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정정심 Nov 18. 2022

KTX를 만날 수 있는 무인역

『금강역』

  30대 때는 마흔을 넘어서면 여유롭고 한가한 시간이 많으리라 생각했다. 40대 때는 50이 되면 그때야말로 물리적 시간뿐 아니라 시간에 휘둘리지 않는 여유까지 넘쳐날 거라고 굳게 믿었다. 살아보니 나이의 능선을 따라 아무리 많이 걸어도 여유라는 이름의 휴게소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이제는 ‘퇴직한 후 60이 되면’을 입에 달고 산다. 이렇듯 시간에 불평불만이 많은 나에게 정민 교수가 책 속에서 일침을 가한다. 

    

  늘 여유와 한가를 꿈꾸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옛사람은 젊었을 적 한가로움이라야 한    가로움이다.”라고 말했다사실 다 늙어 한가로운 것이야 할 일이 없는 것이지 한가로움이    라 말할 것이 못된다숨가쁜 일상 속에서 짬내서 누리는 한가로움일부러 애써서 찾아내    는 한가로움이라야 그 맛이 달고 고맙다.     


미쳐야 미친다정민 지음푸른역사, 2004, p263.     


  달고 고마운 한가로움을 위해 전력 질주하던 일과에 브레이크를 밟으며 나는 오늘도 간이역을 찾아 떠난다.

 금강역에는 열차가 정차하지 않는다. 눈앞에 펼쳐진 웅장하고 깨끗한 현대식 건물이 금강역이라고는 믿기지 않는다. 역사(驛舍) 안으로 발걸음을 옮기는데 입구에 붙은 코레일 안내문이 보인다. “금강역은 일반교통의 발달과 승용차의 증가 등으로 철도 이용객이 급속이 감속하여 2013년 9월 5일부터 무인역화(역운영중지)함을 알려드립니다.”

사람들을 위해 화장실을 개방하고 있는 금강역 

  동촌과 반야월역을 통합하여 신설된 역이 바로 금강역이다. 대구선 이설로 2005년에 신설되었는데 10년도 못 버티고 간이역이 된 것이다. 우리 사회가 급속도로 변화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8년 만에 문 닫을 역을 이렇게 넓은 부지에 공들여 지어놓았다는 게 못내 아쉽다.


  내부 벽면에 연꽃 사진 몇 점이 걸려있다. 캐릭터 인형과 장난감 자동차도 보인다. 역사 안을 텅 빈 채로 놔두기에는 아쉬움이 있었나보다. 이런 노력에도 콘크리트 건물의 넓은 공간이 휑하기는 마찬가지다. 아직도 새것 같은 건물에 화장실을 알리는 표지가 도드라져 보인다. 마치 금강역의 소임이 화장실 개방인 것처럼 느껴진다.


  밖으로 나오니 아이들 몇 명이 신나게 뛰어놀고 있다. 엄마들은 야외 테이블에 앉아 커피를 앞에 두고 담소를 나누는 중이다. 역사 바로 앞에 열차 카페가 자리 잡고 있어 볼 수 있는 광경이다. 여객열차가 머물지않는 간이역은 안전 문제상 문을 닫아놓는 게 보편적이다. 이곳처럼 개방해 놓았다는 건 어떠한 이유에서건 찾는 사람들이 그만큼 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아이들의 밝은 웃음소리를 들으며 천천히 주변을 걷는데 금융 자동화코너처럼 보이는 곳이 있다. 공중전화 부스를 서너 개 합친 면적이다. 자세히 보니 ‘금강역 스마트 도서관’이라고 안내가 되어있다. 스마트 도서관? 도서관이면 도서관이지 스마트 도서관은 또 뭐지? 호기심에 문을 여니 그야말로 신세계가 펼쳐진다. 도서 대출 자판기가 나를 열렬히 환영하고 있지 않은가. 커피 자판기처럼 책도 기계에서 꺼내어 빌려볼 수 있는 시대가 되었나보다.

금강역 열차카페

  휴대전화기를 꺼내 검색을 시작한다. 작년에 우리 지역에 있는 도립도서관에도 설치가 됐단다. 내가 주로 가는 곳은 시에서 운영하는 아담한 도서관이라 신문물을 접할 기회가 아직 없었나보다. 기계 앞에 서서 요모조모 살피다가 전국의 스마트 도서관에서 나의 첫 책이자 졸작인 『괜찮아 잘했어! 기차여행』을 만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욕심을 부려본다.


  금강역 바로 옆은 반야월 연꽃단지다. 연꽃 피는 시기가 아니라 너무 아쉽다. 만개한 연꽃의 미소를 온몸으로 느끼며 13km의 산책로를 따라 걷는 즐거움을 다음으로 미룰 수밖에 없다. 이제야 건물 안에 연꽃 사진이 걸려있던 이유를 알 것 같다. 어떤 특정한 시기에 맞춰 여행하기가 늘 어렵다. 연꽃이 피는 시기, 산수유가 만개하는 시기처럼 아름다운 자연이 펼쳐질 때마다 여행을 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늘 아쉬움이 남지만 여행을 하지 않는 것보다 여행하는 쪽이 훨씬 남는 장사라는 걸 알기에 약간의 부족함과 미련은 다음 여행을 위해 남겨둔다.


  섭섭해하는 내 마음을 아는지 KTX가 쏜살같이 달리며 파이팅을 외친다.

이전 11화 도서관으로 남은 기차역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