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연어사리 Oct 03. 2024

마음에 위로가 되는 선물

태추단감이 한가득이네요.

태풍 18호 끄라톤 덕분에 세상이 축축해졌습니다.

한풀 꺾이긴 했지만 여전히 따가웠던 가을 더위도 갑자기 사라졌고 어제까지 친근했던 에어컨은 이제 안녕, 따스한 난방기와 패딩을 꺼내야 할 때가 되어 버렸습니다. 단 이틀 만에 이렇게 변할 수가 있는 건가 싶지만 그런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30년 전에는 물을 사 먹는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었고 물을 사 먹으면 공기도 사 먹어야 하지 않냐면서, 실제로 신선한 공기를 팔기로 했었습니다. 이젠 물을 사 먹고 공기를 사는 대신 공기청정기가 없는 곳이 거의 없게 되었습니다.


비가 오는 것은 이상한 일은 아니지만 물폭탄을 걱정하고 어디선가 곰팡이가 스멀스멀 올라오지 않을까 걱정하게 되고 빨래건조기 없이는 살 수 없는 삶이 되어버렸습니다. 그래도 사람은 살아가고 사람과 사이의 정(情)은 존재하나 봅니다.

때때로 그 정이 어떤 의도를 갖고 있을 때도 있지만 대부분 순수하고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있어서 아직은 행복하고 기쁜 것 같습니다.


가을이면 밤과 감이 넘쳐나고 단풍구경을 다니던 때가 언제였는지 벌써 기억에서 사라져 가고 있습니다.

지금이 가을인지 겨울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감을 한아름 받아 들고 나니 '진짜 가을이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장마와 다름없는 가을비, 여름과 다름없는 겨울비.

환경은 변해가지만 사람은 여전히 살아가고 정(情)은 살아 있습니다.


여름비인지 가을비인지 정체를 알 수 없는 날씨 탓인지 마음은 갈팡질팡 갈 곳을 잃었고 삶이 힘겨워 지쳐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단감을 받아보니 참 감사하고 고마운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냥 단감도 아니고 커다란 태추단감, 비를 하염없이 바라보고 있었을 그때였는데 비와 함께 내 마음도 젖어서 사라지려 하고 있었는데 단감 선물이라는 전화 한 통에 갑자기 힘이 났습니다.


사람의 마음은 간사하다는 데 저의 마음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갑작스러운 계절 변화에, 명절이 지나고 난 뒤 힘겨운 현실이 모두에게 넘쳐버린 채무가 된 듯 그런 마음들이 전염성을 가지고 자아를 가진 듯 비와 함께 여기저기에 사이비 종교를 전파하듯 그렇게 빠르게 전염성 깊이 잠식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냥 무심한 듯, 평소의 고마움을 작게나마 나누고 싶었다는 그분의 전화 한 통이 추위를 잊고 달려가게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살고 싶어 졌습니다.


'아' 다르고 '어' 다르다고 했던가요. 어떤 말을 하고 싶었는지는 사실 중요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그저 누군가가 전한 감사와 수고의 말 한마디, 그게 그리웠던 것 같습니다. 무심한 듯 던지지만 그저 건네주는 말 한마디가 아무 이유 없이 들어주겠다는 경청의 표현, 그저 조용히 당신의 말을 듣고 있다는 것처럼 거친 비 사이로 떨어지는 처마 끝 물 떨어지는 소리는 갑자기 그리움이 되고 따스함이 되었습니다.


더위에 지쳐 죽을 것 같았던 마음은 이제 변했습니다.

추위를 감싸주는 마음이 필요해졌습니다.

우리는 어떤 말이 필요해졌을까요? 날씨는 변했고 사람의 마음이 변했고 감싸 안고 싶어 졌습니다.

그냥 들어주겠다는, 대가와 상관없이 표현해 주는 마음이 따스해졌습니다.


구례에 살아보면 단감 한 박스 못 얻어먹으면 구례주민이 아니라고 하던 그 말이 변덕스러운 기후에 감과 밤이 귀해져서 기대도 안 했는데 귀하디 귀한 태추단감을 한 박스 선물로 받아보니, '아직은 여기에 머물러야겠구나' 생각하게 됩니다.

허무하게 깨어질 꿈이라도 괜찮으니 계속 꿈을 꾸고 싶어 졌습니다.

화가 나면 가게 벽에 대고 하던 '이놈의 지역사회, 망해 없어져 버려라.' 했었지만 오늘은, 지금은 다시 노력해보려 합니다.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잘 부탁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이전 05화 밥심은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