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사 권태기'라는 말이 참 재밌네요.
야채라 하면 대부분 잎, 줄기, 뿌리등을 말한다.
그러나 열매채소도 포함이 될 때가 있다. 수박, 참외, 토마토, 오이 그리고 가지는 채소에 열린 열매이다.
문득 궁금했다.
열매인데 나무에서 열리는 열매는 과일이고 줄기 이파리에서 열린 열매는 야채(채소)라니 이상했다.
그러나 수박, 참외, 토마토, 오이를 보면 과일이 아니니 가지도 과일이 아니겠지.
그렇게 이상한 상상으로 가득 찼던 가지무침 반찬을 만드는 과정은 아무런 이변 없이 나물이라는 반찬으로 분류하며 소금에 절여서 무치기로 했다.
마치 과일(열매)을 소금에 절여서 무치면 이상할 것 같았다는 혼자만의 생각은 그냥 조용히 사그라들었다.
야채의 열매지만 속이 퍼석거리고 아무 맛도 없고 게다가 껍데기의 보라색에선 물기가 닿으면 보라색 물이 흐르니 가끔은 진짜 이상하다.
우리는 가지라는 이름으로 부른다. 그러나 옛 이름에는 '남새'라고 부르기도 했고 북쪽에서는 여전히 남새라고 부른단다.
가지의 원래 이름은 한자어 '茄子(가자)'였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가지'라고 부른다. 게다가 현재 우리가 먹는 대부분 가지의 원산지는 인도산이며 중국을 통해 신라시대 때 들어왔단다. 정말 가지가지한다.
가지는 구이, 조림, 튀김, 게다가 서양식 요리에서도 빠질 수 없는 주재료이다.
그러나 그냥 먹으면 아무 맛도 없다.
어릴 적 들판에서 소꿉놀이하며 하나씩 잡아 끊어 먹던 삐비가 생각난다.
가지는 정말 이상하다.
야채이면서 우리나라가 원산지도 아니고 건강에도 좋고 영양도 좋다.
나쁜 것은 빠르게 물들고 좋은 것은 느리게 적응한다.
장태기(장사 권태기)라는 것도 주변을 물들이고 또 계속 꼬리를 물듯이 만나는 이들 모두를 우울하고 무기력하게 만든다. 가지는 야채라는 명확한 구분이 있지만 야채의 특유의 아삭 거림과는 거리가 멀고 생으로 먹는 것은 생소하다. 물론 싱싱한 가지는 생으로 먹어도 좋지만 줄기에서 떨어진 가지는 독성이 생긴다고 한다.
가지의 독도 무지 강력하다고 하니 생으로 먹지는 않는 편이다.
가지의 보라색이 자꾸만 뽀얀 속살을 보랗게 물들여서 맛있는 반찬의 색감으로서 가치를 떨어뜨리는 것처럼, 가지의 보라색은 우리의 우울함과 닮아있는 것 같다.
우리는 그런 우울함에도 막상 모든 것을 내팽개칠 수가 없다.
자꾸만 주변을 서서히 잠식하는 보라색처럼, 그때쯤 되면 드는 생각은 보라색 껍데기를 깎아버릴걸이라는 후회감이 몰려온다. 그래도 우리는 버틴다.
오랜만에 넘치게 구매한 가지로 만드는 반찬, 글을 쓰는 동안 소금에 잘 절여진 것 같은데 라따뚜이나 해 먹을걸 살짝 후회가 된다. 그런데 토마토가 여전히 엄청난 가격이다.
토마토 한 박스가 여전히 9만 원일까.
가격을 생각하니 그냥 지금이 좋은 것 같다.
그냥 장태기라서 그런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