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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연어사리 Mar 28. 2024

참이슬 명조체보다는 고딕체

벚꽃이냐 벗꽃이냐

+217


벚꽃의 개화가 비와 함께 찾아오고 있다.

아침저녁 가릴 것 없이 비가 내리고 단비를 흠뻑 마시고 벚꽃은 개화한다.

어릴 적, 꽃놀이는 부모님과 함께 밤놀이였고 이색적인 드라이브였으며 흔히 할 수 없는 체험놀이였다.


오후 2시, 가게에 일찍 나가지 않고 머뭇머뭇 지쳐서 늘어져버린 몸을 이불속에 말아 넣고는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었다. 동네 친구의 문자에 고민했다.

갑자기 연락온 동네 친구가 벚꽃 보러 가잔다.

축축한 날씨에 늘어져버린 몸, 개화한 꽃은 만개만개하다.

그래, 친구 아니면 언제 돌아다니겠는가.


친구 덕분에 문척교를 지나 간전을 지나 화개가 멀리 보이는 남도대교까지 만나고 유턴해서 돌아오는 코스로 벚꽃을 만났다. 오랜만에 도란도란, 사소하고 아무 의미 없는 대화가 화려한 벚꽃길과 어울리지 않았다.

인생은 꽃길만 걸어야 할 거 같고 꽃길만 걷는 것 같지만 우리 인생은 똥밭이다.

생각에 따라 다를 텐데. 비가 와서 몸이 피곤함이 평소보다 더 크게 느껴졌다.

몸의 피곤함은 곧 사고의 정지와 삐딱함이 된다.

요즘 들어 꽃사진을 추억하려 하지 않는다. 마음의 여유가 없는 건가.


돌아오는 길, 길가에 파는 뻥튀기와 소라과자를 맛있게 먹다가 향긋한 커피가 생각났다.

꽃길에는 커피.

커피맛집이라 소문난 푸드트럭에서 커피를 한잔씩 사서 마시고 길가 테이블에 앉아 섬진강을 바라보며 아무 의미 없는 이야기를 했다. 서로에게 꽃길을 보여주고 꽃길만 걸어도 부족한데 꽃길을 스쳐 지나간다.

친구 덕분에 새로운 휴식을 가졌다.


이제는 흔하디 흔해진 벚꽃이 되어버려서 꽃의 개화소식도 반갑지 않고 벚꽃이 피지 않은 벚꽃축제소식은 그저 코웃음만 나오는 개그코드가 되었다. 어쩌면 개그코드도 되지 않으려나.

지난 주말 벚꽃축제가 한창 진행되었고 벚꽃축제 첫날 행사장을 다녀온 손님들은 꽃비가 아닌 진짜, 리얼 비에 맞아서 축축한 상태로 가게에 들어왔다.

마치 애니메이션의 한 장면처럼, 손님들의 어깨 위에선 물아지랑이가 살포시 올라오는 귀한 광경을 구경했다.


축제장에선 초대가수가 있었고 초대가수 중 거미의 공연에 흠뻑 취해온 손님들은 거미의 열정 가득한 노래로 온몸 가득 열기를 머금고 비에 젖은 채로 허기짐을 채우러 들어왔다.

저녁 9시, 정말이지 애매한 시간이다.

술이냐 밥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고민할 필요 없다.

그냥 밥도 먹고 술도 마시면 되는 것이다.


그들은 진로를 좋아한다.

방문하는 날은 냉장고의 진로를 반쯤 마시고 사라진다.

그들이 지나고 간 자리엔 한 잔도 나오지 않는 진로의 투명한 병만이 남는다.

배가 무척이나 고팠는지 다른 날은 먹지도 않던 나물과 어묵반찬을 마구 흡입해서 4번쯤 채워준 것 같다.


그들이 사라지고 진로를 찾는 손님이 또 찾아왔다.

진로의 빈 공간, 무엇으로 채워야 하나.

초록의 참이슬만 가득하다.


참이슬, 최근에 리뉴얼되었다.

대부분 잘 모르지만 자세히 보면 알 수 있다.

글자체가 바뀌고 도수가 0.5 내려갔다.


처음엔 공장이 다른가 그냥 바뀐 건가 싶었는데 도수가 내려가고 라벨의 글자체가 바뀐 것이었다.

0.5도의 차이가 얼마나 클까 싶지만 0.5를 내리고 원가를 낮췄다고 한다.

그래서 참이슬 소주의 판매가를 낮췄다고 한다.

술 마시는 이들에게 내려간 원가가 중요할까?

그들에겐 술값보다 더 중요한 것은 사람과의 관계이며 한 잔의 즐거움이 주는 만족감일 텐데.


서민을 위한 술, 소주.

원가 내려가고 도수 내려가고 고객을 위한 엄청난 배려인 것 같지만 사실은 그들은 병의 디자인이, 글자체가 바뀐 것을 그리 체감하지 못하고 있다.

원래의 참이슬은 굵은 명조체였다. 

남자는 궁서체라는 느낌의 굵은 선이 매력적인 참이슬이었지만 사실은 한 병에 100칼로리였다는 사실과 16.5도였다. 이슬 같은 느낌을 주는 청량한 소주, 이슬 같은 몸매의 여자들이 많이 좋아했으려나 첫사랑 이슬이를 떠올릴 것 같은 남자들이 좋아했으려나.


술보밥상 기준, 소맥으로 가장 베스트이며 인기 있는 소주는 참이슬이었다.

진로는 그다음 순서쯤 되려나.

최근에 바뀐 고딕체와 기존의 명조체 참이슬


해가 바뀌고 갑자기 깔끔한 고딕체가 되어버린 참이슬, 칼로리도 내리고 도수도 내리고 원가가 내렸나?

구매자 입장에서는 가격 변동이 없었다.

마트 구매가가 내려갔나.

사실 잘 모르겠다.


이슬 같은 꽃비가 내렸으면 좋겠다.

아니 곧 내리겠지.

벚꽃이 개화, 만개 중이다.

주말에는 벚꽃을 감상하려는 상춘객들이 가득하겠지.

가게 앞에도 벚꽃 한그루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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