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레맨-1화

by 미스틱

#1

뜨거운 여름 오후.

한산한 압구정 로데오 거리가 끓는 대지 열로 아른거린다. 애완견을 데리고 걷는 여인도 있고 명품 매장 쇼윈도 앞에 서 있는 젊은 여자 둘이 쇼윈도 안 가방을 훑고 있다. 곧이어 햇빛을 반사시키며 미끄러지듯 나타나는 등장하는 외제 오픈카, 명품 매장 앞 여자들 앞에 멈춰 선다.

차 안의 남자 둘이 말을 건네면 여자들, 킥킥대며 외면하다 차를 한번 훑고는 한 여자가 문 위에 걸터앉는다. 초미니 스커트 밑으로 뻗은 늘씬한 다리와 반짝이는 오픈카가 잘 어울린다. 그렇게 서로 몇 마디를 주고받는가 싶더니 이내 동승하고 굉음을 내고 사라진다.


고급스러운 건물 ‘제우스’ 야외 주차장 한 편에 컨테이너로 된 주차박스 앞에 때와 땀에 쩐 티셔츠 차림의 재용이 주차박스 앞 플라스틱 의자에 앉아 연신 부채질을 하고 있다. 때가 잔뜩 낀 선풍기 앞에서 잔뜩 인상을 구기고 있는 그의 행색이 골목풍경과 이질적이다.


“미친 새끼들. 더워죽겠는데 지붕은 왜 열고 다니고 지랄이야. 따라가는 년들이나.. 가다가 확 쪄 죽어라. 어우~~ 씨팔, 더워..”


재용이 한국 부채춤에 등장하는 전통 문양 부채로 연신 부채질을 한다. 그 모습이 더욱 이질적이다. 그때다. 잔뜩 찌푸려졌던 재용의 표정이 일순간 호기심 어린 표정으로 바뀐다. 한껏 멋을 부린, 그러나 어딘가 촌스러운 차림의 여자, 귀순이 걸어오는 걸 본 것이다. 그러나 귀순은 반가워하는 재용의 시선을 애써 피해 지나치려 한다.


“여~~ 점점 이뻐지네, 귀순이. 너 오늘 뭔 날이냐?”

“야! 너, 나 아는 척 말라 그랬지. 어휴~~”


귀순은 재용의 아는 척에 멈춰서 호흡을 고르더니 인상을 구기며 쏘아붙인다.

그러거나 말거나 재용은 능글맞게 웃는다.


“요즘은 왜 차 안 가져오냐고. 내가 공짜로 주차해 준다니까.”

“너랑 마주치기 싫어서 안 가져온다. 됐어?”


얼른 걸음을 옮기던 귀순이 홱 돌아보며 다시 한번 쏘아붙인다.


“야, 그럼 차가 아깝지. 객지에서 고생해서 산 찬데 타고 다녀야지. 갖구 와. 내가 세차도 해줄게.”

“됐으니까... 제발 나한테 신경 좀 꺼줘.”


그때, 재용이 뭔가를 보고는 능글맞던 표정이 차갑게 바뀐다.


“어! 저 새끼..”


재용이 용수철처럼 튀어가자 누가 봤을까 주위를 살피는 귀순.


“하필이면 여기서 만나 가지고.. 어휴..”

귀순은 투덜대며 주차장을 가로질러 건물 안으로 사라진다.


#2

건물 뒤편 작은 주차장으로 헐레벌떡 뛰어 온 재용이 헥헥거린다. 그런 재용의 눈앞에 번쩍이는 은색 벤츠가 천연덕스럽게 주차되어 있다. 재용이 차문을 열어보지만 잠겨있다.


“이 새끼 졸라 빠르네.”


재용이 주위를 둘러보며 씩씩댄다.


“좋아. 한번 해보자 이거지. 알았어.”


재용이 되돌아 달려간다.


#3

재용이 도착한 주차박스엔 언제 왔는지 석구가 화이트보드에 적힌 차량넘버를 체크하고 있다.


