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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ySnap Apr 20. 2018

플리트비체 국립공원 : 요정의 호수

몇 년 전에 ‘꽃보다 누나’라는 예능프로그램을 한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배경이 된 나라가 크로아티아였는데, 방송에 나오기 전에 이미 다녀온 나는 이 프로그램을 보면서 다시 한번 그때의 기억이 떠올라 감회가 새로웠었던 적이 있었다. 아마 대부분의 사람들이 이때 크로아티아라는 나라에 대해서 많이 알게 되었을 것 같다. 물론, 여행으로서 말이다. 나도 처음에 발칸 반도에 자리 잡은 크로아티아라는 나라는 축구와 격투기 선수 크로캅 때문에 자연이 아름다울 것이라는 생각을 전혀 못했었다. 하지만, 여름 휴가지를 물색하던 중 발견한 플리트비체 국립공원을 보고 난 후, 다른 곳은 눈에 들어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난 크로아티아로 여름휴가를 떠나게 되었다. 


요정이 사는 호수, 플리트비체



얼마나 아름답기에 이렇게 판타지 한 표현을 쓰나 싶었다. 동화 속에서나 만날 수 있었던 '요정'이란 단어로 화려하게 표현을 해놨기에 더욱 호기심이 생겼다. 그래서 기대와 의심을 반씩 나눠 가진 채로 플리트비체에 입장한 나는 이 곳을 가장 잘 느낄 수 있는 제일 긴 코스를 선택하고, 첫눈에 반한 이 곳의 모든 것을 눈으로 보고 느끼고 싶었다. 코스 초입부터 나타나는 경치들은 마음 한 구석에 자리 잡은 ‘설마’라는 의심이 얼마나 쓸데없는 것이었는지 반성하게 만들었다. ‘요정의 호수’라는 표현은 결코 과장된 표현이 아니었다. 정말 요정을 마주할 것 같은 이 곳은 그야말로 지상낙원이었다. 여러 나라를 여행하면서 이 곳만큼 예쁜 곳을 아직 만나지 못했다. 그래서 이 모습이 그리워서 올해 다시 한번 크로아티아로 가는 비행기표를 예매해버렸다.



플리트비체에는 자연적으로 만들어진 수백 개의 폭포들이 있다. 그 덕분에 숲 속을 걸을 때마다 들려오는 폭포 소리가 가슴 깊숙이 파고 들어와 시원 해지는 기분이 들게 했다. 특히, 걷다가 숨이 차오를 때 폐까지 파고드는 맑은 공기는 시원한 사이다를 마시는 듯한 청량감도 전해주었다. 걷는 즐거움이라 해야 할까. 여행을 하면서 트래킹 하고 싶다는 생각을 들게 만든 것이 바로 이 곳 때문이었다. (훗날 스위스에서 트래킹만 5일을 한다.) 항상 난 여행은 바쁜 일정 속에서 많은 것을 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른 아침부터 밤늦게까지 모든 체력을 소모하고, 숙소에서 잠만 자고 나오는 것이 최고의 여행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래서 가끔 여행이 일정에 따라 움직이는 회사 업무 같기도 했었다. 이런 나의 여행 방식에 대한 틀을 깨준 곳이 바로 이 곳, 플리트비체였다. 숲 속에서 폭포 소리와 시원한 바람과 함께 천천히 걸으니, 서두를 필요 없는 여유로움 속에서 오는 즐거움도 여행의 한 방식이라고 깨닫게 했다.



자연 속에서 하루 보내며 유유자적 걷는 것이 얼마나 행복하고 자신만의 생각과 시간을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순간인지 아직 경험하지 못한 이들에게 한 번은 추천해주고 싶다. 걷다가 마주친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하나같이 행복해 보였다. 어린 꼬마 아이부터, 커플 등산 배낭을 멘 노부부까지. 하루는 이런 기사를 읽은 적이 있었다. ' 한국인 표정은 무표정하다.' 외국인들이 본 한국 직장인의 모습이었다.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업무와 스트레스에 시달리는 대부분의 한국인들이 무의식 중에 가지는 표정 들일 것이다. 하지만 이 곳에서 그런 표정들을 볼 수 없었다. 그저 걷는 것 밖에 할 게 없는데, 심지어 자연을 보호한다고 음식물 섭취도 제한적이고, 생수 한 병  구입하는 것도 힘들 정도로 오로지 자연에만 신경을 쓴 곳이지만, 힘들어하거나 짜증내거나, 화가 난 표정을 본 적이 없었다. 그냥 모든 것이 다 용서되고 행복한 곳이었다. 아마, 다른 사람들도 내 표정을 봤다면, 무표정이 아닌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나를 봤을 것이다. 


걷다가 힘들면 잠시 발걸음을 멈추고 벤치에 앉아서 다른 사람들이 즐기는 방식을 보는 여유를 가지는 것도 좋다. 내가 발견한 것을 다른 사람들은 미쳐 발견하지 못하고 지나칠 때에는 안타깝기도 하면서 마치 나만의 비밀이 생긴 듯한 기분도 나름 재미있다. 



길면서도 짧게만 느껴지는 코스가 막바지에 다다를수록 점점 정상을 향해 올라간다. 위로 올라갈수록 밑에서 나무에 가려 보지 못했던 새로운 모습들도 나타난다. 그 덕에 발걸음이 느려져, 오르막길도 전혀 힘들지가 않다. 여행은 끝나기 전까지 사소한 것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그러면 미쳐 발견하지 못했던 새로운 것을 발견하게 된다. 코스의 끝에 도착하면, 버스를 타고 출발점으로 내려갈 수 있는데, 버스 시간이 남아 잠시 쉬기 위해 옆으로 들어간 곳에서 난 평생 잊지 못할 장면을 만났다. 누군가가 나에게 플리트비체를 한 장으로 표현하라고 한다면 고민 없이 이 사진 한 장을 보여줄 것이다.



위에서 이 모습을 말없이 그저 바라봤다. 내가 크로아티아에 온 이유다. 여러 나라를 여행 한 나에게 누군가 가장 기억에 남는 나라를 선택하라고 하면 고민 없이 크로아티아라고 말한다. 어느 나라를 여행하더라도 비교 대상이 되는 나라, 그 중심에는 플리트비체라는 비현실적인 자연 국립공원이 나의 가슴 깊숙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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