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먹기만 했을 뿐 음미한 것도 아니고 평가하듯 고기를 고르고 조리한 것도 아니었다. 그저 주는 대로 먹고 파는 대로 샀다.
두루치기 맛집이라고 광고했고 또 그렇게 인식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컸다. 돼지고기를 위주로 요리하는 식당인데 돼지고기에 대한 여러 의문들이 생겼다. 이 의문들에 대한 꼬리를 무는 파생 질문들 역시.... 여전히 진행 중이며 또 어떤 것은 해결되기도 했다.
물론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이러다가 조리학과를 다시 가야 하는 것인가 축산학과를 다녀야 하는지 옆길로 빠지기도 하지만 현재는 조심스레 이것저것 소심하게 조용하게 알아본다.
Pixabay, G.C. 님의 이미지입니다.
주로 거래하는 정육점에서는 특정회사 제품을 사용한다. 주인장의 취향이기도 하겠지만 예전에 맛있다고 느끼던 정육점에서 쓰던 제품이었기에 익숙한 맛과 향이랄까.... 어쩌면 맛있게 먹었던 돼지고기와 같기에 선택했다.
다른 이들은 어떻게 느끼는지 모르겠지만 내 코는 예민하다. 사실 후각만큼 청각도 예민하지만 돼지고기를 소분할 때만큼은.... 이상하게도 더욱 예민해진다.
어떤 날은 색과 냄새에 기이할 정도로 예민해진다. 비계양에 따른 냄새의 다름과 피의 양에 따른 냄새들, 가끔은 희미하게 나는 락스냄새와 같은 약품냄새 같은 그런 냄새까지.... 포장된 비닐에 붙어있는 피의 양은 가끔은 이상하고도 기괴하며 불쾌한 냄새를 고기에 옮기기도 한다.
그러나 고기는 여전히 붉은색을 보여주며 질감이 단단하다가 하루이틀 지날수록 부드러워짐을 느낀다. 그럴 땐 나 혼자만 예민했음을 알게 된다.
고기는 변하지 않았고 그저 고기의 과거를 혼자서 유추해 본다.
사람에게 각자의 체취가 있었듯 돼지에게도 그런 체취가 있었을 것이라고.... 분명 다른 이들이 느끼지 못할 만큼 고기는 상태가 좋다. 그러나 매일매일 고기를 조리하는 이에게는 모든 것이 예민해진다.
나만 먹는 것이라면 아무 문제없을 텐데, 누군가에게 보내는 것이기에 보관과정도 중요하고 조리과정과 포장과정도 신경이 많이 쓰인다.
고기를 먹는 이들은 조리하는 사람의 엉뚱하다 못해 비밀스러운 이런 마음을 알까?
가끔은 호기심으로 고기냄새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양념의 색과 고기의 불의 세기에 따른 완성된 두루치기를 묘하게 쳐다보는 마음을 알까?
분명히 같은 레시피, 같은 패턴으로 조리를 시작했지만, 고기의 상태와 야채의 비율, 수분함량 조금은 부족한 양념 또는 평소보다 많이 들어간 양념상태로 인한 변화, 어떤 날은 오버된 양념 덕분에 더 맛있어지기도 하고 앞전에 주문한 고객의 주문사항이 적용되어 하루종일 적당히 간간한 상태로 조리되기도 하는데 재료는 일정하지만 상황이 늘 같지 않기에 맛은 살짝살짝 달라진다.
인공지능이 가득한 세상, 인공지능이 사람이 하는 모든 것을 대체할 것이라고 하지만 그래도 사람의 손맛을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남지 않을까?
사람이 같은 환경에서 자라도 다 다른데 생명체의 상태까지 똑같이 일치하게 할 수 있게 되는 날이 올까?
돼지고기는 분명 같은 돼지고기지만 모두 다 똑같은 돼지고기가 아닌 것처럼, 사람의 맛의 취향도 모두 다 다르다. 조리장의 조리 손길도 다르다.
그날의 컨디션이 모두 다 다르다.
그런데 모두 다른 고객의 음식 취향과 선호 컨디션까지 모두 다른 다양한 경우의 수. 인공지능이 맞출 수 있을까?
당신의 돼지고기 취향은 어떤가요?
꼬들꼬들하고 매트한 양념으로 조리한 돼지고기가 좋은가요?
부들부들 삶아지고 향긋한 야채로 조리된 돼지고기 취향인가요?
돼지껍질이 섞인 비계가 적당한 돼지고기가 좋은가요?
껍데기가 제거되고 비계도 거의 없는 간장양념이 배어진 돼지고 가 좋은가요?
때 때로 약속된 조리법이 아닌 방법으로 돼지고기를 조리해 본다.
스테이크소스로 양념된 목살
돼지 목살은 그냥 구워도 맛있지만 돼지 앞다리에 비해 가격이 비싸다. 질보다 양을 생각하는 고객이라면 비추다 그러나 특별하고 간편하게 먹고 싶을 땐 좋은 부위이다. 도톰하게 썰어서 톰방톰박 자르면 폭신한 육질을 느낄 수 있다. 스테이크 소스로 마무리하면 고급지고 딱 좋다.
게대가 삼겹살보다 가격이 저렴하고 구이를 할 때는 다양한 질감을 느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돼지 앞다리로 만든 두루치기 덮밥
손님이 없을 때 잠시의 찰나, 돼지 앞다리 두루치기를 올려놓은 덮밥은 참 맛있다.
고추장 양념과 야채를 같이 넣고 비비면 진짜 꿀맛이다. 아직도 손님상에 내놓은 음식을 맛본다. 사실 아직도 라는 말은 시기상조일 수 있다. 그만둘떄까지는 맛봐야 하지 않을까? 조리 컨디션과 고기 컨디션을 확인해야 하는 책임감이 있기에 늘, 하루에 한 번 이상 먹어본다.
숙주와 함께 굴소스로 양념한 돼지 앞다리
빨간 양념이 지친다고 말하는 가족들에게 내놓는 별미 중 하나인 숙주를 넣고 굴소스로 마무리한 돼지고기야채볶음이다. 생각을 한다. 설거지를 하다가도 그릇을 정리하다가 거리의 사람을 바라보다가도 돼지고기의 취향이 무엇일지 지금 나는 잘하고 있는 것인지 내 취향으로 고객을 설득할 것인지 고객의 취향을 맞춰줄 것인지 오늘의 나는 실수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혹은 잘못하고 있는 것은 없는 걸까.
장사하기에 많이도 부족하지만 장사를 그만두지 않는 한 돼지고기 취향 찾기는 계속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