“어!... 형 왔어?”

“너 자리 비우지 말라 그랬지. 한두 번 말해?”


석구가 화이브 보드에 눈을 박고 엄하게 꾸짖는다.


“어.. 그게... 벤츠 그 새끼가 또..”


재용이 듣는 둥 마는 둥 차키를 찾으며 대꾸한다.

“여기 차 값이 얼만 줄 알어? 한 대만 도난당하면 너 팔아도 차 값 안 나와? 알어?”


석구가 뒤돌아보지만 이미 재용은 사라지고 없다.


#4

검은색 소형차가 쏜살같이 건물 뒤 주차장에 나타나더니 요란한 제동소리를 내며 멈춰 선다. 한눈에도 구식임을 알 수 있는 낡은 소형 도요타가 은색벤츠를 범퍼가 닿을 듯 막고 섰다. 차에서 내리는 재용.


“넌 오늘 딱 걸렸어. 이 씹새끼..”


재용이 뒤돌아 서며 겨드랑이 사이로 리모컨을 누르면 마치 대답이나 하듯 삐빅 비상등을 발광하는 낡은 도요타, 넘버 1200번.


#5

늦은 오후.

기업형 포장마차 ‘고추’ 앞치마를 두른 알바들이 분주히 오가며 오픈 준비를 하고 있다. 포장마차지만 간이 무대까지 마련돼 있는 초대형 규모이다. 이층엔 권위적으로 꾸며진 사장실까지 있다. 사장석 뒤쪽에 골프채 가방이 진열되어 있고 홀을 향해 나 있는 유리벽을 통해 하나 둘 손님들이 들기 시작하는 게 보인다. 유리벽 앞에 놓인 소파에 마주 앉아 있는 박 사장과 스포츠머리의 임 형사. 무심히 홀을 내려다보고 있다.


“박 사장. 언제까지 동생 뒤치다꺼리 할 거야?”


“나도 이 새끼 땜에 돌아버리겠어요. 그래도 어쩝니까. 하나뿐인 동생인데. 대표선발 탈락하고 방황하느라 그런 거 같으니까 한 번 더 봐준 셈 칩시다. 곧 마음잡겠죠. 뭐.”

“박 사장. 이번에 철규 자식 빼느라고 나도 위험해졌어. 나도 언제까지 공무원 생활할지 장담 못 한다구.”

이때 커피를 내오는 알바녀. 잠시 침묵이 흐르는 사이 알바녀의 몸을 훑는 임 형사.


그 모습을 박 사장이 묘한 시선으로 낚아챘다.


“번번이 형님 신세 진 거 내가 모르나? 내가 섭섭하게 안 하잖아요. 홍 회장 아시죠.”

“홍 회장? 나야 듣기만 했지 뭐.”

“내가 지금 그 양반하고 골프 다녀요.”

“허~~. 요즘은 알짜들하고만 노네.”


박 사장이 담배를 물며 거드름 피듯 의자에 깊숙이 몸을 묻는다.


“청담동에 룸 가라오케 하나 만들라구요. 대형으로.. 어차피 연예인애들은 홍 회장이 대줄 거고.. 돈만 좀 더 뜯어내면 되니까 조금만 기다려요. 뭐, 오픈하면 그쪽 날파리들 날아들 테니 정리해 줄 사람도 필요하고.. 나는 여기 접을 수도 없으니까 철규 자식하고 형님이 아예 그쪽 가게를 맡아서 운영을 하게 할까 생각 중이유.”


박 사장의 말에 임 형사는 감동한 표정으로 바뀐다.


“철규 이 자식.. 지 형 갈 길이나 막지 말아야 할 텐데..”


임 형사가 짐짓 박 사장을 걱정하듯 말하자 천장을 보며 한숨을 쉬며 담배연기를 길게 내뿜는 박 사장.


“술 한 잔 하시고 몸이나 풀러 가세요. 괜찮은 애로 붙여 줄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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