀가 먹먹할 때도 있다.
하지만 여러 해 동안 자주 산책을 하면서도 강 쪽으로 내려가 본 적은 없어서 연어가 올라온다는 걸 몰랐다. 나는 그저 늘 같은 길을 걷다가 터닝포인트로 정한 야생 사과나무 근처에 다다르면 십 분쯤 스트레칭을 하고, 뒤돌아서 집으로 돌아왔다. 사과 꽃이 피거나 초록빛이 많이 섞인 작은 사과가 달리는 계절이면 십 분쯤 더 머물며 꽃잎이나 사과를 몇 알 줍기도 했다. 그저 그뿐이었다. 소리와 냄새와 공기의 입자로 계절이 변하고 있음을 감지하며 홀로 행복한 적도 있지만 산책은 내게 일의 일부였다. 그리 건강체질이 아니라서 육체노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 정도의 운동은 챙겨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었다.
숲을 걸으면서 내가 자꾸 강 쪽을 흘금거리고 있다는 걸 알아챈다. 머릿속에선 계속 '연어'라는 단어가 맴돌았다. 이젠 습관적인 움직임이 아닌 해보지 않은 것을 시도해 볼 때도 되었다는, 어울리지 않게 비장한 마음이 생겼다. 내려가 보자. 길이라고 할 순 없지만 산짐승들이 지나다니는 통로로 보이는 곳을 따라 내려갔다. 꽤 가파르고 조금 미끄러워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다리에 힘을 주며 무릎을 굽히기도 하고 나뭇가지를 잡거나 바닥을 짚어야 했다. 미끄러지듯 도착한 강가에는 축축하게 젖어있긴 해도 의외로 두세 사람 정도가 나란히 걸을 만한 반반한 흙길이 있었다.
이 강은 '코퀴틀람 리버'의 일부다. 강물은 흘러서 광역 밴쿠버를 돌아 나가는 '프레져 리버'에 닿고, 프레져 리버는 또다시 유장하게 흘러서 바다에 닿는다. 이곳의 강이 대개 그러듯이 바다와의 경계가 애매하다. 강은 그리 넓거나 깊지 않지만 제법 경사가 심하고 바닥엔 크고 작은 돌멩이들이 가득 깔려 있다. 군데군데 물 위로 돌출된 작은 바위도 있어서 빠른 물살이 잠깐 멈췄다 돌아가기도 한다. 규모에 비해 꽤 거친 강이다.
우두커니 서서 주전자의 물이 끓기를 기다리는 시간, 우두커니 앉아서 햇볕이 쏟아지는 잔디밭을 내다보는 시간, 우두커니 서서 강물이 흘러가는 것을 바라보는 시간... 마치 아무런 할 일도, 생각도 없는 사람처럼 '우두커니' 무엇인가를 바라보고 있는 시간이 기실 얼마나 큰 평온인지를 자주 느끼는 요즘이다. 그렇게 우두커니 강물을 바라보고 있던 어느 순간, 물속에서 뭔가 움직이고 있다는 걸 알아챈다. 아주 크고 묵직한, 순식간에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드는 무엇인가가 거기 있었다. 운동화 끝이 살짝 젖는 것도 모른 채 반사적으로 강 쪽으로 더 바짝 다가가 쪼그리고 앉으면서 나는 이미 그게 무엇인지 알았다.
지금 이 강으로 연어가 올라오고 있다.
'첨chum'은 표피가 강바닥의 돌멩이들과 비슷한 색깔이어서 금세 눈에 띄지 않는다. 좀 전에 분명 움직임을 보았는데도 눈은 다시 그걸 놓친다. 하지만 햇살과 단풍에 노출되었던 시선을 강 밑바닥에 가라앉히고 조용히 기다리자 곧 흐르는 강물과는 다른 움직임을 분별할 수 있었다.
