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예산창업프로젝트의 D-day
6월쯤 퇴사 후 이직이냐 창업이냐를 놓고 창업이 훨씬 합리적이라 생각되었고 빠른 창업이 가능하다 생각해서 6월 말 퇴사와 동시에 창업을 시작했다. 머릿속의 계산으로는 1주일이면 창업완료였지만, 실제로 진행해 보니 2주가 필요하게 되었다. 2주? 넉넉히 3주면 한 달안에 창업 완료되고 여유롭게 여름휴가 장사를 시작하겠구나 싶었다.
실제의 창업은 많이도 달랐다.
간단하고 소소한 가게맥주집이었다면 화구의 필요성도 가스사용허가 필증 따위도 필요하지 않았을 테다.
그러나 중간에 틈새시장전략 변화로 인해 메뉴에 변화가 생겼고 메뉴의 변화는 곧 허가에 많은 것들이 필요함을 알게 했다. 그래도 쉽게, 1-2주면 마무리될 문제일 줄 알았는데 예상치 못한 변수가 있었다.
이곳은 도시가 아니다.
무엇을 해도 도시가스 요금도 LPG(가스통)와 크게 다를 바가 없다. 그 이유를 찾아 찾아 물어보니 도시가스 요금은 사는 지역의 인구대비 전체량을 비율적으로 나누는데 인구가 적은 곳은 상대적으로 부담하는 비용이 높기에 도시가스 요금이 대도시처럼 드라마틱하지 않다는 것이다. 게다가 체증되는 부과요금의 구간도 대도시보다 짧고 그러기에 대도시 A에 사는 사람이 사용한 도시가스 사용양과 소도시 B에 사는 사람이 사용한 도시가스 사용양이 같다고 해도 금액은 엄청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 도시에서 멀어진 지 너무 오래되었다. 아주 간단하고 쉬운 비유가 있었는데 잊고 있었다.
편안한 지름길 같은 권리금을 포기한 대신 맨땅에 헤딩하기 했던 나는 도시에서의 빠른 날들만 기억하고 있었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도시가 아닌 시골이다. 아늑한 가족과 정과 정으로 이어진 관계들 그 덕분에 그저 편하게 기다렸다. 하루 이틀, 이건 집 나간 애인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가출한 아이 기다리는 부모도 아닌데 연락을 해도 감감무소식, 해결책도 없었다.
그렇게 접수가 안되었다는 이유로 2주를 보냈고 접수가 된 것을 확인하고 담당자가 일정 잡고 확인하고 연락 주기로 하고 14일이 지났다. 나는 폭발직전이었고 시공과 접수를 했던 가스업체 사장님은 안절부절, 빚을 갚고도 갚지 못한 것처럼 미안해서 말을 잇지 못했다.
14일째 나는 가스공사 대표번호로 전화했고 상담원에게 지난 상황과 현재 사정을 최대한 설명하고 아무리 그래도 이건 좀 너무하다는 표현과 빠른 시일 내에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의견을 강력하게 피력했다.
10분쯤 지나 공사 여자 직원이 핸드폰 번호를 알려주었고 그 핸드폰 번호로 전화를 걸어 현재까지 과정을 설명했다. 그러자 담당자에게 최대한 전달한다고 하고 다시 연락을 준다고 했다. 다시 연락을 준 담당자의 상관으로 보이는 사람은 내일 담당자가 나가서 검사완료할 것이라는 말을 전달했다.
그리고 '죄송합니다'라는 미안함이 담긴 말 한마디를 전했다.
"죄송합니다."
그 말 한마디에 한 달의 기다림은 사라져 버렸다. 나의 손해는 나의 문제일 뿐 공사는 아무 상관이 없고 중간에 누군가가 몇 번을 연락했고 몇 번의 이의제기를 하고 연락을 기다렸든 일정에 차질이 생겨 금전적 손실이 생긴 부분에 대한 것은 아무런 책임이 없는 것이 공사직원이었다.
