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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nap Apr 13. 2018

류블랴나 : 반짝이는 블레드 호수

여행을 다녀오고 나면 한 번씩 생각나는 곳들이 있다. 그중에서도 특히 좋았던 곳은 가슴 깊이 그립기도 하다. 블레드 호수가 나에게 그런 곳이다. 류블랴나에서 차로 1시간 정도만 가면 도착하는 이 호수를 처음 마주했을 때의 모습은 지금까지 생생하다. 온몸에 전율이 흐르는 듯한 짜릿함. 생각 없이 걸어가는 길에서 평소 팬이었던 연예인이 지나갔을 때의 기분이랄까. 물론 나는 연예인에는 관심이 없지만, 사진으로 담고 싶은 풍경을 만나면 연예인 만난 듯한 표정으로 달려간다. 


눈 앞에 펼쳐진 에메랄드 빛으로 반짝이는 투명한 호수


이런 오글거리는 표현들이 정말 어울리는 곳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하지만 실제 모습에 비하면 이 표현은 꽤 담백했다고 말하고 싶다. 호숫가를 거닐면서 이건 말도 안 된다는 말을 연발했다. 나는 카메라에 이 모습을 열심히 담다가, 나의 눈에도 이 모습 담기를 반복했다. 호수 주변으로는 둘레를 따라 산책할 수 있는 산책로가 있는데, 이 길을 따라 걷는 것은 일상에 지친 나 같은 사람들을 힐링시켜주기에는 더할 나위 없이 좋았다.



블레드 호수 가운데는 섬이 있다. 많은 이들은 이 섬에 있는 성 같은 건물을 블레드 성으로 착각한다. 나도 처음에는 이 곳이 블레드 성인 줄 알았다. 그래서 보트를 하나 빌려서 섬에 들어갔는데, 도착해서 보니 이 곳은 성이 아닌 성당이었다. 허전한 마음으로 성당의 담벼락에 올라서서 주변을 천천히 둘러보니, 그제야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는 블레드 성이 보였다. 저곳에 올라가 보고 싶었으나, 오후에 또 다른 일정이 있었기 때문에 다음을 기약하면서 아쉬움을 남긴 채 포기를 해야 했다. 이렇게 아쉬움을 남기게 된 곳이 슬로베니아를 여행하면서 두 군데가 있는데, 류블랴나 성과 블레드 성이다. 이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서 다시 한번 가야 할 것 같다. 



얼마 전에 신세경과 김래원 주연 드라마 '흑기사'에서 슬로베니아의 모습이 나왔다. 몇 년 전에 다녀온 이 여행지가 다시 마음 한 구석에서 기억나기 시작했다. 무엇인가를 추억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이 한편으로는 가슴 한 구석이 먹먹해지는 그리움과, 그 순간의 행복했던 감정이 동시에 밀려와 묘한 기분을 만들었다. 마치 몇 번이나 반복해서 봤던 내가 정말 좋아하는 영화 '비포 선라이즈'를 보고 나면 느끼는 기분처럼 말이다. 


제시와 셀린 둘이 시작부터 끝까지 서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이 영화를 누군가는 지루해하기도 하지만, 시간에 따라 바뀌는 주변 배경이나 영화 전체의 색감과 느낌이 너무 예쁘다. 그래서 영화를 보고 있으면, 마치 내가 여행하고 있는 것 같다. 하지만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은 관객이 엔딩을 생각하게 만드는 진한 여운인데, 영화의 엔딩 크레딧이 올라올 때면 해외여행이 끝나는 마지막 밤의 기분과 비슷하다. 그래서 난 몇 번이나 반복해서 보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나는 슬로베니아를 처음 여행했을 때처럼, 올해도 여름휴가를 크로아티아로 떠나게 되었다. 그때도 갑작스럽게 슬로베니아의 모습에 반해 여행하게 되었는데, 아쉬움이 남아 있는 류블랴나를 나는 다시 여행하게 될까. 아니면 다시 한번 더 다음을 기약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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