내 팔 길이만 한 큰 몸집의 연어들이 짝을 지어서 두 마리씩, 혹은 서너 마리가 함께 올라오고 있다. 반대로 흐르는 물살을 다스리려고 물밑으로 들어가 꼼짝 않고 있다가 갑자기 몸을 세우며 물보라를 일으키기도 하고, 꼬리를 세차게 흔들거나 서로 몸을 부딪치기도 한다.
이곳은 연어(첨)의 긴 여행에서 거의 마지막에 해당하는 곳이라서 두 달쯤 전에 텔레비전에서 보았던 사카이의 회귀 장면에 비하면 숫자로나 모양새로나 볼품은 없었지만 나는 오히려 더 가슴이 뭉클했다. 화려한 붉은색을 품고 올라오는 사카이가 그 색깔만으로도 멋진 풍경이라면, 같은 연어라 해도 '첨'의 회귀는 너무 눈에 띄지 않아 오히려 눈물겨웠다. 게다가 어떤 연어들은 이미 죽어서 살이 썩기 시작하기도 했고, 새들이 눈알을 파먹은 연어도 있었다. 삶의 순환에 대한 엄숙한, 그러면서도 한없이 외롭고 묵묵한 기류가 온 숲에 가득했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연어들은 이 강에서 태어난 후, 바다로 가서 살다가 다시 바다를 떠나 긴 강을 거슬러 오른 후, 이 동네까지 찾아온 것이다. 굳이 그 거리를 수치로 환산하거나. 민물과 바닷물을 오가며 어김없이 태어난 자리를 찾아오는, 밝혀내지 못한 그들의 생태를 짚지 않더라도, 그들의 여정이 얼마나 고되고 힘들었는지는 한눈에 알 수 있다. 연어들의 잿빛 몸통은 허옇게 긁힌 상처가 덧입혀져 있었고 어떤 상처들은 너무 심하게 너덜거려서 연어가 아직 살아있다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그 먼 길, 흐르는 강물을 따라 옮겨 다니기도 쉽지 않을 텐데, 물살을 거슬러 올라와 정확하게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산란을 하고 죽는 연어들. 도대체 어떤 기막힌 귀소본능이 상식을 초월한 긴 여정을 감내하도록 저들 삶의 시작과 끝을 같은 곳에 점찍어 두었을까? 연어가 어떤 것을 표식으로 삼아 자기가 태어난 곳으로 되돌아오는지는 아직까지 정확하게 밝혀내지 못했다고 한다. 단지 과학자들은, 연어가 어떤 특별한 후각을 지녀서 냄새를 따라오거나, 지구에서 발생하는 자력 같은 것이 내비게이션 역할을 하는 게 아닌가 추측할 뿐이다. 하지만 굳이 과학적인 증명이 필요할까. 그 모든 과정이 '산란'을 위한 것이라면.
연어의 움직임을 따라다니다 보니 수시로 감정이 변하고 있었다. 환호하고 감탄하다가도 갑자기 뭉클하고 안쓰럽다. 그러다 결국 모든 감정은 내 삶으로 치환된다. 나 또한 삶의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며 살고 있는 사람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연어들이라면, 지가 결정한 이민인데 고생도 감수해야지 뭐 그리 유난스럽게 감성적이냐고 핀잔을 주진 않을 것 같아서, 마치 내 속을 다 꿰고 있는 말 수 적은 친구를 새로 사귄 것처럼 위로가 되었다.
혹시 추울까 봐 입고 온 플리스 재킷 위로 쏟아지는 햇살로 등이 후끈하다. 갑자기 답답함을 느끼며 서둘러 재킷을 벗는다. 마치 내가 나프탈렌 냄새를 견디며 옷장 속에 갇혀 있다가 꺼내져서 거풍을 하고 있는 무겁고 긴 겨울 외투 같다. 바람결이 닿는 만큼 가벼워진다. 서늘하던 공기는 살갗에 닿자 이내 달콤하게 스민다. 이제 곧 겨울이라 생각했는데 온몸을 휘감는 따사로움이 더할 수 없이 안온하다.
아, 인디언 써머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