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뒤란의 담장 곁에 수형이 고운 '히비스커스' 한 그루가 있었다. 첫 꽃송이를 보며 스타카토 같은 탄성을 날릴 때 여름이 시작되었고, 마치 어릴 때 부르던 노래의 '피고 지고 또 피어 무궁화'라는 가사처럼 쉴 새 없이 꽃이 피더니, 낙화라기엔 너무나 말짱한 얼굴의 꽃송이들이 나무 아래 수북하게 쌓이는 동안,
여름이 다 갔다.
그리고 그 여름의 끝은, 늘 같은 길을 지나가면서도 어제까진 알아채지 못했던 가로수의 단풍이 뭉클하게 눈에 들어왔을 때 내게 가을을 일러주었다. 하지만 나는, 내가 어떤 계절을 살고 있는지 도무지 알아챌 수가 없었다. 한 봉지에 스무 개쯤 든 작은 '엠브로시아' 사과를 세 봉지째 먹으며, 출근길마다 헨델의 라르고를 반복해서 듣는 동안,
가을은 잘 보이지 않았다
익숙했던 감탄사를 아예 잊은 이유는 피곤해서라고 핑계를 대는 동안, 잰걸음으로 깊어지던 가을은 갑자기 몰아친 비바람에 일제히 낙엽이 되었다. 허망할 정도로 빠른 속도였다. 가을은, 비에 젖어 바닥에 쓰러져서도 뭉클한 계절답게 눈빛은 형형했고 나는 그 눈빛에 찔려서 눈시울이 붉어졌다. 그렇게 늘 편애하던 가을도 갔고,
기어이 '덜컥' 겨울이 왔다.
가을은 언제나 '뭉클'하게 오고, 겨울은 '털컥' 온다. 혹한 없이 그저 긴 우기 속에 있던 '빗물 동네'도 이젠 매년 꽤 춥고 몇 번쯤 눈도 내린다. 그 해 첫눈은 12월 5일에 왔다. 막 출근준비를 하던 참이었는데 한국에서 카톡이 왔다. 김장하는 사진과 함께 이제 편강만 만들면 월동준비는 끝이라는 문자에, 여긴 첫눈이 내리는데 나는 출근길 운전할 걱정이나 한다는 뚱한 답장을 보내고도 기어이 그 시구를 떠올리며 - 외로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사라져 해마다 첫눈으로 내리고 - 시집 갈피에 두고 온 잊었던 나를 더듬는다.
드디어, 약속을 잘 지키는 봄이 돌아왔다.
아직은 좀 추울 거라 생각하면서도 문밖에서 기다리는 햇살이 너무 예뻐서 추위가 박제된 긴 패딩을 입고 나갈 순 없었다. 꽤 낡았지만 정이 들어 계속 입게 되는 도톰한 인디언 핑크 스웨터에 따뜻한 조끼를 입고, 오랜만에 아침 산책을 간다. 조끼 아래로 드러난 양 팔이 서늘하다. 느슨해진 스웨터의 결 따라 찬 공기가 스며들어 패딩을 입고 오지 않은 걸 잠시 후회했지만, 그 차가움도 살갗에 오래 닿아 익숙해지니 서서히 무뎌지더라. 아픔도 이런 것이겠지.
어디선가 나타난 히아신스 향이 바람결처럼 나를 통과할 때 얼핏, 긴 '피어'를 건너 바다 위로 휙, 빠져나가는 겨울의 뒷모습을 보았다. 우두커니 서서 배웅한다. 이젠, 그리움의 표정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하지만 늘 거기 어딘가에 있으리라. 마치, 보이지 않아도 향기로 알아채는 봄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