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이 해준 밥이 아닌 엄마밥이 그리울 때.
추석을 앞둔 금요일은 13일 장날이었다.
명절을 앞둔 대목 큰 시장이 열리는 날, 머릿속은 온통 명절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만 걱정했고 사람이 넘쳐나는 대목시장에는 방문하고 싶지 않았다. 결국 나는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고 있었다.
그리고 초저녁이지만 여전히 환한 길거리에 서서 주변 상인분들과 안부를 물으며 요즘 왜 이리 더운지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상가의 건물주이자 상인이신 인상 좋은 노부인께서 명절에 올 손님맞이용 밑반찬으로 감자대김치를 가득 만들어 나누어 주고 계셨다. 덕분에 나도 맛볼기회가 생겼고 예상하지 못한 별미를 맛볼 수 있었다.
(사진을 찍어놨는데 글 올리기 전에 갤러리 정리하며 지웠습니다.ㅜㅜ)
양념이 이제 막 묻어서 감자대가 아직도 사각거렸다.
사실은 집에 가서 먹어볼 생각으로 남겨두다가 한 입만, 아주 딱 한입만을 조건으로 한 젓가락 떠올렸다.
'그래? 이 맛이야.'
딱 한 젓가락, 맛만 볼 생각이었지만 멈출 수가 없었다.
계속해서 먹고 또 먹고 때마침 압력솥의 밥은 뜸까지 잘 들어져 완벽하게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모락모락 김이 올라오는 밥 한 공기를 손으로 감싸 쥐고 고귀한 듯 스탠딩테이블에서 감자대김치와 함께 야금야금 먹기 시작했다. 문밖에 누군가가 보든 말든 상관없었다.
이 순간만은 어떤 별미도 다 필요 없었다.
반만 먹으면 될 줄 알았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간에 절여져 얇아지는 감자대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맛있어졌다. 노부인이 선물해 줄 땐 라면대접으로 반이상 찰 정도의 양이었는데 밥공기 절반도 채 남지 않았다.
그 와중에 잠깐 놀어온 옆가게 사장님께서는 맛을 보더니 엄마표냐고 물어왔다.
엄마가 되어버린 딸들은 여전히 엄마의 음식이 그립고 며느리가 된 딸들은 남이 해준 음식이 가장 맛있다.
누구든 추억의 음식이 있다. 그러나 맛이 있든 없든 그것의 문제는 아니다.
사실 나의 음식이 그리 손맛이 좋은 편은 아닌데도 사람들이 맛있게 먹는 것을 보면 그것은 좋은 재료와 갓 지은 밥과 방금 만든 따끈한 음식, 그리고 나의 애정이 한몫하지 않았을까.
마치 딸들이 엄마의 음식을 그리워하고 일을 마치고 배고픔을 알아챌 때 누군가가 한 음식이 허기짐이 아닌 마음의 위로를 채워준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이라면 유명세프가 아닌 지금 당장 눈앞에 바로 만들어진 순박한 그 음식들이 마음을 채웠음이다.
오래전에 외삼촌댁에서 신세를 졌던 적이 있었다.
그때 외삼촌은 직장을 잃었고 아이들은 어렸으며 얇아진 지갑에 반찬값이 부족해 매일 걱정이었던 외숙모는 고구마대김치를 담가서 반찬으로 내준 적이 있었다. 배추김치와 깍두기 아니면 김치가 아니라 생각했었고 나물로도 안 먹어본 고구마대김치는 너무도 생소했다.
객식구 주제에 반찬투정은 할 수 없었고 그저 반찬이니깐 먹어야만 했다.
그때 먹었던 고구마대김치와 감자대김치는 같은 맛이었다.
바쁘게 매일을 살다 보니 지갑이 가벼워진 줄도 모른 채 명절을 맞았고 막상 무언가를 사볼까 고민하며 시장 물가를 알아보니 배추김치 한 포기가 1만 원이 넘어가고 파김치 한 단은 3만 원이란다.
과거의 우리 엄마들은 얇아진 지갑에도 다양한 지혜로 밥상을 지켜왔다. 엄마의 음식은 맛으로 먹는 게 아니다. 엄마의 애정과 관심이었다.
매일을 배움으로 채워간다.
이성적으로든 감성적으로든 계속해서 성장하고 채워간다.
장사가 되든 안되든 냉장고는 정리해야 하고 냉동실이 아무리 유통기한을 늘려준다고 해도 냉동실의 재료들을 야금야금 빼내어 집밥을 만들어본다.
물론 냉동실의 정리된 재료들은 손님용이 아니라 가족들이 먹는다는 사실, 남편은 잘 모른다.
가게 냉동실을 뒤적이다 보니 올봄에 삶아서 얼려놓은 양지와 사태가 약간 나왔다.
마트에 파는 곰탕팩을 사서 종종 썰어놓은 대파를 넣고 해동된 양지와 사태를 넣고 국수사리를 넣어서 끓였다. 건강과 맛까지 더해진 든든한 한 끼가 되었다.
매일 한 끼 정도 이틀정도 먹고 나니 양지와 사태가 좀 질린다 싶어서 애호박을 가득 넣고 맑은 물국수 위에 고명으로 얹었다. 그래 이 정도면 장사해도 될 정도다.
그렇다.
나는 이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