나는 화가 나지만 더 할 말을 이을수가 없었다.
정확히 가스공사에 민원 제기할 창구를 찾을 수가 없었기 때문이다.
사실 지금이라도 민원을 제기하고 싶다. 정확한 절차를 알고 싶기도 하고.... 그런데 내가 아무런 힘도 없고 이런 상황과 관례들에 대해 가스공사는 현재 지역이 시골이기에 한 곳을 보고 끝장나올 수 없다는 의견이 대부분이기에 당연하듯 넘어가야 하는 상황이었다.
금요일 오후로 약속되었던 가스공사 담당자는 시간을 앞당겨서 오전에 방문한다고 연락 왔다.
빠른 방문에 감사하면서도 괘씸한 마음은 감출 수가 없었다. 가스필증은 참 허무하게도 빨리 해결되었다. 몇 가지 확인하고 이것저것 살펴보고 종이 한 장 던져놓고 갔다. 가스공사 담당자는 내게 미안한 마음 따위 없었다.
죄송하지도 않았고 아무 일도 없듯 그냥 갔다.
따지고 싶었지만 기다림의 한 달에 대해 묻고 싶었지만 그냥 가버렸다.
'그래, 일단 하나가 해결됐으니 된 거야.'
필증 한 장, 종이 한 장을 들고 군청 위생계를 방문했다.
영업신고증을 받기 위해서 필증이 필요했고 한 달이라는 시간을 기다렸다.
이놈의 필증, 한 달 기다린 대가가 2천만 원일까.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빠르게 처리해 줄까 하는 마음으로 기다렸지만 월요일에 연락 준다는 위생계 담당자의 말에 당연하듯 수긍하고 집으로 향했다.
긴장이 풀린 걸까.
온몸이 아픈 거 같기도 하고 좀 많이 피곤한 거 같기도 하다.
그냥 잠을 자면 괜찮아질 것 같아서 낮잠을 자기로 했다.
그날밤 밤새 아팠다.
38.6이 넘는 열이 나고 몸살이 살짝 있었지만 견딜만했다.
남편은 코로나19를 의심했지만 3주 전쯤 이유 없는 몸살과 같은 증상이라 생각하며 그냥 쉬기로 했다.
밤새 고열이 있었지만 견딜만했다 오히려 남편이 더 겁을 내고 걱정을 했었다.
다음날도 열이 나고 몸이 좋지 않았다.
병원에 가보라는 남편과 다음 주 일정이 많아 걱정이 먼저 앞서는 나.
늘 그렇듯, 코로나19 검사 따위는 별 문제없을 거라는 가벼운 마음으로 병원에 방문했다.
병원 방문할 때마다 왜 마스크를 해야 하는가를 고민했었는데 이번만큼은 병원 방문의 필수 조건 같은 마스크를 하는 행위가 참 감사하게 느껴졌다.
코로나19에 걸렸을 땐 시약검사의 반응은 참 빠르다.
빨간색 두 줄의 결과는 빛의 속도처럼 다다닥 나타난다.
토요일 오전, 모든 약속을 취소하기로 결정하고 자가격리를 선택했다.
오랜만에 냉장고 파먹기를 시작했다.
지난 한 달의 기다림 동안 집 냉장고 속에는 내가 연습하고 만들었던 무수한 식당의 음식들이 여기저기 남아 있었다. 소량 남아있는 것도 있고 이틀 전 계란말이는 포장 그대로 남아 있었다.
한 달을 매일 계란말이를 만들었다. 달걀 10개를 미림과 채수를 넣어서 거름망에 거르고 걸러서 만든 계란말이, 한 달을 질릴 만도 한데 남편과 아이는 아직 잘 먹는다. 덕분에 내가 음식을 준비할 필요가 좀 줄어들었다.
감자카레와 계란말이, 여러 가지 밑반찬과 국.
