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대충 설렁설렁, 밥손님 오면 쌀 씻어요.
불과 몇 개월 전만 해도....
밥을 그득하게 밥솥에 담아두면 손님들이 싹 비우고 가셨었지만 단골손님의 방문 횟수가 줄어 밥을 미리 해놓고 기다리는 것은 곧 음식물을 낭비하고 버리는 일이 되어버렸다.
이젠 밥손님이 들어오면, "30분 기다리실 수 있으세요?"를 먼저 묻는다.
손님이 괜찮다고 하면, 그제야 쌀을 씻고 잠시 물에 담갔다가 불을 켠다.
압력솥이라 20분이면 충분하고 날씨가 더워서 쌀을 오래 불리지 않아도 밥이 잘 된다.
밥을 짓는 동안 간단한 반찬 몇 가지와 앞다리를 볶는다.
계란말이도 준비한다.
계란을 깨고 소금을 계량하고 파도 다져 넣는다.
그렇게 2-30분이 후다닥, 반찬은 4-5가지 정도, 계란말이와 상추쌈, 돼지고기 앞다리 볶음이 완성되어 차례대로 나가고 밥공기에 밥을 담아내면 끝난다.
사람들은 밥에도 유통기한처럼 맛있는 시간이 있다는 것을 거의 모른다.
유통기한에 임박한 제품들은 어딘가 맛이 별로다.
예민하지 않은 사람들은 모를 수도 있지만,
대부분은 이상함을 느껴도 그냥 먹어도 괜찮으니깐 그냥 먹는다.
음식은 막 완성되어졌을 때가 가장 맛있다.
만들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냉장고에서 잊혀 갈수록 맛도 사라져 간다.
어떤 때, 직화불에 다시 달궈지는 순간 음식은 과거의 가장 맛있었던 순간으로 흉내 내어진다.
냉장고에서 며칠을 푹 쉬고 나온 음식은
달궈진 기름 위에서 새롭게 태어나기도 하고
불향 대신 기름향으로 잡내를 덮어 맛있는 음식으로 특별해진다.
손님이 앉으면서 음식을 조리하다 보면 단점이 있다.
여러 손님들이 몰리면 조금 느리게 음식이 만들어지는 것처럼 느껴지고
지루함을 느낀 손님들은 불편함으로 지치기도 한다.
정해진 메뉴가 없을 때,
그날그날 선택하지 않거나 선택되지 않거나 익숙해진 고객들은 "그냥 해줘"를 외친다.
그러면 냉장고 속 재료들을 모아서 만들고 싶은 대로 만들어서 내준다.
오징어와 죽순이 들어간 초무침, 돼지안심을 이용한 가지볶음, 신김치에 멸치와 액젓을 넣어 푹 삶은 김치조림. 즉석에서 생각나는 대로 막 만들다 보면 배가 불러진다.
가끔은 이런 상황들을 즐긴다.
고객들도 즐긴다.
작은 가게에서만 할 수 있는 이벤트 같은 상황들.
이 상황이 즐겁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