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절의 모노클

퇴사일지 4

by Juas
night drive

2022년의 마지막 날

2022년엔 좋은 꿈을 많이 꿨다. 과장이 아니라 태몽과 길몽을 거의 한 달에 한 번꼴로 꿨고 아니, 실은 더 자주 꿔서 많은 아침을 설레이는 마음으로 시작했던 기억이 난다. 하지만 12월의 마지막 날이 되도록 아이 소식은 없고 로또 당첨도 되지 않았다. 아마 몹시 나쁜 일이 비껴갔거나 운을 365개로 쪼개어 받은 게 아닐까 싶다. 그 운들을 하나로 합쳤다면 혹시 인생이 바뀔만한 일이 일어났을까, 아니면 두고두고 기억에 남는 하루가 생겼을까. 운을 어떻게 받을지 고를 수 있었다고 해도 연금처럼 나눠 받는 쪽을 택했을 것 같다. 나이가 드니 별일 없는 하루가 제일 감사한 하루다.


올해의 키워드를 꼽자면 대상포진과 퇴사가 되겠다. 오죽 별일이 없었으면 겨우 이 두 가지를 꼽겠냐만 둘 다 내가 다 중요하게 생각하는 가치가 무엇인지 나를 움직이는 동력이 무엇인지 돌아보게 한 계기가 돼주었다.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 아니겠는가.


나는 내가 하는 일이 세상에 도움이 되는 일이거나 혹은 개인적인 성장이 있다고 느낄 때 큰 기쁨을 느끼는 사람이다. 큰돈은 벌어본 적이 없어서 돈이 일의 동력이 얼마만큼 되어 줄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물론 엄청 중요함) 앞으로도 이 두 가지를 구심점으로 삼고 삶을 넓혀 가고 싶다. 아주 조금씩이라도 말이다. 그렇지 않으면 대상포진이 다시 얼굴을 덮치며 말해 주리라. 그쪽이 아니라고.


그리고 언제나 그랬듯이 늘 자연에, 계절에 매료되어 있다.


‘나는 끝나지 않는 아침을 사는 식물의 생명이 얼마나 다채로운 생활을 반복하는지 알고 현기증이 날 것 같다.’ -사가와 치카


자연은 매해 투쟁하고 확장하고 잃어버린다. 내 삶도 이와 다를 바 없어 겨울의 끝엔 늘 비슷한 모습을 하고 있다. 마른 고목과도 같은 모습으로 마치 아무 일이 없었던 것 같지만 꽃을 피우고 씨앗을 뿌리느라 현기증 나는 한 해를 살았다. 와중에 꽃과 같은 인연들도 피어났다. 우리가 떨어뜨린 씨앗이 어디로 날아 갔을지 아무도 모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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