코로나19 덕분에 5일의 휴가가 생겼다.
개업하고 2주지나 1박 2일 여름휴가를 갈 생각이었는데 사업자등록을 낼 수 없어 하루 이틀 기다린 게 한 달이 되었고 코로나19 때문에 개업을 앞두고 강제휴가를 맞이하고 있다.
사실 이 상황에서 제일 미안한 것은 나 자신과 내 몸이 아니라 가족이었다.
남편과 아이. 나 때문에 그저 마냥 기다리고 있었을 텐데.
냉장고의 음식들이 채워질수록 남편과 아이는 처음 며칠이 즐거웠다고 한다. 매일이 고기반찬이니 좋았을 테다. 그런데 한정된 메뉴이다 보니 반복되는 같은 메뉴들, 어느 날 아이가 아빠에게 조용히 말했다고 한다.
"아빠, 엄마 음식 맛있긴 한데 매일 먹으니 조금 질릴라고 해."
한 달의 기다림 동안 손님이 없어도 매일 음식을 했다.
주메뉴가 6가지 반찬이 나오는 정식과 신선한 돼지 앞다리를 사용한 두루치기이다. 그래서 더 연습했다.
작은 식당이어서 조금 불편한 식당이어서 나를 걱정하는 이들의 마음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매일을 노력했다.
덕분에 이제는 간을 보지 않아도 음식의 메뉴를 들으면 레시피를 찾아보지 않아도 된다.
반복이 참 무서운 것 같다.
문을 열지 못하고 가게를 지킬 때마다 옆가게에 사장님이 자주 놀려오셨다.
사장님은 여자분인데 주변에선 사장님의 말투 때문에 거리를 두라고 하기도 했지만 친구가 이야기해 주길 좋은 언니라고 했었다. 난 친구의 말을 믿었다. 사장님은 알면 알수록 좋은 분이었고 조언도 많이 해주셨다. 물론 나도 가끔은 사장님께 작은 도움을 주기도 했었다.
옆집 사장님 항상 말을 쉽게 놓지 않았고 늘 격려와 조언을 해주셨다. 긴 대화를 할 때도 있었는데 그러다가 공통점을 발견했다. 사장님의 어머니도 식당업을 했었다는 것, 나도 그러했는데.
친한 동생이 했던 말이 생각난다.
"언니, 비율적으로 우리는 부모님의 직업을 그대로 이어가고 있다니깐."
각인처럼 또는 세습처럼 우리는 이곳에 살았던 부모의 직업을 따라가고 있다. 아마도 가장 잘 아는 일이기에 득과 실을 잘 안다 그러기에 쉽게 선택하는 행동일 텐데.
물론 나는 N잡러이지만 주업은 아마도 식당업이 되겠지.
한 달의 기다림과 5일의 휴가는 개업 전, 마지막 휴식 같다.
지난 기다림의 시간은 내게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이제는 음식의 간을 보지 않고도 음식을 완성할 수 있고 세금에 대해서 조금 더 관심을 갖게 되었고 많은 사람을 만나고 이야기하게 되었다.
글을 쓰며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에 대해 늘 목마름이 있었는데 이젠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어졌다.
이제 얼마 안 남았다.
휴가가 끝나간다.
다음 달에는 1박 2일 가까운 곳으로 여행 갈 마음의 여유가 되길~
매일매일.... 축제 같은 하루가 되길.
기다리고 기다리던 창업, 사업자등록증이 월요일에 나왔습니다.
자가격리 중이라 남편찬스를 좀 썼답니다.
이럴 땐 좀 멋지고 고마운 남편이지만
매번 일상에선 왜 그리 못된 장난꾸러기 같은지.
덕분에 집안에서 할 수 있는 것을 하면서 처리해야 할 것들을 처리 중입니다.
혹시나 이 글을 읽고 저의 식당을 방문하게 되는 분들은 꼭 알려주세요.
음료수든 반찬이든 서비스 드릴게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