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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정정심 Nov 18. 2022

어머니의 마음을 간직한 역

『고모역』

          고모역을 지나칠 양이면

          어머니가 기다리신다.

          대문 밖에 나오셔 기다리신다.

          이제는 아내보다도 별로 안 늙으신

          그제 그 모습으로

          38선 넘던 그 날 바래주시듯

          행길까지 나오셔 기다리신다.

          천방지축 하루해를 보내고

          책가방에 빈 도시락을 쩔렁대며

          통학차로 돌아오던 어릴 때처럼

          이제는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만큼이나

          머리가 희어진 나를

          역까지 나오셔 기다리신다.     

                                                       구상의 「고모역」 중에서    

      

누군가의 어머니가 자식을 기다리던 고모역

  고모역은 고갯마루 어디쯤엔가 꼭꼭 숨어 있으리라 생각했다. 노모가 나를 기다리고 통학 열차가 오가던 기차역, 이제 더는 기차가 서지 않는 현재의 고모역은 자동차가 질주하는 대로변에 자리 잡고 있었다. 화재로 다시 지어졌다는 고모역은 벽돌집이다. 지난날 빨간 벽돌로 지어진 친구 집 앞에서 부러워했던 기억이 있는데 기차역의 벽돌 외관은 여전히 낯설다.


  옛 가요 ‘비 내리는 고모령’으로 잘 알려진 ‘고모’다.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초입에 홀로 서 있는 안내문이 보인다. 가던 길 멈추고 읽기에는 다소 길게 느껴진다. 초등학교 1학년 때 몇 쪽부터 몇 쪽까지 10번 써오라고 하던 무시무시한 국어 숙제가 생각난다. 내용이 궁금해지기보다 여기를 방문하여 이 글을 끝까지 읽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를 생각한다. 나 역시 읽을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 고모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듯하여 지루함을 뒤로한 채 훑어나간다.


  첫 번째 이야기는 인근에 있는 형제봉에 얽힌 전설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지장골과 뱀골의 유래다. 마지막에 가서야 고모령에 얽힌 전설이 펼쳐진다. 고모(顧母), ‘돌아볼’ 고(顧) 자에 ‘어미’ 모(母). 이 한자어와 관련된 두 개의 이야기가 있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에 연루된 두 아들이 대구의 형무소에 갇히게 되자 어머니는 면회를 하고 해 질 무렵 돌아오곤 했다. 돌아오면서 형무소 쪽을 자꾸만 돌아보다가 고갯마루를 넘으면 이제는 아들이 있는 곳이 보이지 않을 것 같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또 다른 이야기로는 어느 날 가난한 집에 스님이 찾아와 덕을 쌓으려면 흙을 쌓아 산을 만들라고 일러주었다. 형과 동생이 산을 쌓는 과정에서 지나친 경쟁이 붙어 서로 시샘을 하고 싸움까지 하자 이를 지켜보던 어머니가 너무 화가 나 집을 나와버렸다고 한다. 어머니가 자식을 잊지 못해 산등성이에서 돌아보았다고 하여 고모가 되었다고 한다. 구상의 시에서도 고모령에 얽힌 두 전설에서도 자식을 향한 어머니의 마음을 간직한 곳이 ‘고모’라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안으로 들어서니 고모역이 버텨낸 세월의 흔적을 느낄 수 있도록 고모역 예전 사진과 간단한 연혁, 신문 기사 등이 전시되어 있다. 옛 가요 ‘비 내리는 고모령’ 탓인 지 오래된 음반 재킷과 축음기 몇 개도 눈에 띈다. 아이들이 알록달록 색칠한 고모역의 모습도 벽면에 걸려있다.


고모역의 오래된 의자

  현재의 고모역은 복합문화공간이라는 이름으로 대중에게 공개되고 있었다. 역 주변을 찬찬히 둘러보며 문화공간이라고 하기에는 뭔가 부족하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 이런 내 마음에 동조라도 하듯 고모역을 지키고 있던 직원이 이야기한다.

  “역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유명한 커피숍이 있어요. 고모역을 찾아오는 사람보다 커피숍에 왔다가 시간 되면 고모역에 오는 사람이 더 많아요.”


  안타까운 마음을 담아 이야기하는 직원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많은 종류의 반찬은 아니지만 밥상 앞에 앉으면 손뼉을 치며 감탄하게 될 때가 있다. 뚝배기에서 끓고 있는 진한 청국장에 묵은 김치, 무와 배추를 잔뜩 넣고 가마솥에 푹 끓인 장터국밥에 깍두기 한 종지, 늦은 밤 라면에 신김치, 거기에 찬밥 한 공기를 마주할 때가 그렇다. 몸과 마음의 포만감과 행복감을 느끼게 되는 순간일지도 모른다. 고모역 복합문화공간에서도 이런 기분을 맛볼 수는 없는 걸까. 조금은 아쉬운듯한 이곳에서 나는 ‘어떻게…….’를 고민한다. 늘 문제가 되는 건 ‘방법’이 아니던가. 많은 이들이 함께 고민한다면 뭔가 해결책이 있으리라는 뻔한 생각을 한다.


  먼 곳에서도 일부러 찾는다는 카페는 어떤 모습일까. 나 역시 그곳을 향한다. 카페 앞 주차장에 승용차가 즐비하다. 방문객이 나밖에 없던 고모역과는 정반대의 모습이다. 카페 뒤편에 놓인 야외 탁자에 앉아 아이스크림 커피를 맛본다.


  커피를 입 안에 머금고 있는데 눈앞에 KTX 열차가 쏜살같이 달려온다.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던 다른 이들의 시선도 모두 기차로 향한다. 자연 속으로 멋지게 달려가는 KTX의 모습이 황홀하다. 운동으로 단련된 테니스 선수들의 단단한 육체와 공을 따라가는 노련한 움직임이 떠오른다. 커피맛도 커피맛이지만 사람들은 열차를 볼 수 있는 이곳의 경치에 비싼 커피값을 지불하는 게 아닐까.


  일상을 박차고 나와 우연히 보게 되는 수려한 열차의 모습은 늘 감동이요, 충만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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