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어사리 Mar 22. 2024

라면에 찬 밥 말아먹기

사람의 마음은 그릇에 담을 수 없어요.

+210


행복은 멀지 않음을 알고 있으며 사람의 심리는 주변의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에 더욱 놀라워진다,


조그만 가게이다 보니 술을 몇 박스씩 쟁여놓고 팔지는 않았다.

사람들이 볼 때, 술박스를 쟁여놓고 판매하는 것이 당여 하듯 느껴지겠지만, 아이를 위해 시간 보내는 것에 익숙지 않고 매일이 불안함의 연속인 초보 사장에겐 매일의 자료를 채우고 또 준비하는 것이 전부이다.


아이를 처음 임신했을 때 유일하게 먹고 싶은 과일이 하우스에서 기른 새빨간 딸기였다.

이제는 흔하게 구할 수 있고 손님에게 부담 없이 내어 줄 수 있는 과일 중 하나이다.

비싸더라도 맛있는 향과 모양을 보여준다면 언제든 최선을 다하는 것처럼 보이겠지.

낯선 이방인이 찾아올 때, 빈 술냉장고를 보여준다면 무엇을 알게 될까?


술장고에 술이 비어 있을 때가 불안해지며 자존심처럼 술을 채우는 것에 진심이 되어버렸다. 어느덧 술의 재고가 가게의 매출과 손님의 친밀도를 측정하는 도구로 보인다는 사실에 더욱 냉장고를 신경 쓰게 된다.

냉장고에 술이 없음이 꼭 사장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아닌데도 현금유동성에 대한 부심처럼 술을 채워 넣는다.


어느 날은 술의 재고와 상관없이 냉장고에 빈한함이 가득일 때가 있다.

그럴 때면 재고와 상관없이 냉장고에서 존재가 미미하며 부실한 주종들이 고객의 마음을 흔드는 것 같다.

그런 날은 어떤 법칙이 적용되는지 모르겠지만 냉장고에서 숫자가 가장 적은 술들이 경쟁하듯 소비되기 시작한다.

예를 들어 새로의 재고 반박스 이하일 때 유난스럽게 새로만 마시는 고객들이 나타난다. 또 몇 달 동안 팔리지 않던 잎새주를 찾는 고객이 잎새주의 줄맞춤이 슴벙슴벙일 때는 잎새주만 찾는 고객들이 줄 세워 나타난다.

어떤 때는 진로의 재고가 최대치였다가 다른 종류의 술들이 빈한한 위치에 서게 되면 진로 역시 경쟁하듯 냉장고에서 자신을 사라지도록 만든다.


그런 일들을 몇 번 겪다 보니 이것은 스스로가 유도할 수 없는 일이며 절대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할 수 없는 질문이라는 것을 알았다.


술을 많이 파는 것은 목표가 아니지만 마녀의 장난처럼 술을 많이 파는 것이 목표처럼 보이게 된다.

술을 정신없이 팔다가 문 닫는 시간이 되면 갑자기 모든 피로가 몰려오며 식은 밥이라도 상관없으니 얼큰하고 따땃한 라면에 찬 밥을 말아먹고 싶어 진다.


모두가 그러하지는 않겠지만 그들은 나의 가게를 방문함으로 인해 헛헛함을 채우고 가고 나의 헛헛함은 얼큰한 라면이 채워준다.

마음을 정해진 용량대로 채워진다면 각자의 그릇의 크기를 걱정할 필요는 없겠지.


최후의 웃는 자가 승자이듯,

얼큰한 라면은 빈 방을 채워주는 누군가를 대신할 수 없다.

사람의 마음을 세상의 모든 그릇이 채워줄 수 없다.



가끔이지만 뜨끈한 라면에 찬밥 말아먹기는 정말 최고이닷.




이전 16화 선물 같은 하루, 행복은 가장 가까운 곳에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