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계역』
나는 첫 만남에서 상대방이 지닌 얼굴표정으로 사람을 판단하는 경향이 있다. 살아온 세월이 그 사람의 인격과 어우러져 표정으로 전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물론 오랜 만남을 이어가다 보면 첫인상에 대한 평가가 달라질 경우도 종종 있지만 표정이 온화하고 밝았던 사람이 나쁜 사람으로 기억되는 때는 거의 없었던 것 같다. 마찬가지로 기차역에 대한 첫인상은 역으로 사용되는 건물 자체가 주는 느낌에 많은 영향을 받는다. 오랜 세월 같은 자리를 지켜온 역인지, 역의 모습이 옛 형태를 어느 정도는 유지하고 있는지, 최근에 지어진 건물인지 등에 따라 나름의 점수를 매기곤 한다.
각계역의 첫인상은 그야말로 “어, 이게 뭐야?”였다. 역이 아니라 지금은 사용하지 않는, 오래된 창고를 떠올리게 했다. 직사각형의 긴 모양도 그러하려니와 페인트칠이 다 벗겨진 벽면도 마치 범죄영화에 나올법한 험상궂은 모습이다. 굳게 닫힌 창문과 녹슨 지붕도 스산함을 고조시킨다. 그것도 모자라 역으로는 아예 들어갈 수조차 없다. 폐역이라면 또 모를까, 도저히 열차가 서는 역이라고는 할 수 없는 형상이다. 다행히도 번호키로 꼭꼭 잠겨있는 출입문 앞의 안내문이 내 마음속에서 일고 있는 의문에 해답을 준다.
본 역은 일일 상행 1개 열차(07:14)만 정차하는 무인역입니다. 상행열차 이용고객께서는 지하차도를 이용하여 반대편 승강장으로 가시기 바랍니다.
열차를 타는 곳이 역사(驛舍) 반대편이라 역 쪽 승강장은 막아두었던 것이다. 열차 이용객은 역 안으로 들어갈 필요가 없고, 맞은편 승강장에서 바로 열차를 타면 되는 구조였다. 역은 이미 활용 가치가 없어졌으니 모양새가 그럴 수밖에……. 서둘러 반대편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열차 타러 가는 길에 전기위험 경고표지, 열차이용 안내표지, 무인역 안내표지 등 총 5개의 안내문이 나란히 붙어있다. 일렬로 줄지어 붙어있는 안내문은 그만큼 위험하다는 경고와도 같은 것이다. 열차에서 내려 반대편 쪽으로 건너올 수 없도록 펜스까지 설치해놨다. 여객열차가 서는 곳에서 선로와 선로 사이를 이렇게 막아놓은 광경은 처음 본다. 열차에서 내려 반대편 쪽으로 무단통행할 우려가 그만큼 크다는 이야기다.
각계역은 무인역이라는 점을 고려하더라도 열차를 타고내리기에는 너무 위험한 곳이다. 그것도 열차가 많은 경부선 구간이다. 안전을 최우선으로 생각하는 코레일에서 이렇게 위험한 승강장에 여객열차를 정차시킨다는 사실이 이해되지 않는다. 보통 안전상 무리가 없는 무인역이라고 하면 상, 하행 두 대의 열차가 짝을 이루어 정차하는데 이곳은 딱 한 대의 열차만 서는 것도 직원인 나로서는 이해하기 어려웠다.
궁금함은 일단 접어두고 동네를 한 바퀴 둘러본다. 제법 큰 규모의 마을에 사이좋게 어우러진 집들이 안정감과 넉넉함을 준다. 길가에 있는 대추나무가 활짝 웃으며 마을을 지키고, 가을하늘은 붙잡아두고 싶을 만큼 눈부시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역시 길에서 사람을 만나기 힘들다는 게 유일한 아쉬움이다. 1971년생인 나는 ‘둘만 낳아 잘 기르자’를 외치던 정부의 지침을 잘 따르던, 당시 부녀회장이었던 엄마의 뜻에 따라 동생이 딱 한 명뿐이다. 정부를 탓해야 할지 엄마를 탓해야 할지는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나는 자라는 동안, 형제 많은 집을 늘 부러워했다. 역 앞 텅 빈 마을을 볼 때도 식구가 적어서 느끼는 헛헛함을 그대로 느끼곤 한다. 명절 때가 되면 거리를 오가는 사람들로 북적이려나……. 엄지손가락만 한 대추알을 보며 혼자서 생각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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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으로 돌아와 각계역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줄 만한 곳으로 문의를 했다. 오전 7시 14분 열차를 이용하는 고객이 1~2명쯤 꼭 있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상대방은 위험 요소가 많아 열차를 그냥 통과시키려고 했으나 끈질긴 민원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고 덧붙였다. 설명을 듣고 난 후에야 각계역의 전후 사정이 이해됐다. 민원인은 아마도 아침 7시 14분 열차가 꼭 필요한 모양이다. 상행열차 한 대만 서는 것도 그 민원인의 요구에 의한 것이리라.
예전에 영동선 양원역에도 유치원생 꼬마 한 명을 위해 열차를 세웠던 유명한 일화가 있다. 다른 교통편이 없는 산골 오지 양원에서 유치원이 있는 춘양으로 매일 혼자서 다녔던 꼬마가 있었다. 양원역과 춘양역을 오가는 꼬마를 위해 역무원과 열차 승무원들이 열차를 잘 탈 수 있도록 도와주어 무사히 유치원을 졸업할 수 있었다고 한다. 양원역의 경우와 각계역의 경우는 다르다고 여겨진다. 아침 7시 14분 차라면 출근 시간대다. 그럴 리는 없겠지만 혹시 기차를 개인 자가용으로 이용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생각이 자꾸 나쁜 쪽으로만 흘러가려 한다.
민원을 넣는 한두 사람 때문에 큰 사고가 일어날 위험을 감수하고까지 열차를 정차시키고 있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디든 악성 민원이 무서워 제대로 된 일 처리가 안 되는 것은 마찬가지인가보다. 역에서 자체적으로 풀어나가기 어려운 문제는 상부 기관에서 원활하게 해결해주면 좋으련만……. 악성 민원을 견디다 못해 교사들이 삶을 등지는 세상이다. 내가 근무하는 곳에 골치 아픈 민원이 없는 것만을 다행스럽게 여기고 있는 나 자신을 본다. 이런 내 모습에 아직은 남아있는 부끄러움. 그 부끄러움마저 느끼지 못하는 날이 오지 않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